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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의 온도

자연스러운 형평성을 이어갈

by 현정아

적당의 기준은 사람, 상황,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 사이의 간격도 그렇고, 내가 주는 것과 받는 것에서도 '적당'이라는 기준은 매번 달라진다. 그때마다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면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조절하는 '적당'이라는 기준은 과학적 수치나 통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개념이다.

사실, '적당'이라는 말은 가장 어려운 말일지도 모른다. 그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나 환경, 나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느 정도 '적당'을 파악할 수 있다.

적당의 기준은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종종 알게 되기도 한다. 환자를 만나면 때때로 아찔한 상황이 발생한다. 안정된 상태에서 갑자기 생체 징후가 나빠지거나,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므로. 이런 급격한 변화는 마치 매서운 바람 속에서 눈과 비를 맞는 것처럼 온몸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 상태에서 얼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몰입해야 한다. 어쩌면 매서운 바람 속에서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넘은 순간을 이겨내고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료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마다 다른 처치가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마음은 하나다.


환자의 혈압이 높거나 떨어지면 원인을 파악한다. 평소 질환이 있었는지, 약물 복용은 어떤 것을 하고 있고 과거력이나 수술 경험, 음식이나 약물에 따른 알레르기는 없었는지 꼼꼼하게 파악한다. 어느 날 40대 여성 환자의 혈압이 200대 이상 치솟아 조절이 필요했던 적이 있었다. 환자는 두통을 동반하였고 여러 가지 검사를 시행하였다. 결국 입원하여 아주 소량의 혈압강하 약물을 24시간 주입하게 되었는데 너무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미세 의약품 주입장치를 통해 투여가 되었다. 여기서도 환자에게 맞는 약물과 용량, 시간당 투여량이 결정되는 것이다.


평소 알던 혈압의 정상 기준을 두고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데 기준을 참고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고 평상시 혈압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혈압이 평소 높다면 우리가 우려하던 수치가 이 환자에게는 결코 높은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압은 수축기 혈압(최고 혈압)과 이완기 혈압(최저 혈압)으로 나뉜다. 수축기 혈압은 심장이 수축하여 혈액을 내보낼 때 혈관에 미치는 압력이고, 이완기 혈압은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올 때 혈관에 미치는 압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축기 혈압은 120mmHg 미만, 이완기 혈압은 80mmHg 미만일 때 정상 혈압으로 간주된다.


평상시 혈압이 정상 수치 이하로 조절되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성이 낮다고 보면 된다. 50세 이상이 넘어가면 이완기 혈압보다 수축기 혈압과 맥압(주 1)을 가지고 심혈관 합병증에 대한 더 큰 예측을 하게 된다.


혈압을 측정할 때는 앉은 자세에서 5분 이상 안정을 취하고 나서 양발은 가지런히 바닥에 닿도록 한다. 왼쪽 팔을 걷은 상태에서 심장 높이에 두고 측정해야 하는데 측정하기 전 30분 이내에 흡연이나 커피 등의 카페인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경우는 침상에 눕혀서 측정하게 된다. 예전에는 청진기와 수동 혈압계를 가지고 환자 팔에 압박대를 감아 맥박을 감지한 곳에 청진가을 대고 들리는 음을 측정하여 검사했었다. 청진기를 통해 뛰는 음이 처음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의 지점이 환자의 혈압이 된다. 맥박이 뛰는 시점에 혈압계를 통해 수은이 내려가는 포인트를 잡고 눈으로 확인한다.


이때 수은이 함께 뛰기도 한다. 수은이 펌핑하는 모습은 마치 물방울이 지면에서 통 튀어 오르는 것처럼 힘차게 뛴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미세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소리가 잘 안 들리면 다시 측정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수은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더불어 환경오염 가능성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혈압을 측정하기에 수동적인 방법은 시간이 걸리나 좀 더 정확한 수치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요새는 가정에서도 손쉽게 자동 혈압계를 이용할 수 있다. 자동 혈압계가 보편화되면서 수치 측정이 간편하며 빠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수치가 이상이 있는, 정확한 측정을 하여 비교해야 할 경우에는 여전히 수동 혈압계의 역할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혈압 측정 / 출처 MSD 매뉴얼 image


