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이 살아가기
주사실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과장님, 소아 라인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긴박한 상황임을 직감하며, 나는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일차 병원에서 진료의뢰서를 가지고 온 8개월 아기의 입원 치료가 시급하다. 수액 요법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번번이 유지가 안 되어 결국 내게 연락을 준 것이다. 도착해 보니 아기는 기운이 없는 상태로 조그맣게 울고 있었다. 피부는 차고 건조했다. 손과 발끝은 순환이 안 되어 유독 차가웠고, 입술 색깔마저 혈색이 없었다.
8개월 유아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 3일 전부터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상태였고 몸무게가 1kg 빠졌다고 했다. 성인도 아닌 조그마한 아기 체중이 1kg이 빠졌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 울음소리와 버둥거리는 몸짓의 활동 반경이 크지 않다. 이미 탈수가 많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탈수 증상은 체내 수분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신체의 기본적인 기능을 위협하게 된다. 구토와 설사로 체액이 빠져나가면서 체중은 줄게 된다.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면 입술이나 구강이 건조해지고, 소변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 이는 곧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경고 신호와도 같다.
무언가 보충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탈수의 위험성은 단순한 증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한 탈수는 몸의 수분과 전해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신장 기능이 저하되고 심각한 경우 의식 저하까지 동반될 수 있다.
수액 처치가 우선이다. 아기의 상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혈관을 찾으려는 내 손길이 더할 나위 없이 바빠졌다. 이와 동시에 발생 가능한 응급 처치에 대비하고자 물품을 준비시켰다. 기도 확보를 포함한 응급 카트와 장비, 산소 물품, 객담 흡입 장치를 준비한다.
간호사로서 수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느껴지는 ‘직감’은 종종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감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아채는 순간이다. 간호사로 인한 경험이 쌓이는 동안에 직감의 영역이 넓어졌다. 양이 쌓이는 동안 행하는 질의 깊이 또한 달라진다.
탄력이 떨어진 피부를 향해 주삿바늘로 수축된 혈관을 용케 잡아 연결하니 다행히 수액이 주입되기 시작했다. 아이의 과소 활동과 울음이 없는 상황, 통증 강화에도 둔한 반응을 보이며 의식이 떨어진다. 소아청소년과 과장님께서 현장에 도착하여 아기의 상태를 재평가했다. 의료진은 분주해진다. 하지만 분주함 안에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
의식에 따른 모니터링은 이미 이루어지고 산소 등의 여러 장치가 투입된다. 상태 변화로 3차 의료기관으로 전원이 결정되고 이에 맞는 처치와 준비에 따라 행하는 방향이 달라졌다. 수액을 시간당 필요 속도로 주입하며 우선적으로 수분을 보충하고 혈액 순환을 보강하기로 했다.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정맥혈 가스분석(VBGA) 결과, 아기의 PH 수치는 낮고, 전해질과 신장 기능 지표인 BUN/Cr 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특히 BUN 수치가 68.4로 정상보다 높게 상승된 상태로 신장 기능이 현저히 저하됨을 알 수 있었다. 혈액 내 나트륨 수치도 상승해 있다. 체중이 10% 이상 소실되고 여러 반응을 통합한 결과 중증 탈수로 인한 체액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였다.
우리 몸의 60~70%는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체에서 수분이 중요한 이유는 혈액과 장기뿐만 아니라 세포의 기능을 유지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며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아의 경우 체중 대비 체표면적은 성인의 그것보다 넓다. 이에 칼로리 소비량, 수분 필요량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발열, 구토, 설사 등의 질환에 노출 시 성인에 비해 수분 대사가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 즉 성인보다 체액 소모량이 급격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탈수가 진행되면 그만큼 체액이 급격히 소실되므로, 빠른 수액 보충과 전해질 균형이 중요하다. 구토나 설사가 모두 탈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소아의 경우는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수액이 주입되니 혈색이 돌고 가팔랐던 호흡이 고르기 시작했다. 아기의 상태가 점차 안정되어 간다. 안심하긴 이르지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앞으로 전반적인 상태와 더불어 신장 기능을 정확히 판별해야 한다.
전원을 위해 근처의 큰 병원 응급실마다 전화를 돌린다. 요즘 같은 의료 대란 속에서 응급실에 소아 전원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몇 번의 전화로 상태를 알리고 요청을 했는지 모른다.
"환자 보내 주세요."
엉겨붙은 마음이 풀리는 반가운 희소식이다. 드디어 전원 갈 병원이 결정된 것이다. 모두가 부여잡았던 희망의 순간이다. 한숨을 돌리니 긴장했던 마음이 눈 녹듯 풀린다. 아기 엄마는 눈시울을 붉힌 채, 가슴 아픈 표정으로 아기를 힘껏 안는다.
구급차까지 아기를 이송하면서도 작은 손가락에 끼워진 산소포화도와 맥박을 확인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은 아이의 혈관을 타고 전신을 순환하며 생명을 이어주고 있다.
구급차가 출발할 준비를 한다. 우리는 구급차가 떠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아이가 무사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물은 생명을 위해 이곳저곳을 순환하며 에너지를 주고 노폐물을 제거한다. 공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자유로이 모양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디든 녹아들며 영양분을 나르고 흡수시킨다. 물로 인해 서로가 연결되고 이것에 의존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미세한 혈관 사이사이 수분이 돌면 생명은 시작된다. 물이라는 근원적 가치가 우리네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손길 하나하나가 물처럼 모이고 모여 또 다른 기적을 지켜낸 사실이 감사하다. 간호사의 역할, 소명은 그러기에 빛이 난다. 발길을 옮기는 내내 아기의 건강한 안위를 바라는 마음, 두 손 모아 간호로 답하다.
생명의 근원은 물
좋은 물이 주는 이로운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