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하나가 되기까지
독감, 폐렴 등 호흡기 질환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어느 사이에 나도 무리가 왔는지 열이 나기 시작했다. 목이 따끔따끔 아프고 간질간질하며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이 조금씩 오르더니 이내 몸이 처지고 근육통까지 왔다. 웬만해선 아프지도 않고 감기 기운이 오더라도 가볍게 지나갔었는데 결국 올 것이 왔나 보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업무 먼저 신경 쓰느라 쉴 겨를이 없다. 요새 인력이 없다 보니 원래 하던 업무를 제쳐 두고 주사실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업무의 통일성을 꾀하기 위해 간호부 파트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 해결해야 할 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원활하게 업무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그때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처음의 경험이기에 갖은 방법을 적용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기도 한다. 부서마다 나타나는 문제를 조율하며 해결책을 마련하기까지 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뿌듯함도 있지만 때론 힘든 순간들과 마주할 때도 많다.
환자 수에 따라 적정 인력의 배치는 매우 중요하다. 간혹 환자 수가 급증해 최소 인력이 그만큼의 업무를 해내기도 하고 인력이 채워졌어도 휴직으로 인해 곧바로 공백이 생기기도 한다. 기간마다 입사가 이루어지지만, 그만큼의 퇴사가 나오기도 하니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부서 상황이나 개인 역량, 환자 수 등을 고려하여 부서 이동으로 인력 배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간혹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일은 당일에 입사 취소를 한다거나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경우, 월 근무표가 다 나온 상황에서 갑자기 사직하는 경우 등 이리저리 조율하며 정리하느라 온 부서가 에너지를 죄다 쏟아낼 때이다. 인력 관리는 말이 쉽지 실로 여기에 쏟는 에너지의 양과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다.
위기 안에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 때론 마주하는 상황들은 미처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다. 최선을 향해 가기까지는 마치 매운 양파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는 것만 같다. 톡 쏘는 매운맛에 눈물이 쏙 나오기도 하지만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함께 하는 동료들과, 내 손을 통해 만나가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황에 흔들리기보다, 주변에 의식하기보다 간호하는 나에게 집중하며 진득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관리자라고 해서 실무의 영역을 벗어나 넋 놓고 지시만 할 것인가. 손이 모자라면 후배들과 현장을 지키며 나누는 하루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몸으로 뛰고 환자와 교감하며 실무에 집중한 후 흘린 땀방울의 가치는 참된 보람을 가져온다. 문제라는 것을 문제라고 여기기보다 받아들여 나감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이 거칠 것 없는 강한 책임감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애써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 꽃을 피워 여기저기 은은하게 퍼뜨리는 들꽃의 향기와 같다. 소신이 이끈 마음 하나 단단히 잡아가며 지금까지 오기까지 연결된 고리들은 신기하리만큼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나를 만들어간다.
가만가만 들여다본다. 연차가 쌓일수록 부끄럽지 않을 나의 가치가 스스로 빛나기까지는 가까스로 버티며 이겨 온 언저리의 언저리를 스친 힘들이 점차 쌓인 과정이다. 병동 업무, 수술실과 중앙 공급실, 아동병원 주사실을 거쳐 화상전문병원에서의 부서 별 업무를 익히고 해내기까지 무수한 뒤엉킴과 더딘 순간들은 제자리걸음으로 버거워진다. 그러나 이 사이를 뚫고 나갈 더딘 제자리걸음과 연결된 무언의 힘은 점차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어 결국 올곧은 매듭으로 이어진다. 이런 매듭 하나하나가 이어지고 땋고 땋아가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간 것이 아닐까?
