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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Nov 18. 2024

5.당신의 발뒤꿈치를 잡아도 될까요?

-아니 나의 손을 잡아주렴

탄자니아의 언어는 스와힐리어다. 

영어가 공용어이긴 해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에 있는 모시정도만 나가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맹률 80%가 가까운 이곳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연히 스와힐리어를 배워야 했다. 

속 깊은 대화는 나눌 수 없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언어는 어느 정도 숙지해야 했다. 

다행히 스와힐리어는 영어에 기반을 둔 언어라서  중동나 동남아나 러시아보다는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었다. 


탄자니아행을 결정하고 한국에서 아주 기본적 회화는 공부를 했다. 

Habari. za asubuhi, mchana, jiony (아침. 점심. 저녁인사) 

Hujambo(당신 어때요?) Sijambo (나는 좋아요) 같은 기본 인사말이나

Ninatoka Korea kusini. Jina langu bom 같은 자기소개.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Nimefurahi kujuana na wewe 등.    


스와힐리어는 부정문이 거의 없다. 

Wewe je? [당신은 어때?]라는 질문에 대답은 한 가지다. 

Nzuri [좋다]


mbaya [좋지 않다]라는 단어도 있지만 사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이방인은 더욱더.   

자신이 기분이 어떠하든, 자신의 집이 폭싹 망하고, 죽을병에 걸렸을지라도 그들의 대답은 한 가지다

Nzuri.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kidogo [약간] 정도만 붙이는 게 전부이다. 

인사를 건네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좋다고 대답하는 거. 

그것이 그들의 인사 문화였다. 


나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에서 기껏 배워간 언어들은 현지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중국어를 한창 배울 때 중국에 팔려가 10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탈출한 중국어에 능통한 탈북민 자매가 중국말은 한국사람 한 명 없는 중국에서 3달을 살다 보면 저절로 말이 트인다면서 학원보다 중국에서 중국 남자와 결혼을 할 것을 조언했었는데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중국남자와 결혼을 하라고?라는 나의 말에  그 정도 희생은 각오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확신에 찬 그녀 때문에 반나절 정도 잠시 중국남자와의 결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는)


역시나 언어는 한국인 없는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부대끼면서 배워야 된다는 것을 백번 실감했다. 

한국에서 열심히 습득한 언어는 이곳에서는 휴지조각 같았다. 

사람들은 나의 발음 때문인지 알아듣지 못했고, 나 역시 간단한 말조차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Sikamoo [시카모]였다. 

한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단어였다. 

시카모가 무엇인가? 킬레오 마을의 사투리인가?

궁금은 했지만 반응은 보여야 했기에 

Nzuri. [좋아요]

 Siku njema. [좋은 하루 보내세요]

 Tutaonana  [다음에 또 봐요]라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손까지 흔들어 주면서 말이다.       


알고 보니 Sikamoo는 당신의 발뒤꿈치를 잡아도 되겠습니까?라는 뜻이란다.   

옛날 노예시절. 주인에 대한 극도의 존경심을 담아 전한 인사말이란다.

"존경하는 주인님 당신 발 앞에 납작 엎드려 당신의 발뒤꿈치를 잡아도 되겠습니까?"

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시카모 마마”라고 하면 나는 은주리. 시쿠젬마가 아닌 Marahaba [마라 하바]라고 대답해야 한다. 

‘너의 그 존경을 감사해’라는 뜻이란다. 

나는 그동안 "당신의 발뒤꿈치를 잡아도 되겠습까?"라고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좋아. 좋은 하루 보내. 다음에 또 봐 라는 엉뚱한 대답을 한 셈이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라고는 하지만  어원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특히 아이들이 빨래를 하다 말고, 물을 긷다 말고, 나무를 하다 말고, 자전거 뒤에 커다란 물건을 싣고 달리다 말고, 나를 보고 "시카모" 할 때 나는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마라 하바 할 수 없었다. 

대답대신 아이들의 짐을 덜어줘야 하지 않을까? 

마라하바는 너무 잔인한 대답 같았다.  

이곳의 아이들 역시 여느 아프리카 시골 아이들처럼 학업보다 노동에 더 노출되어 있다. 

농사철이 되면 학교 대신 부모를 따라 산과 들로 따라가야 한다.  

여자 아이들은 육아와 빨래를 전담한다.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도 많으며 어린 여자 아이들은 성폭행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시카모라고 한다. 

“당신이 발뒤꿈치를 잡아도 될까요? 나는 당신을 존경해요”

배우고 실컷 놀아야 할 아이들이 어른들의 발뒤꿈치를 잡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대답은 언제나 

Nzuri 다

며칠 전. 여자 아이 세 명이 숙소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길래 가까이 가보니 가끔 교회에 오는 비트리스가 히잡을 쓴 두 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시카모 라며 엉거주춤 인사를 한다.  

아이들 눈에 눈물이 한가득이라 나는 마라하바라는 대답대신 “왜 학교에 안 갔어? 무슨 일이야?” 서툰 스와힐리어로 물었다.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다.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외국인 나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긴 아이들이 말을 한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결국 느에마를 불러 통역을 부탁했다.      

이유인즉슨 점심식대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곳의 공립학교는 학비가 없는 대신 기타 비용들이 많아 차라리 학비를 책정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을 정도다. 식대는 물론이요 시험을 칠 때에도, 학년이 올라갈 때도, 교사의 비품을 구입할 때에도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상당수다. 


식대가 얼마냐고 물으니 일인당 3천 실링. 우리나라 돈으로 천오백 원이란다. 

그 돈이 없어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쫓겨났고 내일의 학업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음이 먹먹했다. 오죽했으면 생판 모르는 외국인인 나를 찾아왔을까 싶었다.      

느에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외국인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하지만 거짓말이라도 속아주고 싶었다.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 날 수도 있는 3천 실링 일수도 있지 않은가. 


숙소에 들어가 비스킷과 사탕 3개와 9천 실링을 갖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눠주니 아이들은 내 앞에 엎드려 아산테 아산테 라며 눈물을 흘린다.  

나는 얼른 아이들을 일으켰다. 

"이러지 않아도 된단다. 내 앞에서 엎드리지 않아도 된단다. 나의 발목을 잡지 않아도 된단다. 대신 내가 너희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해 주렴. 우리 함께 손을 잡자꾸나"

라는 간절한 마음을 대신하여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들의 손은 오랜 가뭄의 논밭처럼 거칠었다.    

며칠뒤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를 나눠주기 위해 학교에 갔더니 나를 본 아이들이 멀리서 뛰어온다. 

나를 보자마자 시카모 마마 라고 한다. 

나는 마라하바 대답대신 아이들을 힘껏 안아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미처 배우지 못한 스와힐리어라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아이들은 느꼈을까? 

나를 보고 아이들은 환하게 웃어주었다. 


하루아침 사이에 아이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여전히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배우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시카모의 인사도 계속 될 것이다. 

이곳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내 것을 포기하고 아이들에게 흘려가게 하는 것. 

환하게 웃음을 주고 받는 것으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렇기에 나 역시 Wewe je? 라고 나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에게 Nzuri 라고 대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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