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숨을 쉬고 있나요?
안방에 스위치가 켜지면, ‘우우우웅~’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온 방을 메운다. 그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공기 중에서 떠오르는 미세한 연기를 놓칠세라 숨을 깊게 들이켜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린다. 숨이 거칠어질 때마다 그 소리는 아버지의 고통을 이겨내게 한 존재기도 했다.
아버지는 만성폐색성폐질환 환자였다. 폐기종에 반복되는 기흉 발생으로 가족은 밤낮으로 살피며 불안한 잠을 청해야만 했다. 호흡이 안 되어 고통스러운 상황이면 119로 급하게 병원을 향하기도 했다.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안방 침상에서 산소 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방에서 거동할 수 있었던 시기에 아버지는 호흡기 치료기와 꼭 붙어 지내셨다.
호흡기 할 시간마다 1분도 틀리지 않고 일어나 앉아 네뷸라이저 컵에 약물을 따른다. 뚜껑을 돌려 닫고 Air 튜브를 장비 쪽 Connector에 꽂는다. 준비가 다 되면 앞쪽 마우스피스에 입을 ’앙‘ 벌려 오므린다. Power 스위치를 가냘픈 검지로 ‘톡’ 누르면 전원이 켜지고 동시에 ‘윙~’ 울려대는 소리에 맞춰 아버지가 호흡한다.
네뷸라이저는 액상 형태의 약물을 미세한 입자로 바꿔 연기처럼 분무시킨 후 흡입하여 기관지를 확장시키고, 기도에 쌓인 분비물을 감소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장비다. 약물에 따라 진해거담제와 염증을 잡는 소염제를 이차적으로 넣어 흡입 후 마무리한다.
입을 헹궈 마무리 후 자리에 누우시면 어느 정도 호흡력이 유지된다. 오래 지나다 보니 아버지의 폐 상태를 회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행위였던 거다. 스스로 약을 준비하고 호흡할 수 있던 것에 의존이 생긴 것은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알 리 없는 깊숙한 세계로까지 숨을 불어넣는 기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힘듦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 호흡의 깊이가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의 공포는 직접 겪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기에.
네뷸라이저는 기관지를 확장하고, 염증을 줄여주는 중요한 장비다. 벤토린, 스테로이드, 뮤코미스트 등 다양한 약물이 순차적으로 사용되며, 기계는 그 약물을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 흡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선 적용하는 기관지 확장제는 벤토린 네뷸, 아트로벤트가 있다. 약물이 폐까지 이동하며 흡입되는 동안 서서히 기관지를 확장해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관지 확장을 먼저 시켜서 충분히 숨이 드나들 길을 만든다.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는 스테로이드제인 풀미코트, 부데코트가 있다. 이 약을 사용하게 되며 구강과 인두에서 칸디다증에 걸릴 가능성이 있기에 사용 후에는 물로 입안과 얼굴을 닦아내는 것이 좋다. 제일 마지막에 가래를 묽게 하여 배출을 쉽게 만드는 뮤코미스트 약물이 있는데 간혹 상태에 따라 제일 먼저 사용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모습이 투영된 기억은 그대로이다. 하늘에서 숨이라도 평안히 쉬고 계시길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딸의 마음은 다른 이를 돕는 간호 일로 보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뷸라이저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의 숨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우우우웅' 돌아가는 소리는 단순한 기계 소리가 아니다. 내겐 아버지의 숨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들리면, 숨이 가빠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항상 그때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함께했던 예전의 시간을 되새기게 된다. 누구보다 숨을 제대로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 병실을 오가는 환자의 숨결에 내 손을 보탤 뿐이다.
출근하여 라운딩 하는 사이 병실에 2살 아기가 네뷸라이저와 씨름하고 있다. 아빠는 아이를 꼭 안은 상태로 버티지만 아이는 뒤로 몸을 튕겨대며 싫다고 아우성친다. 엄마는 그 앞에서 튜브를 꼭 쥐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고개를 따라 분무되는 연기를 흡입시키고자 땀을 뻘뻘 흘린다.
5분, 10분 사이의 흡입 치료지만 이 정도면 1시간, 2시간보다 더한 고역이다. 아이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따라가며 손끝으로 마스크를 고정시켜야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계속 들리지만, 엄마는 꼭 해야 할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놓지 않는다.
‘윙’ 소리에 따라 울리는 울음소리는 이미 병실에 가득하고 버티는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 아버지의 호흡을 돕던 그 기계 소리가, 이제는 아이가 내는 울음소리와 묻혀 있다. 부모와 함께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아주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달래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폴폴 가동되는 전기 모터 소리 따라 나오는 연기 하나라도 더 흡입시키려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에너지가 끝을 향하면 그만하자는 소리가 들리고 반이나 남은 약물이 무색하리만큼 네뷸라이저 기계는 ’툭‘ 꺼진다. 이내 병실 가득 울려 대던 소란한 소리는 잠잠해진다.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지만 또 다른 약물이 놓여 있기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얌전히 잘하는 아이도 있는 반면에 이렇게 소란스러운 시간을 기진맥진하며 내달리는 일도 있다. 네뷸라이저 구성 제품 중에는 일반 마스크나 마우스피스 대신 예쁜 캐릭터 형태로 만들어지고 외래 소아청소년과의 호흡기 치료실 구역은 애니메이션 등으로 주의 환기를 시키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모두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싫다고 손사래 치고 완강히 거부하는 경우 아이 성향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고 도와야 한다. 최상은 그 시간을 아이에 맞춰 정확하게 접촉할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 억지로 하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니 어느 정도 허락된 시간에는 아이와의 눈높이도 필요하다.
우선 기계 소리와 시간으로부터 아이가 익숙해져야 하는데(적용 대상이라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까지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기다려주어야 한다.
물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발바닥에 불이 나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는 상황도 너무나 많다. 약물 치료를 위한 적용과 협조 여부에 따른 지속 가능성의 경계에서 막무가내의 방법은 결코 양측에 이롭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에 간호로 이뤄내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아이의 병실에 또다시 네뷸라이저 기계가 돌아간다. 아버지 호흡음을 따라 안방 침대 머리맡에 놓였던 소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건강한 호흡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모두에게 중요한 이 기계는 단순히 호흡을 돕는 장비가 아니다.
그 소리는 바로 생명의 숨결을 이어주는 소리,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소리다.
아버지가 힘겹게 숨을 쉬던 그 모습은 다시 아련하게 떠오르고 네뷸라이저 기계 소리에 교차되어 여전히 병실을 떠나지 못한다. 이 소리에 한껏 귀 기울이며 누군가의 호흡이 잘 이끌어지도록 간호로 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