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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한번 받아볼까?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비용들

by 따스한 골방 Mar 13. 2025

이제까지 정신분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들을 조금이나마 선별하여 소개드렸습니다. 관심을 가지고서 읽어도 쉽지 않은 이론들이었지만 하나씩 삶에 적용해서 살아가다 보면 훈습의 과정을 통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 순간을 정신분석하듯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삶이 흔들린다고 느껴질 때 나의 상황에 어울리는 정신분석 이론에 잠시 기대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비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정신분석가이자 내담자가 되어 일생동안 자기분석(self-analysis)을 진행하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분석은 평생 동안 함께해 왔던 나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바라봐야만 한다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연륜이 있는 어른보다 지식이 많은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아이들의 신선한 시각이 어른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한 늘 익숙하다 못해 지루했던 일상이 시선을 바꿔보면 새롭고 생동감 넘치는 일들로 가득해지고, 해결책이 도무지 보이지 않던 일조차도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면 쉽게 해결되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무언가에 접근할 때 시선을 바꿔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정신분석은 내담자의 삶에 새로운 시선을 제공할 수 있지요. 대부분의 시간에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중립성을 최대한 지킨채로 내담자의 삶을 관조하고자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때로는 치료자의 주관적인 시선을 가지고서 내담자의 삶을 함께 바라볼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분석을 진행한 내담자들은 스스로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는 자아(observing ego)를 키울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은 치료를 종결한 뒤에도 자신의 시선에만 편협하게 매몰되지 않고 필요할 때면 제삼자가 바라보듯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무의식의 깊숙한 곳까지 관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들은 홀로 분석한다고 반드시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문적인 태도와 지식을 가진 치료자와 함께한다면 보다 수월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변의 위험요소를 탐지하는 카메라처럼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자아는 나의 마음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Unsplash)주변의 위험요소를 탐지하는 카메라처럼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자아는 나의 마음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히 살피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Unsplash)




여기까지 들어보면 정신분석은 참 매력 있는 치료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가와 함께하는 정신분석을 꾸준히 받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됩니다. 상황에 따라 경제적 비용은 달라질 수 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다른 비용들도 내담자의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요구된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은 시간적, 심리적 비용들도 함께 요구합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정신분석은 주 4회 이상, 1회당 45분~60분 정도의 시간으로 진행됩니다. 주 4회, 1회당 50분 정도 분석을 진행한다고 하면 한 달에 3시간 이상은 정신분석가와 함께한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여기에 분석가를 위해 집과 상담장소를 오가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시간적 비용이 적지 않게 들겠지요.


그리고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심리적 비용입니다. 제가 비록 많은 분석 경험을 쌓은 것은 아니지만 정신분석적 접근을 통해 상담을 진행할 때는 내담자에게 아래와 같은 내용들로 반드시 설명하고자 노력합니다.


정신분석적 치료과정은 공감과 지지만으로 가득 찬 따뜻한 길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일생동안 깊숙이 묻어놨었던 무의식을 탐색하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쉽지 않을 수 있고, 힘들게 찾은 무의식을 표현하는 과정도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담자와 치료자가 치료적 동맹이라고 하는 하나의 팀이 되어 이러한 힘든 과정들을 함께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담자가 치료자를 불편하게 느끼는 순간들도 분명 올 수 있습니다. 치료자가 때로는 침묵하고 때로는 공감해주지 않는 차가운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내담자-치료자 간의 불협화음은 장기간 치료를 유지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갈등을 이해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신분석의 과정은 기대와는 달리 쉽지 않은 과정으로 느껴질 수 있고, 특히나 치료의 종결시점이 치료 초기부터 명확하게 정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내담자 입장에서 치료 경과가 더욱 불확실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들을 감내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면 내담자는 치료를 종결한 후에도 모호하게 느껴지는 심리적 어려움들을 혼자서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분석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을 성장통에 많이 비유하곤 합니다. 정신분석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이러한 득과 실을 비교하며 충분히 잘 고민해 보신 뒤에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어느 하나 문장을 빼놓기가 어려워 내용이 상당히 길어졌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정신분석을 시작할 때 내담자가 필수적으로 참고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요약한다면 '정신분석의 과정은 쉽지 않은 길이 될 수 있고 성장통과 같은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들이 있다 보니 정신과 진료실에서 현실적인 요소로 인해 모든 환자들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하기는 어렵고, 모든 환자들에게 정신분석적 접근이 가장 추천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정신분석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고통이 동반될 수도 있기에 극도로 심각한 우울이나 불안을 겪고 있거나 자살 및 자해 등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은 정신분석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성장통이 아닌 그냥 극심한 고통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미 불난 곳에 기름을 더 들이붓는 것처럼 고통에 고통을 더 얹어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정신분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정신분석가와 초기면담을 진행하여 본인이 정신분석으로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충분히 살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만약 내담자와 치료자가 만나 초기면담을 진행하였으나 주 4회 이상의 내원이 어려운 경우, 혹은 심리적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하여 정신분석보다는 다른 치료법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등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정신분석(psychoanalysis)이 아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psychoanalytic psychotherapy)를 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정신분석에 비해 비교적 내담자가 부담해야 되는 비용이 적습니다. 우선 분석가를 만나는 횟수가 주 1~2회 정도로 줄어들기에 내담자가 여러모로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비용들을 덜 부담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내담자 입장에서는 치료를 시작하기 위한 문턱이 낮은 것이 중요할 수 있기에 최근에는 정신분석보다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가 자주 선호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장점만이 있을 수는 없겠지요.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또한 분명 충분히 좋은 치료방법이지만 정신분석에 비해서는 줄어드는 부담만큼 치료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을 통해 성장통을 100만큼 감내하며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환자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통해 50만큼의 성장통을 겪는다면 치료효과에 있어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성장통을 50만큼만 감내할 수 있는 환자가 굳이 정신치료를 받으며 성장통을 100만큼 감내해야만 한다면 이것은 앞서 씀드렸던 성장통이 아닌 한계를 초과한 지나친 고통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니 반복적으로 설명드리는 것이지만 치료의 방향은 내담자와 치료자가 함께 충분한 고민을 한 뒤에 결정하는 것이 상당히 권장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적 정신치료조차도 어려운 심리적 상태인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도 정신분석과 비교하여 덜 고통스러운 것이지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니까요. 이러한 분들은 지지적 정신치료(supportive psychotherapy)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지적 정신치료는 이름처럼 우울, 불안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적지 않게 생긴 사람들이 증상들이 생기기 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의 병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도록 돕는 치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앞서 설명드렸던 치료들과는 치료 목표가 뚜렷하게 다릅니다. 정신분석과 정신분석적 치료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목표지만 지지적 정신치료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폐렴이 생기면 폐렴이 생기기 전의 신체상태로 회복하고 싶어 병원을 방문하듯,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병이 생기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치료자 입장에서도 정신분석이나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보다는 지지적 정신치료가 심리적으로 부담이 적습니다. 정신분석가도 사람인지라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함께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정신분석을 하는 정신과 병원은 그리 많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담자 입장에서는 어느 곳을 찾아야 할지 참 막막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나서 정신분석 혹은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를 희망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국정신분석학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병원 찾기 기능을 이용하시는 것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은 훌륭한 치료법이지만 늘 최고의 치료법은 아닙니다. 고민이 되시는 분들은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가 무엇일지 전문가와 상의하시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것에
왕도는 없기에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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