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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Mar 21. 2024

똥차가 떠난 뒤에도 똥차가 올 수 있는 이유

프로이트와 페어베언의 반복강박 개념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고통스러웠던 연인 관계를 끝낸 사람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때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운이 없어서 똥차 같은 사람을 만난 것뿐이고, 다음번에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똥차가 지나간 뒤에는 벤츠보다는 새로운 똥차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지만, 막상 살아가다 보면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느낄 때도 적지 않습니다.


  나를 착취하던 예전 남자친구를 다시 만나거나 혹은 나를 힘들게 하는 친구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분명히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중단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어떻게든 끊어냈던 관계를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만을 가지고 살아가면 될 일인데도, 이들은 굳이 힘든 관계로 다시 되돌아가며 고통을 반복합니다. 이성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설명드리는 반복강박의 개념을 이해하신다면, 이들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무의식을 통해서 쳇바퀴처럼 반복되는데, 이를 두고 정신분석에서는 반복강박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합니다.




프로이트의 반복강박 개념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인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은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사건을 현재에도 반복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를 의미합니다. 이전에 무의식은 쾌락 원칙을 따른다고 설명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현실 원칙을 따르는 의식과는 달리 쾌락 원칙을 따르는 무의식은 현실보다는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반복강박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정리하면 무의식은 쾌락을 추구하는데, 무의식의 일부인 반복강박은 오히려 반대로 고통을 추구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상당히 모순되기에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과거의 프로이트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반복 강박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왜 굳이 고통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요? 즐겁게 살아가기에도 바쁜 세상일 텐데 말입니다. 프로이트는 사람에게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삶의 본능은 말 그대로 삶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본능입니다. 삶의 본능에 따라서 사람은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개인을 가꾸어 나가게 됩니다. 반면에 죽음의 본능이란 생물체가 무생물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본능입니다. 마치 무(無)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사람은 죽음의 본능에 따라서 사람은 나와 타인을 구분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며 무생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에 따른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우정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격과 파괴를 통해서 쾌락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반복강박은 더 이상 불쾌하기만한 존재는 아니게 됩니다. 반복강박은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하면서 죽음의 본능에 따른 쾌락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통찰을 통해 프로이트는 반복강박이 사람에게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람의 마음에는 아름다운 측면만 있지 않고 어두운 측면까지도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본능은 비록 과학적 근거보다는 개인적 통찰에 기반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만큼 후대의 이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던 중요한 개념입니다.

  



페어베언의 반복강박 개념 - 대상 선택의 측면에서


  프로이트 외에도 반복강박을 다른 측면으로 설명하는 이론가도 있었습니다. 대상관계이론가인 페어베언(Fairbairn)은 어린 시절에 내면화된 초기의 대상관계가 이후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결국 현재에 관계하는 타인들과 고통스러운 관계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 반복강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전에 설명드렸듯 대상관계는 '나와 타인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생애 초기 아이는 태어나서 어머니와의 관계를 맺으며 자신(아이)과 대상(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갑니다. 이렇게 형성된 초기의 대상관계는 이후의 대인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엄마와의 관계에서 자신을 부정적으로 느끼고 대상을 긍정적으로 느꼈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나쁘게 느끼고 타인을 좋게 느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그렇게 느낄 만한 사람들을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크게 싸워서 헤어졌던 연인과 재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래도 '익숙한 관계'라는 점이 큽니다. 사람은 연인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에서도 익숙함에 끌리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고 하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관계라면 사람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며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나쁜 관계라고 하더라도 익숙한 관계라면 사람은 조금이나마 안전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좋은 대상인지보다 익숙한 대상인지가 중요한 것이 당연한 사람의 마음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익숙한 사랑이 그리워져서 나쁜 대상이었던 과거의 연인에게 되돌아가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반복강박에 대해서 대상관계이론도 위와 비슷하게 설명합니다. 아이-엄마의 관계에서 형성되었던 초기의 대상관계는 앞으로 만날 사람들을 선택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어머니에게서 자라난 아이는 학대에 익숙해질 수 있고,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뤄주는 건강한 사랑을 오히려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아이도 머리로는 학대보다는 건강한 사랑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만 설명되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머리로는 건강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마음은 익숙한 사랑에게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년기에 부모로부터 학대받았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을 배우자나 친구로 삼아서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대하는 부모 외에도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나중에 알코올 중독자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많고, 감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적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대상관계는 우리가 익숙한 대상관계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래서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초기의 아이-엄마 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초기의 대상관계를 건강하게 잘 형성해야 앞으로도 건강한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어베언의 반복강박 개념 - 대상 변화의 측면에서


  대상관계는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내면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강압적인 부모에게서 순종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들에게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소 선을 넘은 듯한 요구도 잘 거절하지 못하며 혼자서 속을 썩입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거절을 잘해보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거절이 나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선 넘은 요구들을 계속 받아주다 보면 점차 무리한 요구들이 잦아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응적인 사람에게는 무리한 요구조차도 받아주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듯, 이 사람의 주변 사람들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순응적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이 사람은 나의 요구를 들어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요구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부모의 요구에 따라서 순종적으로 살아갔던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요구적으로 변화시키는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처음에는 그렇게까지 요구적이지 않은 사람도 지나치게 순응적인 사람의 곁에 있다 보면 점차 과도하게 요구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셈입니다.


  '직장에서 친절하면 호구가 된다'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친절은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친절은 지금의 나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도 힘들게 합니다. 지금 찾아오는 과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요구를 들어줬으니 다음번에도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될까요? 그렇다면 참 다행이겠지만, 불행히도 사람은 반복강박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새롭게 찾아오는 과도한 요구들도 거절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서서히 지쳐가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이 지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친절함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쉽지 않고, 친절함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거절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반복강박이 가진 힘은 한 사람의 내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내면조차도 변화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반복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능과도 같은, 그래서 탈출하기 어려운 반복강박


  정리하면 프로이트는 자기파괴적인 죽음의 본능을 통해서 반복강박을 설명했고, 페어베언은 익숙한 관계에 이끌리는 본능을 통해서 반복강박을 설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도 종종 설명드렸지만 정신분석에서는 최고의 이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설명은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반복강박은 인간의 본능에서 오기 때문에 사람은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똥차가 간 뒤에는 좋은 차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똥차가 간 뒤에도 좋은 차보다는 나쁜 차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신분석을 받고 있는 내담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내담자들도 똥차가 간 뒤에 똥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있는 고통보다는 알고 있는 고통이 덜 괴로운 것도 사실입니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면 나를 괴롭게 하는 관계에서 덜 괴로워하며 조금은 여유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새롭게 생겨난 여유를 통해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신분석에서는 반복되는 고통의 굴레, 즉 나만의 반복강박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내담자를 도우려고 노력합니다.


  꼭 정신분석을 받지 않더라도 대인관계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이기에 노력해도 잘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해결될 때까지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사실은 부딪치기도 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꺾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복강박은 달리 말하면 해결될 때까지 반복해서 도전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회에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번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운 교훈을 다음 기회에 써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통을 반복해서 겪다 보면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요.




똥차가 떠났다고 해서,
반드시 벤츠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똥차가 떠났다고 해서,
반드시 똥차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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