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북 버지니아 지역에는 버지니아 한미장애인협회 (VA Korean American Disabled People's Association)라는 비영리단체가 있다. 이민 1세대 한국인 부모들이 90년대 초반 만든 단체로 자폐,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등의 장애를 가진 자녀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어울릴 수 있도록 야유회, 캠프, 크리스마스 파티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곤 한다.
나도 두어 달 전 주말 KADPA 아버지들 저녁 모임에 처음으로 나갔는데, 다들 나보다 10-20세 많은 분들이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금세 벽을 허물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슈가 있는 자녀들이 삶의 중심이 된 사람들인지라 다른 얘기를 하다가도 금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가게 되더라. 대부분 성년의 자녀를 키우시는 분들이다 보니 먼저 가본 길들 - 고등학교, 직업학교, 학교 이후의 생활 - 에 대한 조언을 젊은 아버지들에게 나누던 중이었는데, 자녀들의 나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 즉 전부가 놀라울 정도의 동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회에서 마주치면서 20대 초반 혹은 중후반으로 짐작했던 아이들은 실제로 30대였고, 심지어 나랑 몇 살 차이가 안 나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 태민이도 중학생이지만 외모도 하는 행동도 초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태민이 친구들도 대부분 자기 나이보다는 몇 살 어려 보인다.
잠깐 상념에 빠졌다. 왜 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은 나이를 먹어도 그 나이로 보이지 않는 걸까?
행복해서?
삶이 단순해서?
염려가 없어서?
아니, 어쩌면 사회적으로 성인 취급을 받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해서가 아닐까. 일상을 책임지는 선택의 순간도, 자신을 표현하는 기회도 충분히 가지기 어렵기에 그렇지 않나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끔, 아니 사실은 꽤나 자주, 미국에 살기로 한 내 결정이 옳았나 생각해본다. 아이의 장애를 알고 나서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미국에서 살아가기로 결심했고 여기서 주어진 좋은 환경과 여러 기회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록 궁극적인 목표였던 '자립해서 살아가는 성인'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 이뤄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미국에 남기로 결단을 내린 2019년 5월의 어느 날, 이 사실을 알았어도 과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Hug!"라고 말하는 아이의 눈을 본다. 계산도 가식도 없이, 순수한 기쁨과 사랑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한 얼굴. 가슴이 벅차 꼭 안아주다가도 이 녀석이 앞으로 마주할 세상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