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장에서는 하인츠 코헛의 자기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자기애의 개념을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자기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알고 계신가요? 평소 우리는 자기(self)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심지어는 음식집에서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콩글리시가 사용되기도 해요. 이렇게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설명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문헌들을 뒤져봐도 자기에 대한 설명은 이론가들마다 다릅니다. 코헛조차도 명확하게 자기를 정의 내리려 하지 않았고, 그나마 자기는 정신적 세계의 중심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한 적은 있었습니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어쓰면 자기는 '내가 경험하는 세상의 중심' 정도가 될 수 있지 않나 싶기는 해요. 하지만 워낙 철학적인 고민이 계속되어 온 단어라서 자기를 정의 내리는 것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식당에서도 물은 셀프라고 하는데, 막상 self(자기)는 생각보다 정의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자기는 생애 초기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경험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나 자신도 제대로 경험할 수가 없겠죠. 그래서 생애 초기의 아이들에게는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지나치게 어려운 일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자기는 방치된 채로 파편처럼 흩뿌려져 있는 상태와도 같습니다. 코헛은 이러한 자기를 파편화된 자기(fragmented self)라고 설명했어요. 갓 태어난 아이들의 몸이 미숙하고 유약하듯이, 갓난 아기의 파편화된 자기도 미숙하고 취약한 상태의 자기입니다.
아이는 성장해 가면서 파편화된 자기의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서 하나의 응집된 자기로 뭉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도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자기의 파편을 모을 수 있을까요? 아직 자기를 스스로 경험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파편화된 자기를 한데 모아두기 위해서는, 미숙한 아이 대신 파편화된 자기를 응집시킬 수 있도록 돕는 자기 대상(self-object)이 필요해요. 자기 대상은 타인의 자기애적 욕구를 충족시켜 줌으로써 타인의 자기가 발달할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갓난아기가 울면 어머니가 달래고 아이의 욕구를 들어주죠. 여기서 어머니는 아이의 자기 대상이 되어주면서 공감적 반응을 아이에게 제공합니다. 아이는 마음껏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고, 어머니의 공감적 반응을 받으며 자기애적 욕구를 마음껏 채워요. 자기애적 욕구가 충족되면 자기는 충분히 힘을 얻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의 파편화된 자기는 보다 응집된 형태로 자기의 발달을 이룰 수 있어요.
파편화된 자기는 자기 대상의 공감을 통해 보다 응집된 형태의 초기 자기로 발달할 수 있고, 초기 자기는 최적의 좌절과 공감을 경험하면서 완전히 응집된 자기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이제 파편화된 자기는 한 단계 발전한 형태의 초기 자기(rudimentary self)가 됩니다. 초기 자기가 만들어진 뒤에도 아이와 어머니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상호작용을 계속해요. 하지만 사실 어머니가 아이의 모든 소망과 욕구에 반응하고 응원해 줄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나중에 아이가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아이가 뛰어다닐 때는 열렬히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아이가 운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려 하면 아무래도 응원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죠. 이처럼 부모님도 사람이고 아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모는 아이의 잠재력에 선택적으로 공감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공감적 반응의 총합이 부족하지는 않아서, 아이의 자기는 계속 발달할 수 있게 됩니다. 점차 견고한 구조를 가지며 발전해오던 초기 자기는 핵 자기(nuclear self)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데요, 이 시기는 아이가 약 2세 즈음되었을 때입니다.
세포의 중심에 존재하는 세포핵이 생명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듯이, 자기의 중심에 존재하는 핵 자기도 자기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코헛은 핵 자기의 구조를 전기의 양극에 비유했습니다. 전기에 (-)극과 (+)극이 있듯이 핵 자기도 '야망의 극'과 '이상의 극'이 있다고 해요. 야망의 극에서는 완벽한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과대 자기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의 극에서는 완전한 존재와 함께하고 싶은,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참고로 자기애적 욕구에 대해서는 '우리의 삶에는 자기애도 필요해요'에서 설명드렸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듯해요.