환자의 혈압이 기준치 이상으로 상승하면, 우선 환자가 평소 복용하던 약물과 생활 습관을 점검한다. 고혈압 약을 먹고 있음에도 혈압이 높다면, 환자의 상황에 맞는 적정한 약물 용량을 조정해야 한다. 이때는 상체를 약간 높여 앉히고, 다시 혈압을 측정하여 신체 상태를 평가한다. 수치와 신체 사정은 의사소통을 통해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고혈압이 지속되면 인체의 다른 기관에 손상을 일으키거나 관상동맥 및 뇌혈관 등에 죽상경화를 유발하게 된다. 이 경우 고혈압성 긴급이나 응급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갑자기 혈압이 심하게 상승하거나, 이유 없이 조절되던 혈압이 갑자기 높아질 때 발생할 수 있다.


고혈압성 긴급은 혈압이 180/120mmHg로 심한 혈압 상승이 관찰되고 다른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은 상태이다. 두통이나 호흡 곤란, 불안이 동반되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처치를 하게 된다. 고혈압성 긴급을 넘어 응급상황은 장기의 손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즉시 혈압을 낮추어야 한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은 니트로푸루시드, 니트로글리세린, 하이드랄라진, 니카르디핀, 라베탈롤 있고 모두 정맥으로 투여된다. 급격한 혈압강하로 처방된 약물은 전부안 양을 한번에 투여하지 않는다.


1시간 이내 혈압강하를 목표로 하나 정상 수치까지 바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떨어질 수 있도록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급격한 저하는 신장이나 뇌, 관상동맥에 허혈을 유발하므로 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단 뇌에 출혈이나 대동맥박리가 동반되면 예외적으로 빠르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기준의 수치는 정해져 있지만,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접근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약물이 없이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약물이 필요할 수 있다. 과도한 적용도 문제지만, 약물 사용을 꺼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적당'이라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몸을 돌보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처럼,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고 적당한 처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적당한 온기를 손끝으로 다루는 것처럼, 환자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처치를 통해 건강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혈압이 오르면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이 적절히 작동된다.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며 혈압, 맥박, 호흡이 올라가면 정상적인 신체기능을 도모하는 부교감신경이 이를 감소시키고자 활동을 하게 된다. 이처럼 양쪽의 원활한 협동이 우리 몸의 균형을 유지하며 생명을 이어간다. 혈압을 낮추는 기능은 부교감신경뿐만 아니라 신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혈압이 올라가면 신장에서 나트륨을 빠져나가게 하고 수분 배설을 늘려 혈액량이 감소하게 된다. 그로 인해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게 된다. 반대로 혈압이 내려가게 되면 신장 안의 나트륨과 수분 배설은 자연히 감소하게 되고 이에 따라 혈액량이 늘어나 혈압이 정상으로 유지하게 된다. 신장에서 레닌이라는 효소가 분비되어 결국 앤지오텐신 II 호르몬이 생성되는 사실 또한 관여하는 작동 기전이 신기할 따름이다.

혈압 조절: 레닌-앤지오텐신-알도스테론 계통 / 출처 MSD 매뉴얼 image


혈압 하나만 보아도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체 각 기관이 연결된 채 서로 협력하여 적당의 온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러한 적당의 온기는 그 양을 알 수 없지만 혈관을 통해, 호르몬을 통해, 근육과 뼈를 이어가며 신경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러 곳을 두루 일하고 있지만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내 몸의 역할에 스스로 경건한 마음을 보낸다. 실제 업무할 때도 환자의 혈압에만 급급하기보다 전체가 잘 순환되도록 관찰하고 돕는 것이 필요하다. 약을 주사할 때에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용량을 제대로 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빠른 효과보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어가 내 안의 균형을 맞추고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당의 온기를 마음으로 빚어내고 손으로 다해낸다. 눈을 맞추어 혈압 버튼을 누르는 것에 손끝의 힘을 다정히 한다. 감기는 커프의 바람 소리가 힘차게 오르고 이 안에서 적당이라는 온기가 잘 품어질 수 있도록 간호로 답하다.




적당이라는 기준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으로



맥압(주 1): 맥압은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의 차이를 말한다. 혈관의 탄력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혈압과 함께 체크하는 것이 좋다(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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