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새옹지마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이었지만 일주일만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프리스쿨을 알아봐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겨우 그게 뭐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는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바빴기에 모든 것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내가 알아서 진행해야 했다. 갓 미국에 와서 정보도 거의 없는데다, 영어로 의사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부담이었던 아내가 말이다.
물론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에서 다른 기관의 리스트를 아내에게 제공해주긴 했다. 하지만 아내가 나중에 말하기를, 모르는 학교에 찾아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아서 '학교가기 전 일년은 그냥 내가 데리고 있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 때 한국인 특유의 '엄마는 강하다' 본능이 발동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태민이가 발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생각한 아내는 결국 혼자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다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Open Door Preschool은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과 매우 가까웠다. 또한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의 디렉터가 정말 좋다고 강력 추천한 곳이기도 했다. 아내 말로는 일단 건물 초입에서부터 무언가 안정된 느낌이 들었으며, 안되는 영어로 더듬 더듬 아이 입학을 상담하러 왔다고 하니 행정직원 Ana 선생님이 정말 반갑다며 따스하게 맞이해주었다고 한다. 첫 프리스쿨에서의 딱딱하고 환영받지 못하던 경험과 180도 달랐던 것이다.
또한 프리스쿨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Ms. Debbie는 아내의 더듬거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빠짐없이 다 메모하며 진지하게 아내의 말을 경청하였다고 한다. 특히 태민이에 대해서 다양하게 질문하시며 얼굴도 못 본 태민이에게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는데도 '괜찮다, 정말 다 괜찮다'고 아내를 안심시켜주었는데, '여기서도 쫓겨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 컸던 우리 부부에게 그녀와의 상담은 큰 위안을 주었다. 다행히도 태민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딱 하나 남았었기에 큰 고민 없이 바로 아이를 등록하고 프리스쿨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Open Door Preschool은 “통합”과 “사랑”을 핵심 가치로 하는 시설로서, 처음 학교를 설립한 1975년부터 청각 장애인, 발달 장애인으로부터 일반 아이들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교육해 왔다고 한다. 인종이나 장애 등으로 인한 편견이나 구별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문, 이것이 바로 Open Door Preschool이 추구하는 이념이다. 여기서 우리 아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고 행복하게 지냈다. 태민이를 돌보기 위해 많은 선생님들이 고생하셨지만 그 누구도 태민이를 나무라거나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너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주셨으며 낯선 나라에서 온 우리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품어주었다.
큰 좌절로 시작했던 태민이의 프리스쿨 생활은 더 큰 감사함으로 마무리되었다. Open Door에서의 1년을 마무리하고 초등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Open Door'와 'Ana Teacher'를 찾을 정도였으니 아이가 이 곳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충분히 아실 것이다. 지금도 Open Door Preschool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 곳을 강력히 추천한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의 디렉터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