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의
시│현정아
에어컨이 없으며 못 사는 세상이라지
뜨거운 해를 삼킨 여름이
꽉 막힌 도로만큼 이글이글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열기는
호흡마저 꽤 거칠게 한다지
그래도 눈을 감고 창을 열고
여름을 신나게 맡아봐
나무마다 걸린 햇살을 느껴봐
빛나도록 반짝이던 빛깔을 좀 봐
가장 긴 해를 삼킨 잎들이
나부대는 소리를 봐봐
싱그런 초록이 진해져
깊은 하늘빛이 머물고
바람이 가져온 이야기는
아름드리 그늘이 되고
여름이 핀 자리에 진한
풀냄새가 그대로 멈춰
발가락을 간질이며 웃지
여름은 그래서 여름이라지
출퇴근마다 창밖 열기가 여름을 한층 실감 나게 한다. 도로마다 이글거리던 아지랑이는 겨울이 지나 봄을 안아가는 가벼운 온도의 따스함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열기다. 흐르는 땀만큼이나 힘겨운 더위 안에 사로잡혀 여름은 지금이 가장 덥다. 그래서 여름은 초록이 담당하나 보다.
어린 시절 평상 위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수박을 자르면 초록 풀 냄새가 코끝에 걸리고 달콤한 향이 붉게 물들어 땀을 식힌다. 그늘을 드리운 초록 나무가 강한 햇살을 그대로 퉁겨내 반짝거린다. 청포도 물빛에 발을 담그면 있는 그대로 멈춰진 여름 세상이 청량해서 재미가 있다. 풀벌레 소리 품은 여름밤의 별빛은 윙윙대던 모기만큼이나 소란스럽다. 어린 날의 여름은 그래서 가장 시원한 추억 속에 있다.
초록을 맡는다. 창을 여니 더운 열기가 훅 들어 오지만 이내 잠잠해진다. 펼쳐진 초록의 나무가 근사하게 다가온 까닭이다. 가장 가까이의 여름을 실컷 맡는다. 초록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풀빛의 향기가 시선에 멈춘다. 선명한 시절을 여름처럼 안아가 잠시라도 기억에서 끄집어낸 초록 세상이 너무나 멋지기만 하다.
아름다운 시절, 흘러가는 세상. 온통의 진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