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두 가지

반향어 그리고 상동 행동

by Sol Kim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폐 아동을 키우는 데는 뭐가 필요할까? 도시? 나라? 자폐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면 누구나 책 한 권은 너끈히 쓸 수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많은 부모님의 리스트 Top 10에 과 함께 (필자는 태민이 하나 키우는데 다른 집에서 두세명 키우는 비용을 쓰고 있다) 분명히 들어갈 두 가지, 반향어상동 행동 대해서 집중적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반향어 (echolalia)


반향어란 상대방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질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아동은 반향어를 사용하면서 언어를 습득하나, 자폐 아동의 경우 유아기 이후에도 반향어 사용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심할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반향어는 자폐인들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자면, 아이에게 “이름이 뭐니?”라고 물었을 때 “김태민이요”라고 답하는 게 아니라 “이름이 뭐니?”라고 메아리처럼 들은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식이다. 혹은 자기가 뭔가를 하고 싶을 때 (i.e. 유튜브를 보고 싶을 때) 이전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숙제하고 유튜브”라는 말을 그대로 활용하기도 한다.


태민이는 이제 일곱 살 반인데도 아직 반향어를 꽤 사용하는 편이다. 아빠나 엄마가 뭔가를 물어봤을 때 이에 대해 바로 답을 하는 게 절반 정도 되고 (이것도 근 1~2년간 많이 좋아진 것이다) 나머지 반은 질문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래서 아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1. 같은 질문을 한번 더 던지거나 2. 다른 방식 (혹은 다른 언어)로 물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만 말하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잘 안 되실 테니 예시를 하나 들어서 설명을 드리자면 아래와 같다.


아내: 태민아, 사과 먹을래 오렌지 먹을래?

태민: 오렌지 먹을래. (반향어)

아내: 태민이 오렌지 먹고 싶구나?

태민: 사과 (대답)

아내: 엄마가 잘 모르겠네... Do you want to eat orange or apple?

태민: Apple, please (대답)

아내: 알았어. 태민이가 먹고 싶은 ‘사과’ 줄게!


그런데 사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수십수백 번 이걸 반복하면 아무리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어느 순간 한계가 오게 된다. ‘왜 수백 번 같은 질문을 해도 얘는 내 말을 따라만 하는 거지?’, ‘내 말을 제대로 안 듣는 건가?’, ‘얘는 도대체 언제쯤 나아지는 걸까?’ 등등...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가 절반, 아이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강화를 위해서가 나머지 절반. 특정한 상황에서 아이가 어떠한 대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는데, 바로 아이가 해야 할 말만을 말해주고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필자: (아이를 그네에 태우고) You want me to push you? (아빠가 너 밀어줄까?)

태민: Push you (반향어)

필자: 태민아, push me 해야지? (잘못된 예)

태민: Push me 해야지 (반향어)

필자: 아니 아니, PUSH. ME. PLEASE. (올바른 예)

태민: Push me please (반향어 or 대답)

필자: You want me to push you?

태민: Push me please (대답)

필자: OK! Now I am going to push you! (이제 아빠가 너 밀어줄게!)


아이가 한국어 & 영어의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상태라 언어 습득이 상대적으로 늦기도 하지만, 질문을 영어로 하든 한국어로 하든 이런 대화 패턴이 나오는 경우가 아직도 많으며 이때마다 앞으로 갈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상동 행동 (stimming)


아마 보통 ‘자폐’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바퀴 등 둥근 물건을 몇 시간이고 반복해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자극을 추구하는 것을 "상동 행동"이라고 부른다. 불빛이나 화면을 보며 껐다 켰다를 반복하거나, 비슷한 소리를 계속 내거나, 같은 곳을 계속 뛰어다니거나, 손이나 발을 계속 빨거나 만지거나 등등 아이마다 보이는 행동과 강도는 다 다르다.


상동 행동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많은 자폐인들의 감각기관이 불안정하기에 특정 감각 (i.e. 시각, 촉각)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자극을 주는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동 행동이 (신경 등의 문제로 인한) 자신 내부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면, 설령 이런 행동이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강제적으로 그 행동을 소거하는 것은 (i.e. 손을 빨 때 손등을 때린다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다행히 태민이의 경우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지나치게 눈에 띄는 상동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하나 꼽자면 요새 자기의 최애 Therapist인 Ms. Harper와 닮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폴짝폴짝 뛰며 “Hi!!!”하고 인사하는 정도일까? 한 번만 하면 이상하지 않으련만 왔다 갔다 하며 계속 반복하는 경우가 있어서 보통 아이의 손을 끌고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떠나곤 한다.


위와 같은 경우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겠지만, 태민이는 필자나 아내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야 웃으면서 받아주는 경우가 많지만, 바쁠 때나 정신없을 때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게 된다.


(사례 1)

태민: 새로운 호텔! (여행 가고 싶다는 표현)

필자: 응, 우리 호텔 가기로 했지? 가서 수영도 하고 재미있게 놀자. 근데 아빠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태민: 새로운 호텔 5월!

필자: 응 맞아 5월. 우리 태민이 똑똑하네 그걸 다 기억하고

태민: 새로운 호텔!

필자:... 태민아, 아빠가 호텔 언제 간다고 했지?

태민: 5월에

필자: 응 맞았어. 태민이도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물어봐. 아빠 바빠.

태민: 새로운 호텔 5월 맞았어!

필자: 야!!!!!!!!


(사례 2)

(저녁 시간, 필자와 아내가 대화중)

태민: 노란색 보들이! (아기 때부터 쓰던 애착 이불)

아내: 태민이가 노란 보들이 가져왔네. 보들이 좋아해요?

태민: (활짝 웃으며) 노란색 보들이!

필자: 아빠가 좋아 보들이가 좋아?

태민: 보들이가 좋아!

필자: …우리 아들이 졸린가 보다. 코~하고 잘까?

태민: 쿨쿨 자 (아내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필자: ‘휴... 이제 책 좀 읽어야겠다’

(5분 후)

태민: (뛰어나오며) 노란색 보들이!

필자: (너 잔다며 인마 -_-++) 맞았어! 노란색 보들이네! 태민이 똑똑하다!

태민: 코~자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태민이의 경우 본인이 모르는 것, 불확실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그런 심리적인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위의 사례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호텔을 '5월에 가는 게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 이불이 '노란색 보들이가 맞는지' 똑같은 질문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 아닐까 싶다.


어떤 식으로 상동 행동을 줄이거나 긍정적인 방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아이의 소통을 존중하되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여 더 나은 소통을 하도록 돕는 일일 것이다. 최근 필자 부부가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 중 하나는 반향어나 상동 행동이 지나칠 경우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이프의 경우 아이의 행동이 지나친 날에는 "노란색 보들이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지쳐서 말하고 싶지 않아"라고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해주곤 한다. 또한 같은 질문을 하루에 몇 번까지 할 수 있는지 토큰 보드 (token board)를 그려서 보여주기도 하는데, 보드나 A4용지에 10개의 체크박스를 그린 후 모든 박스가 체크될 경우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해주는 식이다.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필자도 매우 궁금하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폐 인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도 (최소 1~3%) 우리는 놀랄 만큼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아직도 자폐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떤 치료방식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조차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각개전투를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걸어 나가는 미지의 길. 오늘 내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 그리고 지금의 선택과 훈련이 더 나은 내일로 우리를 이끌어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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