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시작되는
늦은 오후, 핸드폰에서 전화 소리가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소아병동이었다. 1주일 전부터 잦은 구토를 하던 아기가 오늘 외래 진료를 받은 후 입원이 결정되어 처방에 따라 수액 처치를 시도했지만, 혈관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어 연락한 것이었다. 구토를 한 데다가 생후 1개월의 아기다 보니 혈관을 여기저기 찾아도 진전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아기에게 수액 처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탈수 등 문제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에 따라 입원 유지가 어려우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만큼 에너지와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아기의 상태가 더 악화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나는 주말 모임 중이었지만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들은 초조하게 혈관을 찾다가 잠시 아기를 쉬게 하고 있었고, 보호자는 불안한 표정으로 아기를 안고 있었다. 특히 아기는 구토로 인한 탈수 증세가 있었기 때문에, 정맥에 수액을 주입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아주 어린 아기의 경우 혈관을 확보하기까지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기들은 몸이 작고, 혈관이 미세해서 주사를 놓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수액 처치의 핵심은 무엇보다 먼저 혈관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경력 있는 간호사도 혈관 확보 과정에서 여러 번 시도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실패했을 경우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소통 기술까지 있어야 보호자나 환자를 안심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행하는 자의 당당한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업무 하며 환자와 소통하기까지 다양한 상황에 놓이기에 부담감은 배가 된다. 잘했을 때는 뿌듯하지만 못했을 때의 미안함도 크게 자리한다. 그러기에 성공 여부 막론하고 다시 해가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신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행하는 것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신뢰. 나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간호사, 부서 전체, 부서 간, 환자와 거미줄처럼 얽힌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협업으로 이어가는 과정에서의 신뢰는 환자 간호에 있어 분명한 영향을 끼친다.
주사 처치뿐만 아니라 입원부터 퇴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신뢰가 동반된다. 신뢰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언어적, 비언어적 행위 모두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신뢰를 주고받기까지는 무엇보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 누구보다 나 자신의 믿음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 신뢰가 형성되면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태어난 지 1개월 아기의 상태가 어느 정도이길래 구토를 동반한 탈수에까지 이어졌는지 안타까웠다. 생후 아기들은 엄마 뱃속을 나온 순간부터 스스로 호흡하고 섭취와 배설과 더불어 모든 환경에 적응하여야 한다. 생후 한 달까지를 신생아기라 하는데 이 시기는 무엇보다 주어진 환경에 민감하게 적응하여 조금씩 성장하고 단련해 나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한 달 이후 개월 수마다 성장에 이르기까지 적절하게 자극하고 보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낯선 환경에서 성장해 가기까지 보호자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 된다. 아기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양쪽의 순환이 적절하게 이어지고 지속적으로 주어질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보살핌과 자극의 양극선상의 주고받음 역시 신뢰로 이어진다. 한 사람을 성장해 가기까지는 무던한 노력과 인내가 따른다.
아기의 구토 양상은 분수토는 아니었지만, 수유 후 수회 구토가 동반되고 있어 전해질 불균형이나 탈수 여부를 관찰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연결되지 못한 수액이 매달린 폴대 가 놓인 처치실 안의 공기가 사뭇 무겁다.
아기 엄마는 베트남 여성이다. 어학연수로 한국에 온 지 5년이 되었고 다행히 의사소통에 무리는 없었다. 첫아기를 낳아 조리원을 나온 후 타국에서 베트남 부부가 아기를 돌보는 상황이라 주변에 도울 수 있는 어른들은 없었다. 처치를 위해 엄마가 안고 들어 온 아기가 힘겨운지 칭얼댄다. 작고 여린 아기다. 한 달밖에 안 된 아기의 위장은 미숙한 상태라 구토 양상을 살피고 호흡을 관찰하며 동반된 다른 증상은 없는지 전체적으로 잘 관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혈관 확보가 우선이다. 생후 1달이 된 아기다 보니 몸집이 작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나 보다. 여러 번 시도하려 했지만 잘 해내려는 중압감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정맥 주사는 간호사라면 가장 기본으로 많이 행하는 일이지만 주변 상황이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본인의 업무 컨디션에 따라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예민한 환자를 달래며 할 수 있기까지 쌓인 연륜은 감히 무시될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 자리에서조차 부담이 될 때가 있다. 혈관 확보가 이루어져야 수술이 진행되고, 수혈이 이루어지고, 치료에 중요한 약물이 투여된다. 간호사는 간혹 혈관 확보 과정에서 실패하게 되면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한 번에 성공하면 그때의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특히 어려운 혈관을 한 번에 성공했을 때의 기분이란 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작은 아기 입안에 구토한 분유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상체를 살짝 세워 혹시 모를 흡인을 방지한다. 마지막 수유 상태를 확인하고 토니켓(고무줄)을 묶는다. 토니켓(고무줄)은 혈관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혈관을 울혈 시킨다. 토니켓(고무줄) 적용 부위 아래는 압박되고 곧이어 적합한 혈관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손의 감각이 동원된다. 작은 아기 손발이 파르르 떨리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의 목청이 처치실 안을 울린다. 작디작은 아기의 자지러지는 소리는 아프다는 소리다. 무언가 불편함을 호소하는 울음소리가 커지니 함께 있던 직원들의 안타까움이 시름처럼 흘러나온다. 이 시름을 뚫기 위해서라도 내 심장 박동을 평온히 하고 손 안의 힘은 부드럽게 하여 감각을 살리며, 주변의 환경에 휩쓸리지 않을 마음의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위기에 휩쓸려 부담을 느끼게 되고, 나의 행위보다 주변 상황 먼저 의식하게 되면서 집중이 안 된다.
