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꽃 Nov 19. 2024

6.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 마음 따위는 없지

“고향이 경상도 쪽이신가 봐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되묻곤 했다. 

(완전 서울말로) “티나요?” 

나의 질문에 열에 아홉은 마치 웃기는 개그 프로의 한 장면을 본 것처럼 푸하 하고 웃는다. 

세상에 그것을 몰랐단 말이에요? 완전 티나요. 

재밌어죽겠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 나는 낙담했다.  

'나는 진짜 신경 써서 서울말로 썼는데, 이번에도 실패군.' 


고향을 떠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나의 경상도 사투리는 절대 감추어지지 않았다.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경상도 사투리를 감추고 사근사근하고 보드라운 서울말을 배우고 싶어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첫사랑처럼 완전 실패했다. 

하지만  그게 별 소용도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제는 티가 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은 정말 잘 감추고 싶은데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나의 경상도 사투리처럼 마음도 잘 감추지를 못한다.  

마음도 언제나 티를 낸다.       


요즘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소똥이 정말 치우기 싫다.] 

정말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자꾸 마음이 표정과 행동이 되어 나간다.

그럴 때면 정말 창피하다.   

누군가를 돕고 살리기 위해 왔는데 그깟 소똥을 치우는 게 싫다고? 

그런데 사실이다. 소똥이 정말 치우기 싫다.  

숙소 앞 들판은 마을에서 제일 풀이 많이 나는 저 푸른 초원이다. 

유치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마을의 소들이 주인을 따라 입장한다. 

수십 마리의 소들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고 돌아가면 소똥 천지다.  

처음에는 '소주인들이 소똥을 치워야지. 풀까지 뜯게 해줬잖아.' 했는데 거름이 되는 소똥을 왜 치우나 라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다니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잖아.'라는 말은 귓등으로 듣는다. 

답답한 사람이 치우면 되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소똥은 돌멩이와 같다. 

거리의 돌멩이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듯이 그 누구도 소똥을 신경 쓰거나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없다. 

소똥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소똥이 나의 시험거리가 되었다. 

보기는 싫은데 치우기도 싫고 소주인들은 신경도 안 쓰고 뛰어노는 동네 아이들도 심지어 선교사님 조차도 신경을 쓰지 않고 거슬러하지도 않는데 나만이 소똥을 치워야 되는데 라는 마음으로 애가 달았다.       

어쩌겠는가. 결국에는 내가 치울 수밖에. 

하지만 절대 좋은 마음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똥을 치우면서 조현병 걸린 사람처럼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이다. 

"그래. 이곳에 살기 위해 왔잖아. 아이들에게 내 것을 주기 위해 왔잖아. 그런데 이깟 소똥 따위 뭐가 문제겠어."

"아니 왜 아무도 안 치우는 거야. 가뜩이나 애들 씻지도 않은데 소똥이라도 밟고 넘어져봐. 어떡하라는 거야. 소똥이 거름 되고 좋다면 밭에다 갖다 버리면 좋잖아." 

뭐 이런 식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결국에는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마음은 티가 났나 보다. 

표정에서. 행동에서. 말투에서.     

소똥을 치우고 있는데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나 보다. 

순간, 나의 바닥이 들킨 것 같아 안절부절못했는데 아이들이 눈치를 채고 어디선가 삽을 구해서 똥을 치우기 시작한다.

차라리 "Safisha Pamoja" (함께 청소하자)라고 했으면 좋았을걸. 

 옆구리 찔려 절 받은 것도 아니고 소똥천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된 것보다 내가 싫은 게 먼저였던 나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이다. 


비가 오니 온 천지가 진흙뻘밭이다. 

발목을 잡고 있는 진흙뻘에서 한 걸음 옮기는 것이 예간 힘든 일이 아니다. 

걸을 수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오래 가뭄 끝에 단비이기에 뻘밭의 불편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일이다. 

주일만큼은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주일에 비가 오면 우산이 없는 교인들과 아이들은 고스란히 비를 맞고 뻘밭을 걸어 교회에 온다. 

장녀인 어린 언니들은 어린 동생을 업고 걸리고 온다.  

비를 홀딱 맞고 한 시간이 넘게 진흙길을 걸어 예배드리러 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감동도 잠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날 빤짝빤짝 걸레질로 깨끗하게 닦아놓은 교회 바닥에 남겨진 소똥과 진흙으로 찍혀있는 발자국 천지였다. 

 

안돼. 안돼. 나도 모르게 걸레를 가져다가 바닥을 닦고 교회 입구에 박스를 뜯어 임시방편으로 발닦개를 두고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뻘건 진흙이 이미 신발을 잡아먹은 상태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진흙바닥이 된 교회 바닥은 마치 소똥 천지인 마당 같았다. 


내 마음은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 아냐. 아냐.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뭐가 문제야. 아이들이 예배에 왔잖아. 아이들을 봐.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니? 진흙바닥이 된 교회 바닥 따위 신경 쓰지 말고 이 아이들과 함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라구‘ 


하지만  나의 의지와 달리 나의 눈과 마음은 진흙발자국으로 엉망이 된 교회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티 내고 싶지 않은 이 마음도 티가 났는지 바닥을 보면서 굳어있는 나의 표정을 읽은 느에마가 아이들의 신발을 벗기고 털게 한다. 

비를 홀딱 맞은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진흙을 털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정신 차려!!! 지금 네 마음이 진흙뻘밭이야!!"

그랬다. 지금 나의 마음이 소똥천지 진흙뻘이었다. 

아무도 못 들어오고 나조차도 나아갈 수가 없는. 

꼼짝없이 진흙뻘에 갇힌 이 마음으로는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이 마음으로는 나도 상대방도 다치게 할뿐이다.  


얼른얼른 햇볕을 공급받아야 되겠구나. 뽀송뽀송 말려질 수 있도록

그래서  좋은 것을 심고 좋은 열매를 거두고 아이들에게 나눠줘야지. 


아이들의 미소가. 아이들의 눈빛이. 아이들의 기도가. 아이들의 찬양이. 진흙뻘밭이 된 나의 마음을 말릴 수 있도록 얼른 눈을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자. 


대신 지금 나의 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티 나지 않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