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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15. 2024

4. Pole Mama

나의 아픔이 너의 탓이 아니란다.

1시간 간격으로 20~30분씩 드릴로 뇌를 자르는 듯한 두통이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마음 굳게 먹은 날 찾아온 두통이다. 

벼룩 떼와는 또 다른 형태와 질감의 고통이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두통과 벼룩 떼들이 동시에 덮쳐 올때면  차라리 시에라리온에서 말라리아와 장티푸스를 앓았을 때처럼 고열로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극심한 두통이 덮치니 벼룩 떼의 고통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거였다. 

두통이 겨우 잠잠해지면 졸음이 몰려왔다. 마치 산통을 겪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온몸에 붙어있는 벼룩 떼들이 나를 잠들게 놔두지 않았다. 

부랴부랴 벼룩 떼들을 잡다 보면 또다시 두통이 덮쳤다.

다른 곳은 몰라도 두통은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았는데 이곳은 탄자니아 시골 마을. 

두통의 원인을 찾아낼 의료장비나 알아 낼 의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나의 머리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순간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두통이 두려움보다 더 컸다. 두통이 덮칠 때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국으로 가야 할 더 확실한 명분이 생긴 거다. 

그런데 이 몸으로 20시간 가까운 비행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뇌종양이 아닐까? 뇌암일까? 라는 의심은 시간이 지나자 뇌종양이나 뇌암이 되어버렸다.      

나를 보러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아이들 생각에 마음도 두통을 앓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걱정과 근심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하면서도 창피했다. 

세상에 이런 민폐가 어디있을까?

더는 민폐 끼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비행기 표를 알아봐야 되는데...알아봐야 되는데...하는데 시간이 갔다.      


"Hodi" (들어가도 될까요?)

오늘도 여지없이 오후 1시 느에마가 찾아온다. 

게스트 하우스 청소를 해주는 친구다

처음에는 나 혼자 사용하는 숙소에 사람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느에마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시골마을에는 느에마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하여 나의 생활 도우미가 된 느에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느에마는 나의 훌륭한 스와힐리어 선생님이기도 했다. 


바람나서 집을 나가버린 아버지를 대신해서  병약한 엄마와 할머니의 가장이 된 느에마.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컬리지까지 입학을 했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을 포기하고 일자리를 찾던 중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센터에 들어와서 오게 되었다.  

라디오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는 느에마는 그뒤 예수를 더 알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찾아갔을 정도로 신실한 친구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느에마에게 도움이 주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이 친구의 필요가 무엇인지. 돕는자가 되고 싶었는데 느에마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니.      

나의 스와힐리어 선생님이자 도우미이자 딸이 된 느에마

자리보존하고 있는 나의 곁에 온 느에마가 나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한다. 

스와힐리어 기도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전심임을 느낄 수 있다.

기도를 다한 느에마는 나를 안아주면서 흐느끼기 시작한다. 

느에마의 눈물로 나의 어깨가 축축해졌을 정도였다.

나는 당황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울어주는가?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가 얘한테 무엇을 해주었는데?

느에마는 더듬거리면서 영어로 이야기 했다. 

"만약 당신이 한국에 있었다면 아프지 않았을텐데..."

그러면서 그녀는 미안하단다. 


"pole mama"


karibu (환영합니다) habari (안녕하세요) asante (감사합니다) 만큼이나 많이 사용하는 말

[pole] 죄송합니다. 안됐어요. 어떡해요. 안타깝네요 등

수십가지의 뜻이 담겨 있는 pole.


느에마의 pole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었으며 사랑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슨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느에마는 나라는 존재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울컥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다. 그들의 기도가 진심인것을 믿는다. 

나 역시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었다. 나 역시 진심이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 누군가는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계속해서 폴레 폴레 라며 울고 있는 느에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안심시켜 주었다. 


“얘야. 내가 아픈건 너의 탓이 아니란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야


겨우 말을 하고 나니 내가 안심이 되었다. 

하나님은 느에마의 기도를 듣고 곧 치유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튿날 느에마는 수박 한통을 사들고 찾아왔다. 

느에마 하루치의 일당을 깨트린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사갖고 왔다며 수박을 건네면서 여전히 "pole mama" 라고 한다.

한국에 갈꺼냐는 네에마의 질문에 아파서보다 미안해서 가야 되겠다라는 말대신 "pole"로 대답했다. 

네에마는 나의 폴레에 울었다. 

그날 우린 서로에게 폴레 하면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왜 울었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긍휼한 마음때문이었으리라. 


얼마나 울었을까? 

그러고보니 두통이 가라앉았다. 울지 않아서 생긴 두통이었나?

수박을 잘라 나눠 먹었다. 

수박은 식어버린 국처럼 뜨뜻 미지근한 맹물맛이었다. 우리의 눈물을 먹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견뎌야 되지 않을까?" 

눈물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래. 조금 더 견뎌볼게" 

또 다른 눈물이 대답하였다. 

수박을 다 먹어갈때즈음이 되자 곧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때문에 잘 견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아니 정말 절실하게 이곳에서 살고 싶었다. 

매일 매일 벼룩 잡고 물리기도 하고 두통의 고통도 감내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현지인들 속에서 그들을 체휼하면서 그들과 함께.

서로를 긍휼히 여기면서 폴레~하며 같이 울고 같이 아파하면서. 

하루의 일당을 전부 맞바꾼 수박 한덩어리의 사랑을 받고 주면서.      


신기하게도 그로부터 일주일이 되지 않아 마침내 비가 내렸고 벼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고, 그와 함께 두통도 사라졌다.

이렇게 기적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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