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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우리, 그대로의 사랑

by 현정아

가을밤


시│현정아


단풍 든 불빛을 따라

딸아이와 걷는 산책길이 얼마나 좋은지

하루 24시간, 86,400초 동안 흘러가던

어느 시간이 이 시간만큼이나 귀할까

밤은 깊고 짙어가고

향기는 가을처럼 곱기도 하다

두런두런 걷는 이야기에

세월이 묻고

한 사람의 풍경이 있고

서로를 믿어주는 마음이 있다


단풍 든 불빛은 여전히 빛나고

가을밤은 우수수 발길에 차여

오도 가도 못하게 푹 안기던


우리, 그대로의 사랑




늦은 저녁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했다. 딸과 함께 걸으며 두런두런 나누던 이야기, 손 꼭 쥐고 걷는 이 길이 얼마 만인지. 가을밤이 운 좋게 녹아든다. 쉴 새 없이 달리던 하루를 뒤로 하고 수고했다는 어루만짐, 곱게 물든 단풍이 불빛을 따라 핀다.


가을밤을 걸으며 마음이 개운해진다.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가 흘러가던 오늘 동안 가장 기쁜 하루가 마무리된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공기를 들이 켠다. 가을이 멋지게도 갈무리된다.


여전히 반짝이는 단풍의 불빛은 우리를 향해 가득 비추고 있다. 올려다본 단풍 가득한 길, 내 눈 안에 폭 안기던 그 품을 잊지 못한다.


토닥이던 아이 등이 어느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시간은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기쁜 날들은 흐르고 있다. 마음이 사랑으로 우수수 떨어지며 발길을 가득 채우던 가을밤. 아무래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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