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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발길 닿은 곳에

by 현정아

발길


시│현정아


밤이 되어도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태곳적 잉태로 피고 지며

수많은 조각들로 이어진 숨결


밤이 있어야 비로소

낮의 바다는 그렇게 이어진다


깊고 긴 호흡,

남겨진 물길을 따라

가벼이 내쉬다


따뜻한 낮의 시선은

실은 밤마다 우뚝 선

파도마다의 탄성인 것


끝끝내 이어진 길


물결 따라 나르고 나른

수평의 곡선에 멈추어 서다


발길 닿은 곳에





추석을 앞두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바다를 찾았다. 오랜만에 나들이 겸 맛있는 음식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바다는 언제 보아도 좋은 마음을 품었다. 온갖 시름도, 기쁨도 모두 껴안는다. 머무르는 곳마다 이야기가 된다.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순간이 된다.


한참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나서 바다를 돈다. 멀리 노을빛이 아름답게 물들고 바다는 이미 썰물이 되었다. 갯벌에 총총히 박힌 갈매기의 발자국 따라 걸음을 걷는다. 시간을 이루는 파도, 물결이 낸 길을 따라가니 하루가 꽉 차게 기울어진다.


밤의 공간이 만들어낸 낮의 시선이 내 눈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다. 내어주고 받아들이며, 가득 품었다 기우는 바다의 공간은 끝이 없다. 온갖 것을 품어 길게 숨을 내쉰 바다는 파도는 불러일으킨다. 잔잔하게 때론 거칠게. 반복적인 지켜냄과 버팀의 연속이다.


그것이 있어야 생명이 살아가는 기회가 된다. 파도의 탄성이 부서지는 곳은 삶을 일으키는 성장의 곡선이다. 수평선으로부터 밀려든. 발길을 따라 바다가 품으로 밀려든다. 내 호흡이 살아가는 흔적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밤이라면 이것을 인정하여 안아간 순간은 낮의 일상으로 이어진다. 파도를 따라 이어진 물결은 바다가 내는 길. 내가 내는 길은 천천히 이루는 발길. 거대함 안에 아주 작은 걸음이지만 이 걸음으로 이어진 곳이 곧 내 삶이다.


귀환하는 삶. 이어지는 삶. 그곳을 걷는 나는 행복해진다. 걸을 수 있다는 설렘은 끝이 아닌 ‘다시’의 시선이다. 모든 움직임 안에 고요를 담아 다시금 겸손해진다. 바다의 광활함이 곧 그러하다.


눈에 안기는 풍경을 따라 녹여낸 오늘은 존재의 일부로 깊게 남아 걸어가는 내내 멈추어 서게 하는 행복이 된다. 바다로 이어진 길, 그곳에 발길이 닿는다.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03.jpg 갈매기가 노니는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04.jpg 하늘의 바다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06.jpg 파도가 내는 소리는 고요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07.jpg 잔물결따라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08.jpg 해가 비치다


KakaoTalk_20251004_224043327_11.jpg 바다가 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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