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주말 오후, 카페에 나와 사색하던 도중 통유리 너머로 우연히 분홍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층에서 내려다본 길가는 하나같이 무채색 사람들이 즐비했기에 그 틈에서 분홍 점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시선을 끌었던 점의 정체는 바로 분홍색 장화를 신고, 분홍색 우산을 쓴 꼬마였다.
꼬맹이는 즐거웠는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으며 우산을 돌리고 있었다. 우산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난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산 꼭지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초췌한 몰골로 카페 구석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생기 없이 흐린 눈을 껌뻑이며 다시 책장을 펼쳤다.
나는 언제부터 우산 돌리기를 그만뒀을까.
요즘 목적 없이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게 됐다. 철저히 손익 관계를 따져가며, 계산하에 행동하는 그런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아마도 천진난만함이란 삶이 익숙해짐에 따라 어른이 되면서, 계약대로 신이 앗아가는 제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른들이 천진난만함을 유지할 수 있는 구역도 생겼으면 좋겠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물웅덩이도 밟을 수 있으며, 우산도 맘껏 돌릴 수 있는 그런 구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