열성경련과 독감 환자들 사이에서
12월이 지나니 주사실이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 독감과 폐렴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연일 주사실의 침대는 비는 날이 없다. 요즘 같은 때 주사실은 입원 예정 환자와 외래 환자들의 수액 및 주사 처치 등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10월에는 독감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방문한 대상자가 많았다면 요새는 A형 독감 환자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황이다. 독감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A형과 B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A형 독감이다.
바이러스 변이가 잘 일어나고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으며 전파 속도가 빠름과 동시에 증상 역시 심하게 나타나게 된다. 반면에 B형 독감은 A형 독감에 비해 전파 속도가 느리고 사람과 사람 간에서만 전파가 된다. 시기적으로 보면 A형은 주로 12월에서 1월, B형은 2월에서 3월 사이에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감 치료를 위한 항바이러스 치료제는 경구로 5일간 복용하게 되는데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시간에 맞춰 반드시 끝까지 복용해야 한다. 주사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1회만 투여하게 되는데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그동안 힘들게 짓눌렀던 근육통, 발열 증상은 빠르게 완화된다.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급여 항목으로 정해져 있지만 적응증에 해당이 되면 대부분 환자들은 주사제를 선호하고 있다. 몸을 힘드니 빠르게 증상을 호전시켜 일상생활이 원활하게 흘러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단 항바이러스제는 독감 초기 증상 즉 증상 발현 후 48시간 내 투여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해열제와 함께 투여하면 온몸 전체를 강타하던 근육통과 오한, 39도 이상의 발열 상태는 점차 호전되어 비로소 살만하다고 환자들은 이야기한다. 요새 독감을 겪은 환자들은 생사를 오간다 할 정도라고 치를 떨며 이야기한다.
일단 면역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들어온 독감 바이러스는 건강하던 성인조차 일상 활동을 무너뜨릴 만큼 온몸을 힘들게 만드니 그렇게 표현할 만하다. 일반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가지나 고열과 함께 심한 근육통과 오한이 동반되니 주사실로 들어오는 환자 얼굴만 보아도 저절로 아픈 상태임을 알게 된다. 끙끙 앓는 소리 너머 호흡하는 움직임은 빠르고 거칠다. 적절히 구역을 구분하며 간호 처치를 하는 내내 오가는 나의 손길은 더없이 바빠진다.
그날도 독감 환자 처치와 더불어 백신 예방접종, 검사를 위한 정맥 주사 준비 및 기타 질환으로 처방된 주사 투여를 기다리는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건강한 소아의 예방접종을 위해서는 감염 우려가 있어 질환이 있는 환자들과 따로 공간을 구분하여 주사 처치를 한다.
마지막 접종 한 개만을 남겨 둔 상황에서 “똑똑!” 문을 타고 노크 소리가 들리고 간호조무사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경련하는 아기가 있어요.”
해열 주사 처치를 위해 대기하던 16개월짜리 소아 환자가 열성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마지막 접종을 이미 하고 있던 터라 얼른 마무리하고 나서 환자에게 달려갔다. 어제부터 아픈 아이는 39도 이상 체온이 많이 오른 상태였고 집에서 해열제를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주사 처치를 기다리는 동안 고열 상태를 버티지 못하고 전신형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의식이 없고 전신이 뻣뻣해지는 강직 현상을 처음 경험한 엄마의 마음은 불안감이 앞서고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커다란 울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우선 기도 흡인이 되지 않게 자세를 유지하고 모니터링 감시장치를 연결한다. 산소 포화도는 84%를 가리키고 맥박은 200대 초반으로 빠르게 뛴다. 동시에 산소 투여를 위한 장비를 세팅하며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 우선 소아청소년과 과장님께 환자 상태 보고해 주세요.”
