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형형색색의 애착인형들이 종종 보이곤 합니다. 아이들도, 애착인형도 귀여워서 멀리서 보고 있을 때면 웃음꽃이 필 때가 많죠. 그런데 아이들과 애착인형의 관계는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애착인형과 분리되었을 때 불안함을 느끼거든요. 아이들의 흔적이 가득한 애착인형을 부모님이 세탁기에 슬며시 넣어두는 순간,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애착인형을 돌려달라면서 보채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애착인형과 분리되면 마치 부모님과 분리되는 것처럼 불안해하죠. 애착인형이라는 이름처럼 고작 인형에 불과한 것일 텐데도 말이에요. 그래서인지 어린이집을 가는 아이들도 애착인형을 꼬옥 안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도 애착인형에 관심을 가지는 걸까요?
무려 1953년에, 아이들에게 애착인형이 어떤 가지고 있는 의미를 연구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과 비슷하게, 1950년대에도 아이들도 담요나 장난감 곰과 같은 대상들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해요. 이를 관심 있게 보았던 도널드 위니캇은 애착인형이 '이행기 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이행기라는 단어가 상당히 어색하죠. 이행기란 '변화하고 있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행기 대상은 '아이들이 변화하는 시기에 존재하는 대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어요. 이때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기에, 애착인형과 같은 이행기 대상에 집착을 보이는 걸까요?
애착인형은 어린아이들에게 이행기 대상의 역할을 합니다
생후 4개월 전후로 아이들은 행동의 변화를 보여요. 생후 4개월 이전의 아이들은 하나의 물건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로 본인의 손가락이나 주먹을 빠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반면에 생후 4개월이 지난 아이들은 하나둘씩 특정 물건에 애착을 보이기 시작해요. 위니캇은 이 점에 주목해서, 생후 4~12개월 사이의 아이들에게 중요한 정신적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출생 후 수개월 동안 아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의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울면, 엄마가 짠하고 나타나서 아이에게 바로 젖을 먹여줘요. 이처럼 갓난아기들은 어른들과 차원이 다른 호화스러운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들은 배고픔을 느껴도 스스로 음식을 찾아먹거나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달라고 요구를 해야 하지만, 갓난아기들은 배고프다고 울기만 하면 어머니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죠. 기꺼이 아이의 수족이 되어주는 어머니 덕분에 아이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왕이 된 것 같아 의기양양해합니다. 이를 두고 정신분석에서는 '전능감(omnipotence)의 환상에 빠져있는 아이'라고 하는데요, 이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배고프다고 울면 배를 채울 수 있는 가슴이 바로 생기네? 저 가슴은 내가 울면서 만들어냈으니까 당연히 전부 내꺼야.
아이에게 헌신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가 들으면 어이가 없을 수도 있는 말입니다. 우리 아이가 보채고 있으니 걱정되어서 바로 달려가서 배를 채워줬더니, 아이는 이런 깜찍한 착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때의 아이는 너무 어려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인과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몸과 엄마의 가슴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이 울어서 가슴을 만들어냈다고 착각하면서 지냅니다.
갓난아이가 배고픔으로 보채기 시작하면 엄마가 나타나서 젖을 먹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하며, 왕이 된 것 같은 전능감의 환상에 빠집니다.
어머니는 수유 외에도 아이를 재워주고 대소변도 치워주면서 아이가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아이는 한동안 달콤한 꿈과 같은 엄마와의 관계에서 행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행복도 언젠가는 끝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거든요. 어머니도 사람이기 때문에 지쳐있을 때면 아이가 보채도 바로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 것인데도 잘못 알아듣고 재우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엄마의 큰 잘못도 아닐뿐더러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와 엄마 간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협화음 덕분에 아이가 전능감의 환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요. 달리 표현하면 아이가 달콤하기만 했던 꿈에서 깨기 위해서는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에서 좌절을 겪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생후 4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엄마의 가슴이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늘 생겨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제 아이는 자신과 엄마가 별개의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해요. 하지만 자신의 요구를 늘 들어주고 나와 늘 함께해 주던 엄마가 사실은 나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것은, 아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좌절입니다.
