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시간
시│현정아
촉촉한 가을밤이 짙어지는 날이면
눈을 들어, 나를 가만히 바라봐 주세요
빗물을 머금은 빛깔들을
살며시 어루만져 주세요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못 올 시절입니다
놓인 가을밤,
가벼운 인정을 한 꼬집 넣어 두었어요
단풍이 들 듯, 깊이 자리하도록
천천히 익어가는 중입니다
지나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고이고이 살펴봐 주세요
비는 싸르르, 부드러이 내리고 있지요
비를 맞은 나뭇잎에 고요가 흐르네요
깊어지는 가을만큼,
눈을 들어 보아요
덩달아 나도,
조금씩 익어가네요
마치 가을처럼요
가을이기에 만나는 비의 내음은 선선하면서도 약간의 으슬으슬함이 더해진다.
이 시기에 내리는 비의 빛깔은 참으로 가을스럽다.
퇴근 후 조금씩 내리는 나뭇잎의 비 무게는 고요를 안고 있다.
흩날리는 우수의 공기가 더해진 자리에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은 가을을 익혀내기 위한 단계마다의 시간을 끊임없이 돌리고 있다.
숨을 한껏 들이켜니 가을밤이 살며시 다가온다.
나무를 에워싼 빗줄기의 방울들이 잎마다 매달려 각자의 빛깔을 포용한다.
덜 익은 초록의 청준을 안고, 다음에 놓인 노랗게 붉어가는 시간들을 어루만진다.
누구의 시간이 덜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때마다 인내와 과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있나 보다.
가볍게 마주친 눈에 비가 내린다.
가로등을 따라 빛줄기가 비처럼 흩날린다.
나도 가을처럼 익어가는 중이다.
나를 이끌어 북돋우고 다시 일으키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삶은 참으로 구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