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의 명과 암
이방인으로 사는 삶은 고달프다. 굳이 왜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해외에 나가서 먹고 산다고 생각해 보면 금방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쌓아 놓았던 많은 유/무형의 자산 (학벌, 직장, 인간관계, 돈...)을 포기해야 하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몇 발짝 뒤에 있는 출발선에 서서 다시 경주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민 생활에서 언어는 생각보다 큰 문제는 아니다 (‘생각보다’를 간과하지 마시길).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산 경험이 있다거나 아예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얼마간 살다 보면 100%는 아니라도 대충 눈치코치로 그들이 무얼 원하는지 대충 알아채는 (혹은 아예 못 알아들었으나 대충 알아들은 척하는) 기술을 익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하면서 쓰는 용어나 표현들은 한정적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노력한다고 극복할 수 없는 계층, 문화, 사회적 자본의 차이일 것이다. MBA를 하면서 많은 동양인 학생들이 미국인들과 친해지려 수업, 클럽활동, networking 등에서 노력하는 것을 보았지만 아예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속칭 “인싸 (Insider)”가 된 동양인은 보기 힘들었다. 언어가 모자라고 삶의 경험이 다르니 대화가 이어지기 어렵고, 설령 언어의 문제가 없더라도 (주로 영어 잘하는 인도 친구들이 그렇다) 태어난 지역과 졸업한 학교가 다르고 겹치는 지인이 없으니 유대감을 형성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레 백인, 흑인, 히스패닉, 인도, 중국 등 다양한 그룹이 생기고 주로 자기 그룹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비슷한 타입의 인재들을 모아놓은 학교가 이렇다고 한다면 연고나 지인 하나 없는 외국 회사 및 커뮤니티에서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충분히 짐작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친구가 해준 말을 되새겨 본다.
대부분 상황 자체가 아닌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래? 그러면 어디 미국 생활의 장단점을 하나하나 헤아려 보자.
1. 오염 없는 맑은 공기는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장점이다.
2.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없어 주말이 한가한 건 분명 좋지만 그리운 가족, 친구를 볼 수 없다는 단점으로 상쇄된다. 아니, 솔직히 손해다 이건. 한두 달에 한번 만나서 친구들과 저녁 먹던 순간이 많이 그립다.
3. 잘 관리된 운동장에서 수준 높은 야구를 접할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주전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니 (미국 친구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야구 경력 수십 년에 대부분 체격도 크고 힘도 좋다) 이것도 장점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4. 명목 소득은 꽤 늘어났다. 하지만 이 동네 물가는 더욱 높아서 저축 및 삶의 질은 한국보다 월등히 낮아졌으니 이건 명백한 마이너스다.
아직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 인종차별, 미국 공공서비스의 엄청난(!) 서비스 품질 등은 넣지도 않았지만 계산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자. 이쯤 되면 상황이 문제인지 내 반응이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으니...
이렇게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면 결국 마지막으로 남아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장애를 대하는 한국과 미국 사회의 두 가지 차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미국인들은 정이 없고 개인적이라는 말을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저 '개인적'이라는 말은 무관심이나 무정함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의 상황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예를 들어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소위 '특이한'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를 때,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거나, 흘겨보거나, 심지어 “왜 저런 애를 밖으로 데리고 나오나, 부모는 뭐하나” 따위의 말을 하기도 한다. 반면 미국에 살면서 내 아이가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지를 때 돌아보거나 흘겨보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진정시키고 주변에 사과하면 “애들은 원래 그렇다”며 웃음 짓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말이다.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이것이 장애 아동의 부모에게는 정말로 큰 위로와 지지가 된다.
2~3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뉴스를 보고 며칠간 가슴이 참 쓰렸던 기억이 난다. 서울 한 지역에 장애아동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려 하자 지역 주민들이 땅값이 떨어진다며 반대를 하고, 장애아의 부모들이 공청회장에서 단체로 무릎을 꿇으며 호소하는 사진을 보며 “한국에 돌아간다면 우리도 각오해야겠지” 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던 그때.
미국이라면 최소한 학교나 장애인 시설 관련되어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반 아동들과 장애 아동들이 섞여서 (Inclusion) 생활하는 경우가 꽤 있고, 그렇기에 “저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우리 모두 같이 지낼 수 있다”라고 하는 가르침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모든 공립학교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반이 운영되며, 부모는 매 학기마다 아동별로 맞춤화된 프로그램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필요한 사람을 도와 함께 갈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교육 철학 vs 다름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분리하려 하는 한국의 교육 철학. 이 차이는 장애인의 성장과 그들 가족의 삶에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작년에 알았다면 과연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방인마저도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그나마 아이를 위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부디 이 결정이 바른 결정이기를, 그리고 한국의 분위기가 바뀌어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힘든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