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의 담아내기
치료자 T씨에게 내담자 P씨가 찾아왔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P는 다짜고짜 T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T가 약을 잘못 선택해서 아직도 증상이 좋아진 것이 하나도 없고, 사실 T는 돌팔이 의사가 아니냐며 강한 어조로 비난합니다.
T는 자신도 P에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T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P와 상의해 가며 약을 선택한 것이고, 이제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왔었거든요. T는 자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노력들이 모두 쓸모 없어진 것 같아 깊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T는 P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그대로 화를 내는 것은 P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T는 잠시 자신의 감정은 비워두고 P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T는 자신이 해온 치료가 쓸모 없어진 것 같아 좌절하고 분노한 것처럼, P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이제 T는 P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이나 분노를 느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P씨도 이와 비슷한 경우는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예상보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하신 마음이신 걸까요?"
이 말을 듣고 P 또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P는 T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T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합니다. 이제 P는 치료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T와의 관계도 회복되며 치료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1) 내담자 P는 치료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아서 좌절하고 분노합니다.
2) P는 자신의 감정을 소화하기 어려워했고 결국 자신의 좌절감과 분노를 치료자 T에게 투사합니다.
3) T는 투사된 감정을 소화해 내고, P에게 소화된 감정들을 되돌려줍니다.
4) P는 자신의 감정을 보다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5) 내담자와 치료자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어 앞으로의 치료를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악몽에서 깬 뒤에 공포에 질려 엄마를 찾아갑니다. 아이는 곤히 자고 있던 엄마를 깨우고 나서 하염없이 보채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는 함께 불안함을 느낍니다.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보채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잠시 짜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짜증을 낸다고 해서 아이의 울음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행동하고 싶지도 않아 합니다.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아이의 불안한 감정을 견뎌냅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넵니다.
"우리 아들이 참 불안했었구나. 무서운 일이라도 있었어?"
아이는 엄마의 걱정이 담긴 말을 느끼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아이는 자신이 나쁜 꿈을 꿨고, 그래서 불안해서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면서 자신의 감정과 소망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감정도 그릇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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