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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숙희 Sep 19. 2023

유럽의 이민자들

마르세유 여행기(3)

     하지만 최근 상황을 들어보면 그것도 옛말인 듯하다. 이민자들이 밀집된 마르세유 북부 빈민가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인터뷰이들은 여전히 이민자들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며 종교로 인한 차별(마르세유 인구의 1/4이 북아프리카계라고 한다)이 극심하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길바닥에 앉아 구걸하던 이들이 어찌어찌 터전을 마련하더라도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대 인간으로 그들에게 동정심이 들면서도 그곳이 우리 동네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난민이나 불법 이민자를 포용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 그저 감상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광장에 앉아 구걸하는 이들이 정식 비자를 받아 들어왔는지, 난민 심사를 받는 중인지 혹은 무작정 바다를 건넌 불법체류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신분적인 차이를 차치하고서라도 피부색도, 종교도 다른 이방인들이 가진 것 하나 없이 우리 동네에 밀려들어오는 상황을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자신이 나는 없다. 오죽했으면 말도 안 통하는 나라로 목숨 걸고 건너왔겠냐고 말은 쉽게 해도, 문화도 언어도 다른 이들을 수용하고 이들과 융화되는 문제는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중국, 일본 외에는 인접한 국가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의 난민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기 쉽지만 우리도 2018년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무사증 입국제도를 통해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인 약 500명이 무더기로 난민 신청을 하면서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면서 정보를 얻기가 전보다 훨씬 쉬워진 데다, 브로커들의 활약으로 난민의 이동 범위가 넓어진 결과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들의 거취를 분명히 정하기 전까지 제주도 출도를 제한하는 대신 일자리를 지원했다. 한편 난민을 고용하는 고용주에 이슬람문화 교육을 제공하고 대상자를 선별해 소정의 생활비도 지원하기도 했다. 현재 이들 대부분은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아 현재는 전국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대상으로 사회 통합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반대여론을 의식해 우왕좌왕하는 통에 초기 대응이 미흡하기는 했지만 난민 수용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처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예멘 난민 사태(?) 이후에도 중국과 인도 국적을 가진 체류자들의 난민 신청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더 잘 수용할 수 있으려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합의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바다 건너온 이민자들을 받아들인 지 몇백 년이 된 마르세유에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우리'와 '너희들'을 구분 짓는 건 인간의 본성인 걸까. 하지만 우리 집 마당 안으로 불쑥 들어온 낯선 이방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상황을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을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딱한 사정이 있는 나그네에게 인도적으로 따뜻한 손길을 내밀자고, 결국에 우리 집에 이득이 된다고 설득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만 설득이 먹히려면 적어도 나그네가 우리 집에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고 집안사람들이 믿어줘야 하는데, 이민 역사가 길든 짧든 거의 모든 나라가 이 부분을 해결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예전에 미국에서 일할 때 만난 이탈리아인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가톨릭을 뿌리로 하는 나라인데 종교색이 너무 짙은 이민자들 때문에 이탈리아의 문화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했다. 특정 종교를 소외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학교 교실에 늘 있던 십자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가 찼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일하다 보니 오히려 할 말이 많아졌다고 했다. 친구는 평소답지 않게 격양된 목소리로 자신은 미국 사회에 소속되려고 노력하는데 막상 고국에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민자들 때문에 문화가 흔들리는 게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친구 이야기를 듣고 유럽에서 보수 정당이 득세하는 현상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구 감소세가 심상치 않은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려면 외국인을 고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물론 노동력이 부족해 정식으로 노동비자를 발급해 받아들이는 외국인과 불법 이민자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현관문을 열었든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든 문화적인 차이를 좁히고 언어의 벽을 허무는 노력은 똑같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 대한민국은 어떤 사정에 의해서든 국경을 열 가능성이 다분하다. 예멘인들을 받아들일 때처럼 낯선 문화에 대한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도록 충분히 교육하는 한편, 우리 땅을 밟는 이들이 우리 문화에 수월하게 융화되도록 언어교육 프로그램 같은 제도적인 장치도 필요할 것이다. 한편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국민에게 해를 끼칠 경우를 염두에 두고 강력한 대책도 마련했으면 좋겠다. 외국인의 범죄 비율이 내국인의 범죄 비율보다 높지 않다는 연구들이 국내외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지역에서는 외국인에 의한 강력범죄율이 내국인보다 높았다는 연구가 있었다. 이들 범죄자는 특정 외국인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범죄를 저질렀을 때 더욱 엄격하게 조처했으면 좋겠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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