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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이서 가는 해외여행이 피곤한 이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by 따스한 골방 Mar 09. 2025

'세 명이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피해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런 주장의 근거들은 듣다 보면 많이들 비슷합니다. 한 명이 소외되는 것 같아서, 어느 한 명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면 나머지 한 명이 외로워져서 등의 이유들을 말하곤 하지요. 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결국 주된 문제요소는 세명의 사람이 모이면 피하기 어려운 소외감 혹은 외로움인 것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사랑 혹은 우정의 삼각관계에서 발생하는 외로움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정신과 진료실에서도 종종 나오는 대화소재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함께할 때 서로 죽이 잘 맞아 보이고 문제없던 세명의 친구들도 막상 해외여행을 가면 한 명이 서운함을 느끼게 되어 결국 싸움까지 일어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여기서는 질투가 큰 역할을 합니다. 질투는 미성숙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질투는 어렸을 적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질투가 은연중에 우리의 삶을 갉아먹고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삼각관계에서 생겨나는 질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라는 용어를 가볍게나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정신의학 외의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되기에 다른 심리학적 용어보다도 잘 알려져 있지요.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제시한 용어로 그리스로마 신화의 등장인물인 오이디푸스의 이름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많이들 알고 계실 수도 있겠지만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회피하지 못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되는 인물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질투하고 원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현대에 와서는 프로이트의 이론들이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은 우리에게 질투라는 부정적 감정의 근원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줍니다. '나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는 남자아이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어른들이 이 풍경을 보면 마냥 귀엽기만 느껴질 때가 많지요. 저기 집의 아들은 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웃어넘기게 됩니다.


하지만 이를 보다 깊게 살펴보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외에도 아버지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이 아이들의 마음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남자아이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아빠와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 아이들도 비슷한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자 아이들은 아빠를 사랑하기에 엄마를 밀어내고 아버지를 독차지하고 싶어 질투하고 있는 귀여운 마음이 숨어있을 수 있겠지요.


이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시작됩니다. (출처 : Unsplash의Humberto Chávez)


하지만 어린아이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신과적 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엄마 혹은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모두 정신과로 가야 했겠지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발달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입니다. 물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동성의 부모(아들이라면 아버지, 딸이라면 어머니가 되겠지요)가 미워 보이고 상당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성장통과 같은 이 과정들을 극복한 이후로는 삼자관계(triangular relationship; 3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인간관계)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만약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탈출하지 못한 채로 매여있게 된다면 이자관계(dyadic relationship; 2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인간관계)는 비교적 원만할지라도 삼자관계에서는 질투, 소외감과 같은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삼자관계에서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신분석적 치료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는 과정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독점하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이고, 내가 덜 사랑하는 사람조차도 나의 삶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엄마와 결혼하고 싶어 아빠를 질투하는 남자아이의 입장에서 설명드리자면, 이 아이는 '엄마를 내가 독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아빠도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는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엄마는 소중하지만 아빠는 미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의 시선에서는 부모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뽀뽀하는 순간이 마치 아빠가 엄마를 뺏어가는 상황으로 보이게 되지요. 때문에 외롭고 불안하게만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만 합니다.


반면에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사람들끼리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아이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오는 질투심들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있고, 아빠와 엄마가 가볍게 뽀뽀하더라도 우리 가족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웃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엄마와 아빠가 뽀뽀하는 똑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마음의 발달상태에 따라 한 아이는 질투로 인해 불행해하고 다른 아이는 화목한 가정을 즐기며 행복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이가 아닌 어른의 입장에서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른들의 삼각관계를 잘 유지하는 방법도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엄마를 독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기에 둘 다 필요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처럼, 어른도 '이 사람을 독차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기에 둘 다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보다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사례의 A 씨처럼 삼자관계에서 오는 행복들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A씨는 소모임에서 만난 B씨, C씨와 잘 어울리며 세 명이서 따로 만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A는 C보다는 B가 자신과 결이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막상 B는 왜인지 자신(A)보다는 C와 더 친하게 지내는 듯한 눈치입니다.

A는 C를 밀어내고 B와 가장 친한 사이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기에 C에게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독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B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C와의 관계도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좋은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지요. 덕분에 A씨의 C를 향한 질투는 가벼운 수준에서 그칠 수 있었고 이 세 사람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소모임이 해체된 뒤에도 친한 친구사이로 남아 다 함께 맛집탐방도 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답니다.




