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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14. 2024

3. 이것이 바로 현타?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보석이 박힌 듯 반짝이며 빛나는 별들이 나에게 속삭인다. 

“내일도 비는 오지 않을 거야. 봐~ 우리가 이렇게 반짝이며 빛나고 있잖아. 내일도 쨍쨍하게 더운 날에 벼룩이 득실 될 거야.”

내일도 비가 안 오는 거야? 젠장!! 그럼 벼룩은 얼마나 설칠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벼룩 걱정을 하다니. 

낭만은 벼룩에게 뺏겨버렸다. 낭만뿐이겠는가? 벼룩에게 모든 일상을 뺏겨버렸다.  

카리부의 나라에서 가장 격하게 나를 환영한 것은 바로 벼룩. 


도착하자마자 벼룩과의 전쟁이다.

처음에는 벼룩인 줄 몰랐다. 

'벌레에 물렸나?' 싶었는데 하얀 티셔츠를 입고 나서야 붙어있는 벼룩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벼. 룩. 을 경험해보지 않았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가볍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존재의 이름이었다. 

오죽하면 '뛰어봤자 벼룩'이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 말을 만든 사람은 벼룩의 존재를 무시한 것이다. 벼룩의 습격을 당해보지 않은, 벼룩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나의 인생에 뛰어든 벼룩은 내 인생의 무시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했냐고 하면 다시 한국행을 고민할 정도였다. 진지하게. 

‘막상 와보니 여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라는 단순 변심도 ‘어머. 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던 거야?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아'는 환경부적응에 의한 포기도 아니고 '음식이 너무 입에 맞지 않다'는 까탈스러움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면 비참한 기분 따위 느끼지도 않았을 텐데. 벼룩이라니. 

단순한 벼룩이 아니었다. 재앙 같은 벼룩 떼들이었다.

애굽의 이 떼의 재앙이 분명 이랬을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끔찍한 벼룩 떼들.      


한국으로 돌아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나뿐만 아니었다. 선교사 부부도 탄자니아에서 17년을 살았지만 이런 벼룩 재앙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면서 벼룩 떼들이 잠잠할 때까지 잠시 피신해야 되나 고민할 정도로 벼룩 떼는 우리의 모든 일상을 스톱시켜버렸다. 

본격적인 탄자니아의 적응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잘 짜인 전술, 작전상의 계획이라도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쓸모가 없어진다.’라는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 몰트케의 말처럼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웠다고 해도 실전이 중요하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앎이 이렇게 적극적인 삶이 될 줄이야. 

오랜 가뭄 때문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 온 마을이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은 한국에 있을 때 들었다. 

코끼리들이 물을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을 정도였다. 

그동안 살면서 비가 오지 않아서 어려움을 당한 경험이 없는 나에게 가뭄의 고통은 뉴스 속의 타인들 이야기였는데 탄자니아 도착하자마자 아~ 이것이 가뭄의 고통임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어떤 약도 벼룩을 죽이지 못했다. 어떤 방법도 벼룩을 잡지 못했다. 

온 사방천지에서 미친 듯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벼룩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우리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벼룩만큼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소. 양. 염소. 당나귀. 들개. 심지어 원숭이들은 벼룩의 온상지였다. 

다시 한번 아프리카에서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벼룩 때문에 고통받을 줄이야, 벼룩이 치명적인 변수가 될 줄이야. 제대로 현타가 온 것이다.      


벼룩을 잡고 벼룩이 붙어있는 옷을 털고 방을 청소하고 벼룩에 물린 몸을 긁고 또다시 벼룩을 잡고 옷을 털고청소하고 몸을 긁고 가끔은 고통스러워 울고 하다 보니 하루가 지나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지내냐?’ 라며 한국에서 안부를 물어오는 이들에게 벼룩 떼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 공감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약 쳐. 전기 파리채가 직빵이래 하면서 조언을 해주었지만, 오히려 속만 터졌다.      


처음에는 다시 한국으로 갈 생각은 없었다. 

몸에서 피고름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가 오면 괜찮아질 터이니. 

비만 온다면 새롭게 맞이한 탄자니아의 일상들을 계획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밤하늘의 별은 더욱 반짝였고 한낮의 하늘은 푸르디푸르렀다. 

가뭄 때문에 받아놓은 빗물도 바닥이 난 상황에 석회질 물로 샤워한 몸과 벼룩의 흉터가 만나 피부가 곪기 시작했다. 

벼룩에 물린 자국이 석회질 가득한 물을 만나니 화산구가 되었다. 

짓무르고 터지고 피고름까지 났다. 


결국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벼룩 때문에? 의아해하는 이들에게 나의 몸을 보여주리라. 

아니 남들이 뭐라 하든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가 지금 죽을 것 같은데. 

하지만 당장이라도 가야 될 것 같은데 막상 가려고 하니 억울했다. 

'왜 가?'라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장황하게 의미 부여했던 것이 창피했다. 

보석을 박아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라는 다짐이 무색했다. 

 

마마~나를 본 아이들이 달려온다. 

외국인인 나에게 마마라며 마음을 열어준 아이들이다. 

한국의 이모님처럼 특별한 의미가 없는 호칭이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마마라고 부를 때마다 정말 이 아이들의 마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좀 전까지 한국으로 가고 싶었던 마음이 아이들을 보자 다시 두근거린다.  

벼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도 벼룩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긁고 있었다. 

하긴 가뭄의 증상이니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벼룩과 지내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면역력이 나보다 강한 것도 있었고 익숙해져 있던 거다.      

한 아이가 내 옷에 붙어있는 벼룩을 잡아준다. 눈도 좋다. 

그러고 보니 내 눈에도 아이의 몸에 붙어있는 벼룩이 보인다. 

어느새 아이들과 나는 서로의 몸에 붙어있는 벼룩을 잡아주고 있다. 

원숭이처럼 벼룩을 잡는 모양새가 기가 막혀서 웃었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가  말을 한다. 

"마마 조금만 더 견뎌봐요. 우리도 견디고 있잖아요. 내가 잡아줄게요. 마마도 잡아주세요"라고.  


그래. 조금만 더 버텨보자.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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