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스팔트 고구마 Mar 31. 2021

머리를 굴렸다 바퀴를 굴리게 생겼다

지금의 인생 계산 해보기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게으른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경험상 100% 동의하진 않더라도 상당 부분 수긍하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이미 이 지구는 없어지고 우주마저 사라지고 말았을 거다.


 하고 싶은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결심을 한다고 해서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꿈같을까? 현실은 떠나기도 전에 당장 한숨부터 나왔다. 집안 문제 해결을 하고 나니 여행하려 모아둔 목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계일주 출발을 앞둔 2010년 당시는 여행 커뮤니티가 상당히 활발했었고 하루 5-6천 원의 예산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해주고는 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론 물가가 저렴한 나라를 제외하고 재현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적용 가능한 곳도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들이어서 결국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보통 여행자 1인의 세계일주 (당시 2010년) 예산은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 6개 대륙을 모두 돌아보는 것으로 약간은 빠듯할 수 있는 3천만 원을 조금 넘는 정도로 잡는다. 그 금액은 비싼 지역에선 짧게 움직여야 하고 저렴한 지역에선 조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타이트한 예산이다. 난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돈이 전부여서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리고 여행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렸다.


 여행자가 피할 수 없는 고정지출 부분은 보통 숙, 식, 교통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낮출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정 지출이 낮아야만 여행의 기간과 이동이 좀 더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출에서 숙박비를 아끼려면 노숙이나 캠핑을, 음식은 해 먹거나 저렴한 현지식으로, 교통은 히치 하이킹이나 걷기 등 돈이 들지 않은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교집합으로 찾아낸 방법. 바로 자전거 여행이었다. 


 머리를 굴렸는데 바퀴를 굴리게 생겼구나.

 





 "뭐?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한다고?"

 "뭐 어때? 그냥 가는 데까지 가 보는 거지."


 무식하다면 용감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 내가 뱉은 말의 뜻에 대해 감조차 잡지 못했던 것은 이야기를 들은 친구뿐만 아니라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갓 전역한 대한민국 예비역에게 인생 중 최고로 넘치는 무형의 자산이 있다. 바로 자신감.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팔팔한 신체 에너지를 무기 삼아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군대물이 아직 덜 빠졌고 이 자신감이 흐물흐물 해지기 전에 빨리 가야 했다. 정말로 그랬다. 당시의 몸뚱이로 못할 것은 없다고 왜 그렇게 믿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전국 일주는커녕 대구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조차 자전거로 달려본 적이 없었음에도 세계일주는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군대에선 30명이 넘는 소대원들을 전부 책임져야 했지만 여행에서는 나만 책임지면 된다. 내겐 그 가벼움만으로도 여행의 무게감을 덜어내는데 충분했다. 


 생각하는 만큼의 세계여행을 전부 하지 못해도 그리고 여행이 중간에 실패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너무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방법을 알아내고 나니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자전거 여행하면 떠올릴만한 장비를 갖추는데 보통 예산은 수백만 원 대가 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장비를 최소비용으로 해결해야 했다. 내겐 장비가 비싸고 고급인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당장 떠나는 게 더 절실했으니.



세계일주를 이루어 줄 녀석. 내겐 둘도 없는 자전거


 흔히 말하는 철티비 자전거를 샀다. 차체가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웠다. 초라해도 내겐 세계일주를 이루어줄 세상에 둘도 없는 나만의 두 바퀴였으니까. 10만 원대의 철티비 자전거를 적당히 손보기 시작했다.


비싼 짐받이를 살 돈을 아끼려 싸구려 철망 바구니를 붙이고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덧댔다. 마무리는 신발끈과 테이프로 감았다. 결국 여행용으로 세팅하는데 자전거를 포함한 모든 장비를 100만 원이 안 되는 예산으로 어떻게는 맞췄다.


 물건이 가격만큼의 성능을 한다는 것은 사람이 겪을 육체적, 시간적, 정신적인 수고를 돈으로 덜어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난 좀 더 아껴야 했다. 고장 나면 내가 수고하면 된다. 이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다. 가난하면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된다는 것을.






 사람은 하기 싫으면 핑계를 찾고 하고자 한다면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세계 여행을 하고자 하는 절실함은 세계일주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수단을 내놓았다.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들었고 그 계산기는 내게 '자전거 여행'이라는 대답을 내놨다.


 흔히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 생각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에 절실함이 동반된 행동이야말로 무언가를 이루는데 분명 씨앗이 된다고 믿는다. 출발 전 여행 준비물품을 다 챙기고 보니 이땐 정말 나의 절실함만으로 자전거와 함께 달까지도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펑크 수리하는 방법도 제대로 몰랐지만 자전거 타고 세계일주를 한다는 상상에 정말 행복했다.

이전 02화 계획대로 될 리가 없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