연결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상황을 만들어낼까? 나 때문에 이루어낸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 걸어가며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있기에 환자에게 닿을 수 있고, 환자가 있기에 간호사인 우리의 손길은 중요해진다. 혈압을 재고 호흡을 모니터링하는 사이 연결된 감시장치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객관적 지표에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아주 작은 선 하나도 잘 연결되고 이어져야 환자의 상태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때론 수치만으로 평가하긴 힘들지만 우선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이기에 수치 하나 차이로 간호 처치가 바로 달라지기도 하니 이 연결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환자에게 적용하는 수액 하나, 주사 약물 하나 준비하는 것조차 수많은 연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액은 환자와 수액을 이어 줄 수액 줄과 정맥용 카테터가 잘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 그사이 길은 막힘이 없이 이어져야 하고 눌리거나 꼬이거나 혈액이 역류하는 순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다. 연결은 영속성이 있다. 서로 떨어진 것 같지만 하나가 연결되면 전혀 관계없는 다른 것이라 여겨졌던 것들도 연거푸 이어지게 된다. 수액 줄을 타고 수액이 흐르면 앞서 비었던 공기가 빠져나간다. 수액이 내려가며 길을 트는 것은 마치 트리 전구의 불이 하나씩 켜지듯 부드럽게 이어지며 결국 하나가 된다.
수액을 연결하면서 질환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러 가지 약물을 넣기도 하는데 이때 한 번에 적용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약물 상호작용에 문제가 없다면 1~2가지 약물을 추가로 연결하게 되는데 이때마다 매번 정맥용 카테터를 삽입할 수 없으니 수액 줄과 수액 줄 사이에 적용하여 연결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3-way stopcock이다. 세 갈래 길이라니 이 얼마나 신기한가! 신규 시절에 이 제품을 접할 때 사용 방법이 헷갈리고 어설펐다. 반대로 열어두기도 하고 마개를 떨어뜨려 오염이 되기도 했다. 방향에 따라 어느 방향은 막고 또 어느 방향은 연결되어 흐르기도 하니 제대로 된 연결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다. 반드시 환자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밸브를 돌려야 제대로 약물을 주입할 연결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밸브를 잘못 돌려 반대 방향이 되면 혈액이 역류하게 되고 들어가야 할 약물이 오히려 반대로 흘러나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병동 입원 환자들에게 적용할 약물이 많은 경우 혈관 통로 하나로도 연결할 방법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러 번 주사를 하기 위해 혈관을 찾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방향대로 조절하여 여러 약물을 순서대로 연결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요새는 감염 위험성이 커서 권장되지 않으나 여러 약물을 주입하기에는 아주 요긴한 제품이다.
만약 3-way stopcock을 사용해서 주기적으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면 주입구에 멸균 캡을 부착하여 폐쇄체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살균소독제가 함유된 마개가 부착된 제품도 있다. 3-way stopcock 3개를 연달아 연결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일일이 연결하지 않고 세트로 나와 있는 제품도 있다. 이것은 감염 예방관리가 이전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일이 마개를 열지 않고 폐쇄적인 방법을 이용하면 감염관리에 효과적이니 이것은 바로 환자 안전과도 직결되는 일이다.
수액을 준비하며 3-way stopcock을 사이에 두고 수액 줄을 연결한다. 여러 제품이 하나로 연결되어 내 손을 통해 환자에게 전해진다. 하나로 시작된 일들은 결코 그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다른 이에게 연결되고 다른 이 또한 다른 이에게 연결되어 전해진다. 그것이 결국 커다란 우주의 일처럼 둥글게 순환이 되어 내게 다시 돌아온다. 내가 누군가에 도움이 되듯, 나도 누군가의 연결점으로 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수액 처치를 하고 돌아오니 간호사실 스테이션에 따끈한 ‘생강 라테’ 하나가 올려져 있다. 후배 간호사가 감기 걸린 내가 걱정스러워 두고 간 것이다. 한 모금 마시니 감기 기운이 ‘훨훨’ 달아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힘들 때 도와주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챙겨주려는 마음 하나가 톡 쏘는 생강 라테의 부드러운 우유 거품 안에서 살살 녹는다. 알싸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세상을 사는 우리는 어디서든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나에게로 점차 전해져 간다. 연결의 힘으로 내 손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마음을 지녀야 할지 3-way stopcock 하나로도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생각과 마음들이 이어진 연결의 힘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가슴 깊이 가져가며 오늘도 간호로 답하다.
하나가 이룬 연결이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