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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12. 2024

2. Karibu Tanzania

너의 꼴이 어떠하든 환영해 줄게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 부러워. 딸내미 잘 키워놔서 제 앞가림 잘해. 챙겨야 할 남편도 없고 신경 써야 할 시부모도 없고 챙겨야 할 친정도 없고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얼마나 편한 인생이야. 너무 부러워”  


살다 보니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인생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는 말이 생긴 것인가?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딸이 생활비를 부담하고 나의 용돈을 챙겨주기 시작할 때부터 일가친척 가족 하나 없이 홀로 딸을 키우는 고난한 나의 삶을 긍휼히 여겼던 이들이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지금 나의 삶을 누구와 바꾸고 싶지 않은 걸 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인가 보다. 


혼자서 아이를 키워낸 지난날이 가끔은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여전히 5만 원 이상 지출에는 몇 번이나 고민해야 하고 짠내 나는 통장잔고에 20평도 되지 않은 집에서 딸과 함께 자취생처럼 살고 있지만 나는 그 누구의 삶도 부럽지 않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딸린 식구 없는 홀가분한 인생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는 것 같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별로 있어본 적이 없다. 

대신 먹고 싶은 게 많지만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보지 못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 역시 나의 식욕 역시 저렴하고 소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난이 나의 자유에 발목을 잡아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현실 파악을 잘하고 체념이 빠른 나의 성향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는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진 적도 있었다. 

100원 벌어다주면 100원어치. 1000원 벌어다주면 1000원어치 살림하면서 다정하고 착하고 성실한 남편과 함께 알콩달콩 살아보는 그런 현모양처의 삶 말이다.    

그러나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나는 이기적이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나는 성실하지 않았고 무책임했다. 

무엇보다 현모양처의 삶보다 나에게 더 어울리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는 꿈을 잊었다. 

나는 현모양처대신 작가가 되었다.       


불량 많이 내는 미싱공에서 기적처럼 드라마 작가가 되고 난 뒤 나는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명예의 욕망에 잠시 사로 잡혀버린 적이 있었다.   

결국 그 욕망은 육체를 갉아먹는 암세포처럼 나의 인생을 갉아먹었고 시한부 통고를 받은 환자처럼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 삶과 죽음의 위험한 경계에서 만난 탈북민들과 아프리카 난민 아이들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의 의지를 수혈받았다.  

그들의 손을 잡고 안고 안아주면서 내 욕망의 덫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이 내민 손이 치료약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결국 나는 살기 위해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다. 


다시 아프리카에 간다고 했을 때 나의 삶을 부러워한 지인들은 "그곳엘 또?" 라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러워한다.  

"좋겠다!! 가고 싶은 데 가서." 

나 역시 좋긴 하다. 그리고 다행이다 싶었다.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을 하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고 되고 싶은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금의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인천에서 아디스 아바바를 거쳐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선교사님 내외분이 카리부(Karibu)  라며 반긴다. 

Karibu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될 단어 중 하나라고 한다. 

낯선 이방인을 일단 환영부터 하는 낯선 나라의 낯선 풍경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았든 네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든 너의 꼴이 어떠하든 일단  Karibu야."

 

내가 일 년 동안 살게 될 곳은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탄자니아 수도인 다르살렘과 아루샤에 이어 3번째로 큰 [모시]라는 도시와 이웃해 있는 [킬레오]라는 시골마을이다. 

3천 명 정도의 주민들이 대부분 옥수수, 양파. 당근. 토마토등의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끌어오기엔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에 대부분 사람들은 전기 없이 지낸다. 

식수는 우기 때 받아놓은 빗물을 사용하고 곳곳에 얕은 우물을 파서 길어먹고 있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고생을 한다. 

   

일 년 동안 내가 묵게 될 숙소이다. 

말 그대로 딱 집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집을 그릴 때 그릴 수 있는 딱 그런 집. 

생활에 꼭 필요한 방. 주방. 화장실 외에 모든 것을 생략한 단순한 나와 닮은 집에 살게 되었다.


짐을 풀고 나오니 1년간 이웃이 되어줄 이들이 ‘카리부’ 라며 다들 반긴다.

이들뿐만 아니었다. 수많은 벌레들과 파충류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원숭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까지 반겨준다. 

 

숙소 앞은 도축장이었고 숙소 앞의 너른 들판으로 동네의 모든 소들이 풀을 뜯어먹으러 온다. 

당나귀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요란하지 처음 들었다. 

마침내 사진으로만 봐왔던 풍경 속의 일부가 되었다.        

이웃의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소를 잡고 만찬을 준비했다. 

아이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고 싶었다. 

고기를 듬뿍 넣은 카레라이스다. 

카리부 라며 반겨준 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를 환영해 줘서 고맙다고. 내가 어떤 인간인지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그저 나라는 존재만으로 환영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지만 그 마음을 말이 통하지 않아 전할 수 없었다. 

Asante (고마워) 하며 미소로 보여줄 수밖에 

Karibu에 Asante로 대답하면서 얼른 스와힐리어를 배워야 되겠다. 다짐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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