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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Mar 08. 2024

감정도 담아낼 그릇이 필요해요

비온의 담아내기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슬픔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슬픔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맞겠지만, 슬픔을 넘겨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절반의 슬픔이 새롭게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에 자주 노출된 아이들, 고객들의 고충을 들어야만 하는 상담직원 등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힘든 마음을 표현할 새도 없이 타인의 힘든 마음만 듣다 보면 결국 한계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담아내는 것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남의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면 좋을까요?




담아내기란


  정신분석가 비온(Bion)은 담아내기(containing)의 개념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담아내는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감정에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무기력감에 빠진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함께 무기력해집니다. 이는 불안, 분노 등의 감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이유는 감정의 투사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설명드렸듯, 투사는 한 사람의 부정적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지는 과정입니다. 이번 글의 앞부분에서 슬픔을 나누면 절반의 슬픔이 타인에게 넘겨진다고 설명드렸는데요, 이것도 투사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절반의 슬픔만큼 타인에게 투사된 것이죠. 많은 경우에 투사는 소화되지 않은, 즉 날것의 감정으로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는 감정을 소화하기가 힘들어서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감정을 소화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일까요?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치료자 T씨에게 내담자 P씨가 찾아왔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P는 다짜고짜 T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T가 약을 잘못 선택해서 아직도 증상이 좋아진 것이 하나도 없고, 사실 T는 돌팔이 의사가 아니냐며 강한 어조로 비난합니다.

  T는 자신도 P에게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T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P와 상의해 가며 약을 선택한 것이고, 이제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왔었거든요. T는 자신이 이제까지 해왔던 노력들이 모두 쓸모 없어진 것 같아 깊은 좌절감을 느낍니다.

  T는 P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그대로 화를 내는 것은 P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T는 잠시 자신의 감정은 비워두고 P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T는 자신이 해온 치료가 쓸모 없어진 것 같아 좌절하고 분노한 것처럼, P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이제 T는 P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이나 분노를 느끼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P씨도 이와 비슷한 경우는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예상보다 치료가 잘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하신 마음이신 걸까요?"

  이 말을 듣고 P 또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P는 T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T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합니다. 이제 P는 치료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T와의 관계도 회복되며 치료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치료자도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치료자를 비난하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치료자도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T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비난을 참지 못하고 P에게 비난을 되돌려주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이들의 치료적 관계는 무너질 것이고 결국 내담자 P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겠죠. 그래서 T는 자신의 좌절감과 분노를 잠시 내려놓습니다. 빈 그릇이 새로운 것들을 잘 담아낼 수 있듯이 마음도 비어있어야 P의 감정들을 잘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T는 자신의 감정이 아닌 P의 좌절감과 분노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T는 내담자의 힘든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서 자신이 이해한 점들을 P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 P는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좌절감과 분노를 치료자의 도움을 통해서 소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치료자와 내담자의 관계도 회복되어서 함께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논의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P의 치료는 잠시 난항을 겪긴 했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담아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위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내담자 P는 치료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아서 좌절하고 분노합니다.
2) P는 자신의 감정을 소화하기 어려워했고 결국 자신의 좌절감과 분노를 치료자 T에게 투사합니다.
3) T는 투사된 감정을 소화해 내고, P에게 소화된 감정들을 되돌려줍니다.
4) P는 자신의 감정을 보다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5) 내담자와 치료자의 관계는 다시 회복되어 앞으로의 치료를 다시 논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담아내기는 '투사된 감정을 일차적으로 소화하고, 소화된 감정을 되돌려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식동물은 되새김질을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뜬금없이 초식동물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되새김질과 담아내기가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식동물은 되새김질을 통해서 음식물을 보다 소화되기 쉬운 형태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도 담아내기를 통해서 혼자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감정들을 보다 소화되기 쉬운 감정으로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담아내기(containing)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영어로는 container라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담아내는 사람 정도로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사실 container는 그릇, 용기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여유공간이 있는 그릇이 필요한 셈입니다.