기다리던 다른 환자들도 불안함에 휩싸인 채 주목하기 시작한다. 커튼으로 격리하고 다른 선생님께 수액 처치와 함께 만약의 응급 상황에 대비한 물품들을 가까이 준비하도록 요청하였다. 그 사이 나는 아이 곁을 지키며 기본 처치 준비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의 역할과 협업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보통 단순 열성 경련은 수초에서 최대 15분 이내 멎게 되지만 지속 여부 및 상태에 따라 그 시간 안에서도 진정을 유도하기 위한 약물이 투여된다. 경련을 하면 의식이 없는 상태이기에 스스로 호흡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호흡이 원활하도록 관여하는 근육에까지 강직 현상이 일어나므로 호흡 유지를 도울 수 있는 조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거품을 밀어내는 등 입안에 분비물이 증가하고 구토가 동반 발생하게 되면 잘못하여 구토물 흡인으로 인해 기도를 막게 되는 현상이 초래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때 호흡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편안한 자세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고 입안의 내용물로 인해 질식되지 않도록 한다. 간혹 혀를 치아로 물고 있는 상황이라면 나무 설압자 등을 치아 사이에 물리기도 한다. 거품까지 토해 내는 아이 얼굴을 옆에서 보는 엄마의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엄마를 안심시키고 어르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진정 약물 투여해 주시고 정맥 라인 확보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과장님의 오더가 떨어지고 즉각 처치에 들어간다. 이미 적용 중이던 산소 요법으로 인해 산소포화도는 안정이 되었으나 경련은 여전하기에 진정 약물이 들어가는 것이다. 정맥확보 전이라 우선 약물을 근육으로 투여한다. 정맥을 확보하며 몸 상태를 알기 위해 혈액 검사를 한 후 수액을 주기 시작했다. 전신 혈액 순환을 위한 수액이 들어가고 나서도 여전히 체온은 39.5℃를 넘는다. 처방대로 정맥 주사용 해열제가 투여되기 시작했다. 서서히 경련이 멈추고 강직된 근육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아이가 울음을 “왕”하고 터트린다.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면 나도 비로소 안도의 첫 숨을 내뱉는다. 아직 안심하긴 이르지만 운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른처럼 수월하게 말로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못하는 소아의 경우에는 우는 것으로 상태를 판단하기도 한다. 통증이나 상태 변화 등을 평가할 때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일단 운다는 것은 의식이 있다는 것이고 어딘가 불편함을 알리는 표현 방식이기에 오늘처럼 아찔한 상황에서는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여 알릴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내내 머무르는 마음과 손길은 최대한의 지켜냄이 된다. 아픔을 다루고, 아픔을 공유하고,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질환에 놓인 사람들을 보살피고 지켜내는 간호란 것은 어찌 보면 언제, 어디서든 최선의 방식으로 각자가 노력하여 이루어가는 일이다. 보아 가고 어루만지는 손길은 환자를 위한 마음 하나로 최선이라는 소명 아래 놓인 조그만 불씨를 스스로 지펴내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의 경련은 멈추었지만, 혹여 증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어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객관적 지표인 활력징후와 더불어 아이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다. 호흡과 맥박, 산소포화도 등의 수치와 나타나는 증상을 복합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아이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해열제를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열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고 오한이 동반되고 있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 주었다. 여전히 고열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아이가 안쓰러우나 기다림의 시간도 필요하다. 열이 나는 원인을 파악하는 동안 증상에 따른 대증치료가 적용된다.
해열제를 반복하여 사용할 수 없어 Tepid massage를 시행했다. 미온수 마사지는 열이 나는 소아에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오한이 없으면 바로 시행할 수 있다. 우선 따뜻한 물을 Tray에 받은 후 아이 옆에서 겨드랑이와 몸통을 닦아 준다. 물이 어느 정도 흐르면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환아의 엄마와 나는 보호자와 간호사로 만났지만 소통으로 하나가 된다. 서로 귀 기울이고 나눈 이야기들은 아이를 지켜가는 마음 하나로 부풀어진다.
처치를 위해 사용했던 물품이 주변에 어질러져 있음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당시 급박한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보이지 않음과 보이는 것은 내 앞에 놓인 상황에 따라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어떤 일에 대한 몰입과도 같다. 사력을 다한 후의 뿌듯한 안도와 기쁨은 원래의 상태로 향해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모습을 통해 키워내는 부모의 마음을 공감하며 같이 울고 아파하기도 한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아파보면 비로소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나보다 아이가 아프면 그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투정하고 떼쓰는 아이의 모습이 더없이 그리운 것은 건강한 때의 표현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럴 때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너무나 공감이 간다.(실제 건강할 때 왕왕 떼쓰는 건 부모로서 힘든 일이긴 하지만^^)
물품을 정리하며 아이 상태를 check 하는 내내 한결같이 간호로 답을 할 수 있는 나의 손이 있어서 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주름지고 소독제에 피부가 까일지언정 나의 손이 행하는 것 자체가 결국 나다운 모습을 나타내는 아름다움이라 여겨진다. 날마다 주어진 현장 안에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커다란 선물인 것만 같다. 그 선물은 상황에 주저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걷고 뛰는 힘이 된다. 내 소신을 이루며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자. 내가 이루고 행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자.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고 내 힘으로 이루어갈 수 있는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눈여겨 보아가리라. 다짐해 가는 사이 오늘 하루도 최선의 방식으로 그렇게 흘러만 간다. 오늘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소신으로 다해낼 때의 땀과 노력이 같이 이루어질 때임을 다시 느끼며 간호로 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행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