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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Feb 05. 2024

우리의 삶에는 자기애도 필요해요

프로이트의 자기애 VS 코헛의 자기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기애가 강하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곤 합니다. 보통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설명하고 싶을 때 에둘러서 사용하는 표현이죠. 반대로 자기애가 있는 사람, 자기애가 약한 사람과 같은 단어는 잘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기애는 우리들에게 그리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는 아닌데요, 정신분석에서는 자기애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정신분석의 시초인 프로이트는 자기애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며, 미성숙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자기애의 이미지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그는 리비도(libido)가 자가 성애 단계로부터 시작해서, 자기애 단계를 지나고, 대상 사랑의 단계로 발달한다고 보았습니다. 리비도는 성욕으로 자주 번역되곤 하지만, 사실은 사랑의 본능에 동반되는 다양한 에너지들을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도 리비도를 성욕보다는 사랑이라고 해석하시는게 좀 더 이해에 도움이 되실거에요.


프로이트가 제시한 리비도의 발달 단계


  자가 성애 단계(auto-eroticism)에서는 대상이 없는 사랑을 합니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영양을 공급받는 즐거움을 누리듯이, 아이는 어머니가 없을 때도 자신의 손가락을 빨며 즐거워할 수 있어요. 만약 성숙한 성인이라면 연인의 빈자리를 자신의 손가락을 빠는 행동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어른들의 사랑에서는 연인이라는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가 성애의 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사랑의 욕구만 충족되면 그만이기에, 어머니라는 대상 없이도 손가락을 빨기만 하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끼며 충분히 즐거워할 수 있어요.


자가 성애 단계의 아이 입장에서는 본인의 손가락을 빨면서 느끼는 사랑과 엄마의 젖을 먹으면서 느끼는 사랑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 즉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다음으로 자기애(narcissism) 단계에서는 사랑의 대상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대상은 자신으로 한정됩니다. 프로이트는 자기애를 일차 자기애(primary narcissism)이차 자기애(secondary narcissism)로 나누었어요. 일차 자기애란 자가 성애 단계의 아이가 대상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번 거쳐야만 하는 중간과정입니다. 우리 모두가 철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었던 유년기 시절이 있으셨을 거예요. 그랬던 때가 일차 자기애의 단계고, 이 시기는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다시 자기애의 단계로 돌아오기도 해요. 대인관계에서 많은 상처들을 받다 보면 흔히 말하는 인류애를 상실한 상태가 되고, 결국에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도 급급할 때가 있거든요. 이 시기를 두고 프로이트는 이차 자기애의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대상 사랑 단계로 넘어갔었던 우리가 다시 자기애의 단계로 퇴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차 자기애는 일차 자기애와는 달리 병적인 상태에요.


   마지막 단계는 대상 사랑(object-love)의 단계입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가장 성숙한 단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일차 자기애는 자가 성애의 단계에서 대상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차 자기애는 대상 사랑의 단계에서 한 단계 퇴행하면서 다시 발생한 병적인 증상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가 존재하는 시기를 과도기로 보나 퇴행으로 보나, 결국 프로이트는 자기애를 미성숙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요소로 본 셈이에요. 자기애의 단계에 있다는 것은, 보다 성숙한 대상 사랑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못하다는 뜻과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프로이트의 자기애를 향한 부정적 시선을 전면에서 비판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사람은 바로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의 아버지인 하인츠 코헛(Heinz Kohut)입니다. 그는 한 사람이 가진 재능과 기술과 같은 잠재력이 성장하고 발달하기 위해서 자기애가 필요하고, 또한 자기애는 평생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설명은 자기애를 버려야 대상 사랑의 단계로 발달할 수 있다고 말했던 프로이트의 설명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점이 많죠. 자기애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셈입니다.


  코헛은 생애 초기부터 자기애가 생겨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갓난아기는 어머니로부터 헌신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왜 애착인형에 집착할까' 편에서 설명드렸듯이 갓난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는 비정상적 수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아이에게 몰두된 상태거든요. 덕분에 아이는 '완벽한 나'와 '완벽한 대상(어머니)' 덕분에 전능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즐거움은 인생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행복이에요. 원래 극적인 쾌락을 한번 맛보면 그 쾌락을 잊기가 힘들죠. 아이도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느꼈던 완벽했던 즐거움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이 욕망이 바로 자기애입니다.

  

'아이들은 왜 애착인형에 집착할까'에서 사용했던 그림인데요, 위니캇과 코헛의 이론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유아기의 전능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 코헛의 자기애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코헛은 자기애적 욕구들을 어떻게 분류했을까요? 그는 세 가지의 자기애적 욕구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과대 자기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에요. 이 욕구는 유아기에 느꼈던 '완벽한 나'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타인에게 과시하며 인정받고 싶어하는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날으는 슈퍼맨처럼 뛰어내리는 마음과도 비슷해요.


  두 번째는 쌍둥이 자기애적 욕구인데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비슷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에요. 비슷한 직업을 갖고 있거나,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거나, 비슷한 출신이거나 하면 괜히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타인과의 공통성과 연대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 쌍둥이 자기애적 욕구 때문에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마지막은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인데요, 이마고라는 표현이 어렵긴 해도 사실 이미지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면 곁에 있지도 않은 엄마를 찾으며 서럽게 울곤 해요. 이때의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진정시켜 줄 수 있는, 현실의 부모보다도 이상화된 완벽한 부모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완벽한 모의 이미지는 상처 입은 아이들을 진정시켜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아이가 미래에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줄 수 있어요. 이와 같은 '완벽한 대상'의 이미지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입니다.


상처받은 아이들은 현실보다도 더 완벽한 부모님을 떠올리며 자신을 진정시킵니다. 이처럼 완벽한 대상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상화 부모 이마고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입니다.




  이처럼 하인츠 코헛이 제시한 자기애의 개념들은 기존의 정신분석 이론들과는 차별점이 많았기에, 그의 이론들은 자기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정신분석이론들이 그렇듯이 자기애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코헛의 자기심리학은 자기애의 긍정적인 측면을 제시함으로써 자기애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보다 공감적인 분위기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이전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정신분석적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코헛의 이론들은 정신분석학에서 많은 의의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애도 알고 보면
꼭 나쁜 마음은 아닐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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