위에서 설명드린 양극의 구조를 가진 자기를 양극성 자기(bipolar self)라고도 합니다. 전기적 에너지가 (-)극에서 (+)극으로 흐르면서 이동하려고 하듯, 양극성 자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겨요. 야망의 극에서 이상의 극으로 정신적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흐릅니다. 그래서야망의 극에서 흐르는 힘에 떠밀리고, 이상의 극으로 향하는 힘에 이끌리면서 우리는 각자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세상에 펼칠 수 있게 됩니다. 달리말하면 야망은 우리의 꿈을 뒤에서 밀어주는 힘이고, 이상은 우리의 꿈을 앞에서 끌어주는 힘입니다. 이전에 자기애적 욕구가 잘 만족되어야 자기가 발달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마찬가지로 야망의 극과 이상의 극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애적 욕구를 잘 충족시켜야만 초기 자기가 응집된 자기로 발달할 수 있습니다.
(-)극에서 (+)극으로 전기적 에너지가 흐르듯, 야망의 극에서 이상의 극으로 정신적 에너지가 흐릅니다. 덕분의 우리의 재능과 기술과 같은 잠재력은 앞으로 흘러갈 수 있어요.
이전에 파편화된 자기가 원시적이고 취약한 자기라고 말씀드렸죠. 파편화된 자기와 대척점에 있는 응집된 자기(cohesive self)는 가장 성숙하고 튼튼한 자기입니다. 자기가 보다 응집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야망의 극과 이상의 극이 필요로 하는 자기애적 욕구가 잘 만족되어야 한다고 설명드렸죠. 이를 바꿔 말하면 '나는 완벽해요'와 '나는 완벽한 존재와 함께해요'와 같은 자기애적 욕구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해 줄 사람과 내게 완벽한 존재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해요. 즉, 완벽한 자기애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자기 대상이 필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완벽하고, 완벽한 사람과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코헛은 아이가 겪는 좌절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이에요.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겪은 아이는 많은 상처를 입고 자기의 발달이 멈춰버리게 됩니다. 반대로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을 겪은 아이는 크게 상처 입지 않은 채로 자기의 발달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어요. 그래서 코헛은 아이의 일생에서 좌절은 피할 수 없을지라도, 아이가 겪는 좌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부모가 적절히 공감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좌절일지라도 부모가 곁에서 공감해준다면 그 좌절의 무게는 상당히 덜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을 코헛은 '최적의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최적의 좌절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지만, 응집된 자기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어요. 참고로 코헛의 최적의 좌절은 '부모가 적당히 좋아야 아이가 독립할 수 있어요'에서 설명드렸던 위니캇의 적당히 좋은 어머니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두 개념 모두 어렸을 때 겪는 적당한 좌절이 있어야 성장해서도 피할 수 없는 좌절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아이는 부모의 공감적 반응과 최적의 좌절을 겪어가며 결국 응집된 자기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응집된 자기는 파편화된 자기보다 성숙하고 튼튼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거나, 완벽한 존재와 함께하지 못하는 자기애적 좌절을 겪을지라도 크게 좌절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요. 반대로 파편화된 자기를 가진 사람은 조그마한 자기애적 좌절에도 자기를 잃어버리고서 세상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꿈이 무너지지 않고무사히 이루어지기 위해서응집된 자기가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자기의 발달과정을 설명드렸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꿈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과정과도 닮은 부분이 많죠.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는 파편화된 자기를 가진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격을 가진 아이이길 바랄 수도 있고, 어떤 직업을 가진 아이이기를 바랄 수도 있어요. 그렇게 부모는 아이의 재능, 기술과 같은 잠재력에 선택적으로 반응합니다. 그 결과 아이는 부모님의 소망이 반영된 초기 자기를 가지고 성장해나가지만,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좌절을 겪어야만 하죠. 만약 좌절이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이라면 이 아이의 꿈은 멈춘 채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반대로 최적의 좌절을 겪는 아이는 멈추지 않고 꿈을 계속 키워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꿈을 키워나간 사람이 응집된 자기와 건강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꿈은 부모의 기대와 아이의 잠재력이 만나면서 시작되고, 공감과 최적의 좌절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