이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잘 극복해 낸 사람들은 삼자관계에서 질투를 느끼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고통이 크지 않고, 설령 크게 질투를 느낄 일이 생기더라도 이를 감내해 가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경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도 생활하는 방식도 다른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달리 표현하면 상당히 낯선 곳에 떨어지는 불편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해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불안감을 던져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평범한 일상에서는 좋은 모습만 보이던 사람조차도 외국에서 고생하다 보면 평소와는 달리 부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심리적으로 충분히 독립하지 못한 아이들은 다 큰 어른들보다 환경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집에서 양육하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던 아이들도 어린이집으로 처음 등원하는 경우에 분리불안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첫 등원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린이집이라는 곳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상당히 낯선 공간이기에 때로는 극도의 불안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의 불안함은 공감하며 힘든 감정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처음으로 가는 어린이집에서 불안감을 느끼며 부모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분리불안과 같이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정신과에서 소아청소년이 분리불안이라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관련 증상이 최소 4주 이상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갔을 때 불안함을 느끼고 부모를 찾는 것이 1주일이 되었다고 해서 분리불안으로 진단하진 않습니다. 아이가 힘들 때 부모가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사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른들도 극도의 환경변화를 겪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에게도 처음으로 찾아간 외국에서 살아본다는 것은 낯설고 불안한 경험입니다. 고생하다 보면 때로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요. 한국에서는 편하게 찍던 교통카드도 해외에서 찍으려고 하면 제대로 작동할지 괜히 불안해지고, 국내에서는 편안하게 해 오던 운전도 외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교통체계로 인해 사고를 낼까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이런 불안한 마음들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함께하는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어린이집으로 처음 등원하는 아이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부모를 찾듯이, 해외로 처음 나가는 어른들은 함께 여행 가는 동반자들에게 평소보다 더욱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는 혼자서도 잘 생활하던 어른들도 해외에서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D씨의 사례를 함께 볼까요.


D씨, E씨, F씨는 직장에서 동기로 만나 함께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평소 이들은 직장에서 힘든 업무가 있으면 서로 일을 도와주고, 난감한 일이 있으면 서로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하며 별 다툼 없이 사이좋게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서로 성격이 잘 맞다고 생각한 이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유럽에서 이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설레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는 언어도 외모도 다른 외국인들로 가득한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D는 문득 불안함을 느낍니다. 특히나 최근에 외국에서 소매치기 범죄가 많다는 말을 들었기에 혹시나 주변에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자주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바짝 긴장하기도 합니다.

예정되었던 하루 일정의 절반 정도 지났을 때 D씨는 결국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끼면서 E, F에게 평소보다도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D의 눈에 자신은 내버려 두고 E와 F가 둘이서만 이야기를 하며 살짝 미소 짓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이 모습을 보게 된 D는 두 명이서 자신만 내버려 두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D는 남은 여행에서 혼자 남겨졌다고 느껴질 때면 이 둘과의 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D는 'E와 F 사이의 우정'이 '자신과 E' 혹은 '자신과 F' 사이의 우정보다 훨씬 끈끈했다는 생각에 E와  F 사이의 우정을 질투하며 크게 소외감을 느낍니다.


남자아이가 엄마와 아빠 사이가 너무나도 돈독해 보여서 '엄마-아빠'의 관계 사이에 자신이 낄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자신의 가족에서는 내 자리가 없다고 느끼고 소외감이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지요.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D도 마찬가지입니다. E와 F 사이가 너무나도 친밀해 보여 'D-E-F'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껴지는 D는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질투심과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평소의 일상생활에서 국한하여 살펴보자면 이 세명의 관계는 특별한 문제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의 D씨는 직장 동기들과 크게 질투심이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삼자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정신분석적으로 표현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극복했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D는 해외여행에서 오는 상당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며 한 부모를 독점하고 싶어 하고 나머지 부모를 질투하는 아이와도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전의 상태로 회귀한 것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보다 나아간 발달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이전의 발달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정신분석에서는 퇴행(regression)이라고 합니다. 앞서 보여드렸던 D의 사례를 정리하자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극복했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어가는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이전의 발달상태로 퇴행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D는 자신의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다면 E와 F 사이를 갈라놓고서 한 명을 독차지하고 나머지 한 명을 소외시키며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D는 E와 F 사이를 망쳐놓고 동시에 E 독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D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다며  자연스럽게 F와의 관계는 최악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결국 D는 F와의 관계는 포기해야만 하겠지요. 이처럼 한 명은 독차지하는 대신에 나머지 한 명은 손절하는 행동 패턴들이 또 다른 삼각관계에서 반복된다면 D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D친구 하나를 지켜내는 대신 나머지 친구 하나는 반드시 잃게 될 것입니다. 결국 D는 말년에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되겠지요. 