이제 아이는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요. 이 고통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번은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이지만 동시에 아이에게 견디기 버거운 좌절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아이는 불안에 떨면서 자신을 달래줄 수 있는 새로운 대상을 찾아요. 이 대상이 바로 이행기 대상이고, 현실의 엄마를 부분적으로나마 대체하는 역할을 합니다.
전능한 왕과 같았던 달콤한 환상 속의 관계에서, 분리와 좌절을 피할 수 없는 현실 속의 관계로 아이의 대상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은 아이에게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위니캇은 이 과정이 생후 4~12개월 사이의 아이들이 겪는 대상관계 변화의 시기, 즉 '이행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엄마와 처음으로 분리되면서 불안함과 외로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애착인형은 엄마 대신에 전능감을 느끼며 마음대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줍니다. 그렇게 이행기 대상은 엄마와의 분리에서 슬퍼하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줘요. 이러한 배경들이 있기에 아이는 애착인형과 분리되었을 때 상당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고, 아이의 애착인형을 부모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아이에게 큰 불안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엄마와의 분리에서 좌절한 아이에게 애착인형과의 분리를 겪게 하는 것은 한번 더 좌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럼 아이들은 애착인형과는 어떻게 분리가 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상관계에서의 내면화 과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면화(internalization)란 타인의 특성을 자신의 내면으로 받아들여서 나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에요. 따뜻한 어머니와 함께 자랐던 사람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경험했던 어머니의 따뜻함을 자신의 내면에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엄격한 어머니와 함께 자랐던 사람은 어머니의 엄격함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겠죠. 이처럼 내면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부모님의 좋고 나쁜 특성들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행기 대상의 내면화 과정
위의 그림을 보면서 설명드려보겠습니다. 첫 번째 그림은 생후 4개월 이전의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입니다. 이 때의 아이는 자신과 엄마를 구분하지는 못하긴 해도, 아이의 요구에 적절히 반응해주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천사와 같은 '좋은 대상'의 이미지로 아이에게 남아요.
두 번째 그림은 생후 4개월이 지나가면서 이행기 대상이 필요해진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입니다. 이제 아이와 엄마는 분리되었고, 이 시기의 엄마는 이전처럼 엄청나게 좋은 대상의 역할을 해줄 수는 없지만, 대신 늘 사랑을 받아주는 이행기대상(애착인형)이 함께 좋은 대상의 역할을 해줍니다. 그래서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이행기 대상의 사랑을 합쳐서 충분한 사랑을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둘 수 있게 돼요. 이를 정신분석적으로 표현하면 엄마의 좋은 대상으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이행기 대상의 좋은 대상으로서의 이미지가 함께 아이의 마음 속으로 내면화된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그림은 이행기 대상 없이도 엄마와 분리될 수 있는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입니다. 아이는 엄마와 이행기 대상이 보여주었던 좋은 대상으로서의 이미지를 자신의 내면에 품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아이는 이제 외로워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좋은 대상들을 추억하며 버틸 수 있게 됐어요. 이 결과는 어머니가 보여주었던 따뜻한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아이는달콤하지만은 않은 현실 속의 관계들을 큰 충격을 받지 않은 채로 천천히 배워나갈 수 있어요.
이제까지 아이들이 이행기 대상을 통해서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겠죠. 그럼 현실 속을 살아가는 성인들이 애착인형을 안고 자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일까요?
성인이 애착인형을 안고 자는 것은 일종의 퇴행에 해당합니다. 그리고퇴행은 신경증적 방어기제에 해당해요. 이전에 설명드렸던 방어기제의 분류를 떠올려보면, 퇴행이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아닌 것이 의외이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연애할 때를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른스러워 보이기만 하는 사람들도 연인 앞에서는 어리광을 부리기도 하죠. 물론 남들한테는 많이 낯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퇴행적인 행동들은 연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나의 마음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는 정상적인 행동이기도 해요.
그렇다면 성인이 잠시나마 애착인형을 안고 자는 것이 지나친 수준의 퇴행일까요? 늦은 밤에 혼자 남아 있으면 외로운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둘 수도 없는 일이죠. 그래서 우리도 마음껏 사랑하기 위해서 잠시나마 이행기 대상을 찾을 수도 있고, 이것은 지나친 수준의 퇴행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이행기 대상이 필요할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어린아이가 애착인형을 찾듯, 어른들도 외로울 때면 가끔은 이행기 대상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