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의 '이상함'에 대하여
한국은 다름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나라다. 모난 돌은 정을 맞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나라. ‘걔 특이해’가 ‘걔 이상해’와 사실상 같은 말이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면 ‘나서는’, ‘기 센’ 딱지가 붙는 나라. 나도 마냥 평범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해 가지 않는 평가를 받거나 이유 없이 불이익을 받을 때가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여태껏 내려온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도 아니고 노력해도 바꾸기 힘든 것으로 내 아들을 평가한다면? 예를 들어, 누군가가 선천적으로 다리 한쪽이 짧은 사람에게 ‘100m 달리기 기록이 좋지 않으니 당신은 열등하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혹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의지가 약해서 그러니 정신 차리고 마음 굳세게 먹고살아라’고 한다면 나는 그런 말은 항우울제 한알의 가치도 없다고 대꾸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면 ‘저 애 왜 저래? 부모는 뭘 가르쳤어? 왜 공공장소에 저런 애를 데리고 나와?’라는 의사를 온갖 언어적/비언어적 수단으로 표현한다. 필자가 과장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슬프게도 부모와 아이의 등 뒤에서 ‘애나 부모나 참 복 없다’ 같은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 비해 유독 발달 장애인들에게 냉랭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타자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의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온도가 미국의 절반 정도만 되었어도 필자는 MBA 학위 이후에 미국에 남을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혹은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아마 일반적으로 제일 잘 알려진 것은 ‘눈 맞춤’ 일 것이다. 하도 답답해서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고정시키고 억지로 눈을 마주치려 해도 아이의 눈알이 옆으로 스윽 돌아갈 때의 참담한 기분이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 아이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시선으로 내 얼굴을 쳐다볼 때는 마치 누군가가 내 눈앞에 내 죄의 증거를 흔들어대는 기분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감사히도 태민이는 최근 여러 치료를 받으면서 눈 맞춤이 많이 개선되어 요새는 엄마 아빠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눈을 잘 쳐다보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면 본능적으로 눈을 피하곤 했다.
사실 자폐인을 백안시하게 하는 문제 행동들은 눈 맞춤보다는 집착 및 감각 (sensory) 이슈 때문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자폐인들은 자신만의 규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는 것을 보면 견디기 힘들어한다. 문제는 이 규칙이 본인이나 부모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은 ‘저 애는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태민이가 어릴 때는 자기 주변의 모든 문을 자기가 닫아야 했으며, 방 안에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꼭 자기가 뛰어가서 문을 연 후 다시 닫고 와야 안심하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곤 했다. 그나마 이건 좀 커가면서 많이 없어졌지만 자기가 본 엘리베이터는 꼭 타봐야 한다는 규칙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릴 때는 차를 타고 가다가 이유 없이 울어재껴서 당황했던 적도 많고 (아니, 차 밖의 엘리베이터를 내가 운전 중에 어떻게 태워주니..), 급해서 다음에 태워준다고 하고 지나간 엘리베이터 때문에 백화점에서부터 집에 올 때까지 두 시간 내내 울어댄 적도 있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책들도 읽고 공부도 한 덕에 문제 행동을 보일 때 기저에 깔린 규칙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화가 덜 난다는 의미는 절. 대. 아니다), 이전에는 정말 ‘이 아이는 뭐가 문제지? 도대체 매번 왜 이러는 거야’ 하는 부끄러움에 화도 많이 내고 아이도 많이 혼냈었다.
뭐든 빙글빙글 돌리는 아이, 아무것도 아닌 소리에도 바로 귀를 막는 아이, 물건들을 꼼꼼하게 줄 세우면서 하루 종일을 보내는 아이.... 많은 경우 이런 행동들은 감각이 일반인 대비 너무 민감함에 기인한다 (sensory issue). 이들에게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자극이 넘쳐나는 곳’이기에 언제나 불안해하며, 마음을 안정 시기키 위해 펼쩍 펄쩍 뛴다든가, 손가락을 계속 들여다본다든가, 물건을 빙글빙글 돌린다든가 하는 자신만의 루틴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감각이 예민한 아이의 경우 스웨터를 입는다거나 수업 시작종을 듣는다던가 하는 일상적인 자극조차 큰 고통일 수 있다. 아이가 수업시간 내내 쉬지 않고 몸을 뒤틀거나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은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닌 너무 고통스러워서 보이는 본능적/반사적 행동인 것이다. 태민이의 경우 촉각이 예민한 편인데, 이로 인해 귀 청소를 위해서는 성인 두 명이 필요하며 (한 명은 전력을 다해 아이의 사지를 붙잡고 다른 한 명이 최대한의 속도로 귀지를 파내야 한다) 충치 치료는 수면 마취 없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한 살 한 살 먹으며 민감함이 조금씩 덜해진 덕분에 이발은 가까스로 사지 결박 없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릴때는 너무 울어서 미용실 옥상에서 머리를 깎은 적도 있다), 여전히 이발기가 귀 근처로 가면 전력으로 목을 움츠리며 저항하는 덕분에 뒷머리와 옆머리 일부는 늘 계단식 논 마냥 삐뚤삐뚤하게 마무리되곤 한다.
아마 필자도 태민이를 키우지 않았다면 ‘저 이상한 애들이 왜 저러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태민이가 자폐 진단을 받고 나서야 주변에 있는 특이한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태민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도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원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말썽을 부리려고 의도하는 것이 아니며, 이들은 타고난 무언가에 의한 피해자에 가까운만큼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