불안정한 감정들도 한번 타인의 마음에 담기면 잔잔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에도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담아내기


  담아내기는 진료실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장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에서도 담아내기의 추억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감정을 인식하거나 조절하기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불쑥 찾아오는 감정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이때의 아이들은 마음의 그릇이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대신 마음의 그릇이 되어서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서운 악몽을 꾸고 나서 불안에 떨고 있는 아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악몽에서 깬 뒤에 공포에 질려 엄마를 찾아갑니다. 아이는 곤히 자고 있던 엄마를 깨우고 나서 하염없이 보채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엄마는 함께 불안함을 느낍니다.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고 보채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잠시 짜증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짜증을 낸다고 해서 아이의 울음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렇게 행동하고 싶지도 않아 합니다.

  엄마는 잠시 숨을 고르면서 아이의 불안한 감정을 견뎌냅니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넵니다.

"우리 아들이 참 불안했었구나. 무서운 일이라도 있었어?"

  아이는 엄마의 걱정이 담긴 말을 느끼면서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아이는 자신이 나쁜 꿈을 꿨고, 그래서 불안해서 엄마와 함께 있고 싶다면서 자신의 감정과 소망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스스로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부모의 도움을 통해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마음의 그릇을 조금씩 키워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진 아이들은 이제 부모님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릇이 커진 만큼 많은 감정들을 스스로 담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처럼 담아내기는 현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스스로도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담아내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


  꼭 치료자-내담자, 부모-아이 관계가 아닐지라도 담아내기는 우리의 일상에서 존재합니다. 아무리 마음의 그릇이 크다고 하더라도 살다 보면 감정이 흘러넘치는 일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마음의 상처를 자주 입다 보면 멀쩡하던 마음의 그릇에 금이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신만의 그릇을 가지고 감정들을 잘 담아내던 사람들도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담아내기가 필요한 순간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담아내기 과정이 성공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유 공간이 없는 그릇에 물을 담으면 넘치고, 손상된 그릇에 물을 담으면 금이 간 곳으로 새기도 합니다. 그래서 치료자-내담자 혹은 부모-아이 관계가 아닌 이상에야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담아내기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대방에게 무작정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아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감정을 공유할 때는 서로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건네는 사람은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힘들어 보이면 나의 감정을 어느 정도 갈무리해서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준에서만 전달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찾아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감정을 건네받는 사람은 마음의 그릇에 얼마나 여유 공간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된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담아내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고, 혹시 여유가 되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 상태를 이야기해 볼 수도 있습니다.


담아낼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들이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분명 용기를 내어 표현해야 할 순간도 존재합니다. 정신분석 치료 중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정신분석가도 마음의 그릇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내담자의 감정들을 수용하고 되돌려주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하지만 치료자가 무작정 모든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치료자도 내담자의 폭발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내담자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치료자의 자기 개방(self-disclosure)라고도 하는데요, 이 방법은 남용되면 내담자의 치료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기에 그리 자주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치료자가 자신의 한계를 무시하고 계속 내담자의 감정을 받아내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자도 지쳐가고 피상적인 공감만을 보일 수 있고, 이런 반응은 내담자의 치료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치료자도 자기 개방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내담자에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도 때로는 자기 개방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고, 그럴 때면 저의 마음을 치료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의 마음에 대해서 내담자와 논의하다 보면 오히려 치료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치료자인 저의 마음이 보다 가벼워질 수 있었고, 내담자도 치료자의 솔직한 마음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료실 밖의 일상에서도 투사되는 감정들을 견뎌내기가 어려운 순간은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의 사람들은 각자의 그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릇에 넘치는 감정들을 계속 받아들이려고 하다 보면 결국 그릇이 깨지기도 합니다. 소중한 마음의 그릇이 깨지게 두는 것보다는, 한번 용기를 내어서 자기 개방을 하는 것이 나을 때도 많습니다. 한번 그릇이 깨지면 한동안 타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조차도 담아내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나의 그릇이 온전해야 타인의 마음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개념들 중 하나인 담아내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이전에 소개드렸던 제반응의 개념과 함께, 담아내기의 개념은 왜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웠던 슬픔도, 친구의 '네가 많이 슬펐나 보구나'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풀리는 것도 이해가 될 수 있겠죠. 제반응처럼 나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지만, 담아내기처럼 나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수용받는 경험도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여러분의 삶에 감정의 그릇들이 많이 존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감정이 남에게 담기고, 남의 감정이 나에게 담기는 것은 말로써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귀중한 경험이니까요.




감정도 그릇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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