즉 주변에 의식하다 보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잘해야지 하는 압박감이 생기게 되니 오히려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신규 때는 ‘잘해야지’ 하는 압박감이 떨림을 만들고, 능숙하지 못한 기술은 손으로 나타나 그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간호사 업무를 시작하며 정맥 주사 처치를 해야 했을 때 떨렸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불안과 떨리는 마음, 해낸 후의 기쁨과 안도 이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은 같이 공존하며 나의 신뢰를 이루어간다. 신뢰는 어떤 불안을 감싸기도 하니(지식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집중해서 내가 하는 일에 신뢰라는 두 글자를 온전히 나누어주어야 그 효과는 커진다. 정맥 주사의 성공 여부가 신뢰감을 주는 것은 아니라 어떤 처치를 하기까지 무엇보다 내가 알고 행하는 것 하나하나가 나를 믿어갈 신뢰감을 만든다. 신뢰가 바탕이 되면 불안으로부터 멀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감은 과시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겸손한 당당함이다. 자신감이 쌓이면 자존감이 높아진다. 결과 이전에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 따라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자존감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혈관을 찾는 동안 토니켓(고무줄)을 묶어 둔 부위의 혈액 순환이 더뎌 새파래지면 우선 압박된 부분을 풀고 달랜다. 아기 주위를 둘러싼 직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함께 동동거린다. 안쓰러운 응원들이 안도감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가장 작은 정맥용 카테터(실제는 아기 혈관보다 크게 느껴지는) 하나로 인해 결정된다. 혈관 확보의 최종 선택은 발목 안쪽 혈관인 Greater saphenous vein이다. 하지 정맥은 성인보다 주로 아동에게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성인의 경우 혈전성 정맥염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상지 혈관이 없거나 상대정맥증후군일 때에는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아기의 작은 발목을 향해 카테터가 들어간다. 모두가 숨을 죽인다. vein(정맥)을 따라 아기의 울음도 커지고 보호자인 엄마도 속상한 마음에 따라 운다. 투명한 챔버에 혈액이 비치면 정맥을 따라 각도를 낮추어 조금 더 삽입한다. 혈액이 챔버에 계속 고이는 것이 보이면 비로소 앞쪽 카테터 허브와 Stylet(유도 침)을 살짝 분리한다. 노란색 허브가 달린 실리콘 바늘을 밀어내면 혈관 안으로 부드럽게 삽입이 된다. Staylet(유도 침)은 제거되고 필요한 혈액 검사를 시행한 후 수액을 연결한다. 탈수된 혈관 따라 수액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채워진다. 24G 바늘 하나, 3/4인치 길이의 바늘 하나 이것으로 아기의 치료는 시작된다.
긴박한 응급 상황에서는 중심정맥관을 잡기도 하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처치는 말초 정맥을 이용한 정맥 주사가 최선이 된다. 손의 감각과 지식, 나와 주변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카테터 하나로 시작된 기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기는 구토로 인해 체액 불균형과 탈수 상태를 보이기에 필요한 양만큼 보강하게 될 것이다. 천천히 흐르는 수액 하나에 아이의 상태가 안정될 것이고, 증상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곧이어 이어지게 된다.
모두가 안도하는 순간은 작은 카테터 하나의 의미는 크다. 내가 안 되면 네가 할 수 있는 이곳은 우리의 장점이 된다. 내가 안 되면 네 덕분에 해결했다는 서로의 격려가 존재해야 한다. 못했다고 꾸짖기보다 그럴 수 있음을 안아가고 잘 알려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정맥혈관 주사할 때 주의할 점은 내가 안 되면 반드시 손을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2번 정도 시도하고 나서 안 되면 위의 연차나 동료의 협업을 구하는 게 맞다. 서로의 도움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고 그 길은 든든한 힘을 만든다. 그것이 서로를 믿어가고 나누는 신뢰의 장을 만든다.
엄마의 눈물에 기쁜 안도의 웃음이 서린다. 고마운 마음이 아기를 안고 수액 폴대를 끌어 주는 내내 바퀴 따라 빙글빙글 돌아간다. 노란 카테터 24G, 3/4이니 길이 하나의 기적은 1개월 아기의 혈액 순환을 돕는 고마운 장치다. 간호사 손에 들린 작은 카테터 하나로 시작되는 환자를 위한 마음은 날마다 이어지며 간호로 답하다.
주고 받는 마음
쌓이고 쌓여 이룬 신뢰
나를 먼저 믿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