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위대한 꼬린내가 있나!
2010년, 만우절. 거짓말 같은 자전거 세계일주의 시작 날이었다. 첫 도착지인 칭다오는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몇 번 와본 곳이었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추억은 같이 여행 왔던 친구가 김밥 사느라 귀국행 배를 놓쳐서 덕분에 1년에 딱 한번 있는 소중하고도 큰 행사를 날려먹은 일이다. 그 당시엔 굉장히 심각했지만 지금은 웃어버릴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지금부터는 마주하는 모든 지금들이 곧 과거로 남을 테지.
예전 심각했던 경험들이 이젠 그냥 웃어넘길 일이 되어버린 것처럼 앞으로의 경험도 그렇게 남아줄까? 부디 버틸만한 것으로 남아주길 바랬다. 그렇게 정말 가진 것 없이 출발했기에 현실적이고도 단순한 출발 다짐을 했다. '가진 자원 내에서 즐길 것을 생각하고, 최대한 즐거움을 누리자. 그리고 많이 많이 웃자!'
해관 검색대를 통과해 흩어진 짐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많은 짐을 하나하나 어설프게 싸는 게 안돼 보였는지 같은 배에서 내린 한 아저씨가 와서 안타깝다는 듯 도와주셨다. 시작부터 참 어설펐다. 어휴.
지금으로 치자면 다이소급(보다 더 조악한) 물품으로 세계일주 물품을 준비했다. 완성한 짐을 보고 있노라니 출발 전에 사라지고 안 보이던 자신감이 다시 살아왔다.
몇번 페달을 밟자 바람이 내 뺨을 부드럽고도 기분좋게 만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 시간도 불과 1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 바람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꼬릿 하면서도 지린내가 섞인 냄새가 실려있었다. 마치 조리구 앞에서 갖은 향신료와 거센 열기로 땀 한가득 배인 주방장의 유니폼 냄새 같았달까? 그것도 한 달 동안 빨지 않은 땟국물 가득한 그 냄새.
그 진한 꼬린내와 지린내가 유쾌할리가 없다. 냄새가 얼마나 강했던지 순간 미간이 찌그러졌을 정도였다. 참기엔 냄새가 강하고 토악질 하기엔 아주 쬐끔 모자란 그 냄새. 그러나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냄새를 맡으면서 나도 모르게 미친놈처럼 웃음이 나왔고 그 냄새를 즐기기 시작했다.
이내 한바탕 웃고 말았다. 한국적이지 않은 그 냄새로 부터 내가 묶여 있다고 생각한 내적, 외적 감옥을 탈출한 듯한 느낌을 받아서다. 그 냄새는 바로 지금 내가 자유임을 느끼게 해줬다. 아, 이런 위대한 꼬린내가 있나! 그 자유의 보상이 이 꼬린내지만 오늘의 이 기분은 절대 까먹지 않을 수 있겠다. 그렇게 이 봄바람에 실려오는 그 지린내는 내 평생 잊지 못할 냄새가 되었다.
여행이라는 말을 누군가는 고급 호텔에서 멋진 뷰를 즐기며 쾌적한 경험을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몸과 기억에 우악스러운 고생을 새기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여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중 가장 대중적인 단어 트래블(Travel)의 어원은 여행 중 겪는 말썽(Trouble)에서 왔다고 한다. 저 트래블이 가진 본질을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어떻게 겪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자유의 꼬린내와 기분 좋게 출발을 했지만 내가 경험한 첫 7달의 중국 여행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고생이었다. 중국 라이딩 시작 후 며칠간 예상치 못한 아킬레스 건염에 고생을 했다. 또 일교차가 컸던 날씨 속 페달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릎 통증이 심해 달리다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4월의 중국 날씨가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권을 공유하기에 비슷할 거라 예상은 완전 착각이었다. 황사까지 몰아친 날씨속 기온은 우리나라 보다 추웠다. 귀에 동창이 생길 정도였다. 몸이 나아지고 있다는 회복을 느낄 때 즈음 자동차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중국 강남 지방을 우기 시즌에 강행했다. 만 3개월 만에 도착한 홍콩으로 오는 길엔 자잘한 사고는 물론이거니와 열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지만 감격스러운 도착이었다. 홍콩을 넘어 마카오, 광시장족자치구, 구이저우 성 같은 남방 지역을 지날 땐 시작과는 다른 환경의 변화를 만났다. 여행 전 내가 살아온 곳과 전혀 환경은 다양한 모습으로 날 자극했다.
중국 윈난 성으로 들어갔을 때는 여행 6개월 차였다. 고생이 익숙해지려고 하면 또 다른 종류의 고생이 나타났다. 1000미터대부터 2000미터급의 지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고 윈난 성 남부 쪽, 비포장 진창길을 며칠이나 달렸다.
수십 킬로의 짐과 진창길을 온몸으로 고생해가며 지났는데 일부 도로는 6시간 동안 겨우 20km 정도를 달린 곳도 있었다. 여행의 본질대로 트래블 속 트러블이 하나 둘 새겨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 과정들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거다. 처음 겪어보는 고생이었지만 최악을 상상해서였을까? 생각보다 견딜만하다고 느꼈던 덕분인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회복하면서 이동하는 것은 재미 이상의 의미가 되고 있었다.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 하나의 지식이 되는데 그 지식들은 여행의 의미와 나 자신을 살피는데 쓸만한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국 여행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함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마다 인생에서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는 트러블이 있다. 그 문제 해결에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면 기다려야 하고 내가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버텨야 한다. 한국이었어도 똑같이 겪었으리라 생각했기에 나는 진정한 여행, 곧 트래블 속 트러블을 겪고 있는 중이라 믿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남들이 보통 겪지 않을 고생이 내 이야기가 되면 스스로가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고 느낀다. 고생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힘든 시간 중엔 때로 내 멋대로의 정신승리가 없었다면 여행의 지속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간 자체가 고달파 피하고 싶겠지만 고생의 회피가 마음대로 가능한 건지 계산도 안 되고 알지도 못한다. 그냥 인간의 삶 과정 중 겪는 코스 중 하나라 믿을 뿐이었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긴커녕 그냥 하는 거다.
첫 나라, 중국을 7개월간 여행하며 깨달은 것은 내가 앞으로 겪을 힘듦의 정도가 어느 정도 인지 대략 감을 잡았다는 것과 그 고생이 생각보다 견딜만하다는 사실이었다. 사람 사는 곳 다 거기서 거기라는데 환경이 갑자기 아프리카급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내 여행의 하방경직성은 어느 정도 확보된 듯싶었다. 그 뒤 여행도 이어갈만하다고 느꼈다.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무엇보다 그 견딤 속에 얻는 깨달음은 생각지도 못한 재미를 줬고 놀라울 정도로 즐거웠다.
여행 출발 전만 해도 내가 보던 난 말라죽어 가고 있는 나무처럼 느끼며 살았다. 내가 보는 상황만큼이나 마음도 죽어가고 있었고 그렇게 살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든 상황을 피하려는 모습이 컸으니까. 겨우 첫 나라로 시작한 중국 여행이었지만 처음과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달라졌다. 이 여행이 끝이 나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할 것 같았다. 여행하다 그냥 죽어도 좋다고 각오한 여행이고 가급적 끝에 죽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이 여행이 나를 살만한 큰 이유를 줄지도 모르겠다.
중국에서 약 85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 고생 가운데 치솟는 자신감은 동남아로 향하는 페달질을 멈출 수 없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