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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단 한사람

마흔의 결혼소식에 주변의 반응

by 아테냥이

마흔인 나의 결혼 소식은 20대, 30대 때의 친구들 청첩장 모임과는 사뭇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축하해!”라는 환호보다는 “이제야 가는구나” 하는 어쩐지 담담한 안도의 말이었고, 육아에 지친 친구들은 오랜만의 외출에 설렘이 더 크게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신부인 나는 다이어트나 피부관리 같은 걸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내 결혼식을 핑계 삼아 이중턱을 없애고 몸매를 가꾸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신부 친구들이 너무 늙어 보이면
신랑 측에서 보기 안 좋아!

그럴듯한 명분 아래 친구들은 거금을 들여 시술과 레이저를 받았다. 그로 인해 친구의 신랑들도 내 결혼식을 D-day로 기억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진짜? 하는 거야? 가지 마... 제발 가지 마..."라고 애절하게 붙잡는 지인들도 있었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나이 들어가던 우리는 어느새 묘한 연대감을 쌓아왔는데,

그 대열에서 한 명이 결혼으로 떠나간다는 것에 대한 막막함과 쓸쓸함 같았다.


붙잡는 손길 속에는 쓸쓸함과 축하가 뒤섞여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지막에 떨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축하해!"를 건네는 축하인사에는 그들의 복잡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훨씬 더 담담했다.

마흔의 결혼은 더 이상 '허락'을 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스무 살의 결혼이 충격이고 서른 살의 결혼이 안도라면, 마흔의 결혼은 그저 사실의 전달 혹은 조용한 통보와 가까운 느낌이었다.


엄마는 평소 저녁산책길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결혼하면, 지금 하는 고민보다
훨씬 어려운 고민들을 해야 해.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친구들이 결혼한 자녀들의 여러문제들로 끙끙대는 모습을 보며 결혼은 신중히 하라는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그런데 '혼자 즐겁게 살라'던 엄마는, 막상 결혼 준비가 시작되자 가장 들뜬 사람이 되었다.

나와 다투지 않아도 되는 자유 때문이었을까. 이제 챙겨줄 딸이 떠난다는 홀가분함이었을까? 아니면 딸의 행복을 바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결혼 후 첫 명절에 이모들과 제주도로 훌쩍 떠나 밝게 웃던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그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빠의 반응은 달랐다.

평생 감정 표현이 풍부했던 딸바보 아빠는 극도로 긴장을 했고 상견례와 결혼식 내내 평소와는 180도 다른 어색한 모습이었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어색하게 웃고, 뭔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노룩패스 사건'이 일어났다.


결혼식 포옹 순서에서 아빠는 눈앞의 나를 보지도 않고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듯 무시한 채 신랑만 껴안았다.

순간 '뭐지?' 싶었지만 결혼식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나만 혼자 민망해하며 넘어갔다.

그런데 그 황당한 장면이 고스란히 사진과 영상에 남아서, 남편에게는 평생 써먹을 웃음 소재가 되었다.


장인어른이 나만 껴안아주고
자기는 완전 패스했어, 하하하!


나중에 알고 보니, 시아버지도 그때 눈물이 날까 봐 나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고 했다. 아빠도 그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결혼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다.

심지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목을 꺽꺽이며 울음을 터뜨리는 분.


바로, 우리 외할머니였다.


아흔이 넘으신 외할머니는, 어릴 때 직장생활로 바쁜 엄마 대신 나를 키워주신 내겐 찐 엄마 같은 분이다. 그래서 결혼식에 꼭 모시고 싶어 할머니와 가장 가까운 예식장을 골랐지만, 독감이 유행하던 때라 결국 위험하다는 가족들의 판단으로 오지 못하셨다.


결혼 몇 달 전부터 할머니께 여러 번 예비신랑을 보여드렸다.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이내 직접 예비신랑을 데리고 가서 첫인사를 드렸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마치 처음 듣는 소식인 양 깜짝 놀라며 물어보셨다.


네가 결혼을 한다고? 결혼을 해?


그러고 나서 예비신랑의 얼굴을 보고는 안도에 젖은 빛으로 말씀하셨다.

"인상이 참 좋네! 아이고 참 잘됐다." 하시고, 엄마에게 안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하지만 단 몇 초 혹은 몇 분 후, 마치 기억을 새로 고침 하듯 다시 같은 질문이 시작된다.


"네가 나이만 들고.. 결혼을 해야 할 텐데... 아이고. 결혼을 해? 결혼을 한다고? 아~ 진짜? 인상이 너무 좋다. 잘됐다, 잘됐다."


치매가 할머니의 기억을 앗아갔지만, 결혼 소식만큼은 매번 처음 듣는 듯이 울컥 눈물을 터뜨리셨다.

이 무한 반복의 루프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신부가 되고 외할머니는 매번 새로운 기쁨을 느끼신다.


놀라운 건, 수십 번의 첫인사에도 신랑은 늘 ‘합격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한두 번쯤은 다른 반응을 보여도 될 법한데, 할머니는 언제나 같은 미소로 “좋다, 잘됐다”를 반복하셨다.






결혼 후, 할머니를 뵈러 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결혼을 했어?”라고 물으셨지만, 갑자기 아주 오랜만에 몇 년 전 또렷했던 할머니로 돌아오셔서 내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며 말씀하셨다.


시부모님께 잘해야 한다.
예의 바르게 항상 인사도 잘 드리고,
남편에게도 잘하고.
다툼이 생기면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알겠어요~’ 하고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알겠지? 잘 살아라 그래 그래.


그 긴 덕담은 마치 오래 준비한 선물처럼 내게 안겨왔다.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으로 단답만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마치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려는 듯 또박또박 말씀해 주시는 그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몇 분 후면 다시 잊어버리실 텐데, 그 짧은 순간만큼은 분명히 나의 삶을 걱정하고 축복해 주시는 또렷한 어른이었다.


어쩌면 할머니만이 진실을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흔의 결혼이 그저 매번 새롭게 기뻐할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이라는 것을.

치매라는 병이 할머니에게서 기억은 앗아갔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더욱 순수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외할머니의 꺽꺽거리는 울음은, 결국 내 삶을 향한 가장 뜨거운 축복이자 내가 마흔에 처음 경험한 가장 특별한 합격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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