심지어 D가 삼자관계에서 늘 승리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E와 F사이의 이간질에 실패한다면 D는 F뿐만 아니라 E에게도 손절당하게 됩니다. 친구 하나를 지켜내지도 못하고 두 친구를 한꺼번에 잃게 되겠지요. 결과적으로 D가 질투심을 견뎌내지 못하고 이간질과 같이 소위 말하는 여우 같은 행동들만 해온다면 이간질에서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결국에는 정말로 외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해집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D씨를 설명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매여서 질투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삼자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하여 고통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와 F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에 성공해봐야 E만 남고, 실패하면 두 사람(E', F')을 전부 놓칩니다. 때문에 질투심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외로운 삶을 살게됩니다.


물론 E와 F 사이가 지나치게 각별하여 내가 들어갈 틈이 없었고, 실제로도 D가 은연중에 소외당하고 있었다면 D가 아니라  세명의 관계에서 문제를 우선적으로 찾아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의문을 가지고 시작해 봅시다. 만약 E와 F가 D를 소외시키고 있었다면 해외여행을 굳이 이 세 명이서 함께 가야만 했을까요? 혹시 어떠한 일이 생겨서 E와 F가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순간이었는데, 하필이면 이 순간이 해외여행에서 피곤함을 느꼈던 D가 두 명의 친구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던 마음이 컸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이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반대로 의존하지 못했을 때 받는 상처도 커지는 것이 당연한 마음입니다. 어쩌면 위의 사례에서 D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실제 관계의 문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나마 취약해졌던 D의 마음에서 출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만약에 D가 보다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질투심을 스스로 감당해 내며 삼자관계를 즐겁게 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와 F 사이를 굳이 갈라놓으려 하지 않으며 E, F와의 관계들을 둘 다 놓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D와 E가 이야기하는 순간에 F가 소외될 수 있고 반대로 D와 F가 이야기하는 순간에 E가 소외될 수도 있겠지요. 때문에 세 명이서 길게 여행을 가다 보면 한 명이 소외되는 순간은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순간들에서 오는 질투심이나 소외감을 각자 잘 견뎌낼 수 있어야 관계에서 오는 불편감이 소중한 여행을 망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질투심이 드는 것도 사람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질투심이 나의 대인관계에 지나친 악영향을 끼친다면 내가 행복해지는데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질투심을 스스로 견뎌내고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이 행복한 여행에 필요하고, 더욱 나아가 즐거운 인생을 위해 필요합니다. 물론 질투심을 견뎌내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어른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순간을 함께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데, 그러한 순간들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면 당연히 질투나고 미워할 수밖에요.


앞서 설명드렸듯이 정신분석에서도 '이자관계'보다는 '삼자관계'가 어렵다고 합니다. 거창하게 표현을 했지만 쉽게 표현하면 단 두 명이서 함께하는 것보다는 세 명이서 놀 때 괴로움이 더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삼자관계는 이자관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질투심이 존재하고, 한 명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때문에 내가 느끼는 질투심을 견뎌내야 하고 남들이 질투심에서 오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록 배려할 수 있어야 삼자관계가 건강하게 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이유들로 인해 삼각관계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관계가 이자관계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서 놀 때가 많습니다. 3명이나 5명처럼 홀수로 되어있는 모임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자관계만 고집한다면 집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같은 즐거움은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2명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은 극히 드물지요. 삼삼오오 모여 놀다가 유독 외롭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으셨다면 모임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받을 수 있었던 관심을 남들이 가져갔다고 느껴져서 서운하셨던 건 아니었을까요? 모든 순간에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고 지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이에게 늘 관심을 기울이는 어머니조차도 집안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늘 집중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상대라고 해서 늘 나를 바라봐주기만 하기는 마음은 당연히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지만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지나친 욕심은 아니었을까요.


질투심을 느끼게 하는 상대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질투심을 느낄만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질투는 부정적인 감정이고 사랑은 긍정적인 감정인지라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일 때도 많지만 사실은 질투는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굴러들어 오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내지 않도록, 우리의 삶에서 질투가 사랑을 빼내지 않도록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찰나의 질투가 소중한 사랑을 해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챙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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