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스팔트 고구마 Apr 30. 2021

최악의 상황은 자주 상상을 넘어선다

깊은 절망, 두 번째 뺑소니 사고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종종 길에서 겪을 최악의 상황이 무엇일까 상상해 보곤 했다. 일어날 확률이 극히 적지만 만약에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 봤지만 내가 감당할 육체적, 심적 고통의 깊이와 스스로의 반응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극단의 상황으로 생각이 깊어진다 싶으면 그 진행을 멈췄다. 큰 맘먹고 출발한 이 여행을 그만둘 좋은 핑계를 어떻게든 만들어 낼 것만 같아서.






 동남아 여행의 첫 번째 국가는 라오스였다. 가난하고 작은 불교국가 정도로만 알고 온 라오스에서의 며칠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죽은 사람을 거적데기로 덮어놓기만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갓 넘어온 중국에 대비해서 너무나 부실했던 인프라, 밝은 모습으로 '싸바이디~!' 외치며 인사하던 손바닥이 이내 아래로 바뀌며 돈을 달라는 많은 아이들, 게이가 다가와 너무 태연하게 내 아랫도리를 터치한 일, 교통사고가 났음에도 길에 방치한 시체를 보면서 내게 히죽대던 현지 경찰의 모습을 보고 도대체 이 나라가 무슨 나라인가 싶었다. 




흔한 식당조차 찾기 없어서 현지인들처럼 나무에 열린 바나나를 따다 구웠다. 떫어서 결국 버렸다


 직접 겪은 라오스는 이 나라가 비전이 없어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 그 뜻을 상상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이 앞으로도 계속될 미래처럼 보였으니까. 이 나라가 안타까웠다. 한편으론 내가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큰 기회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가 절로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오토바이 떼가 유독 기억에 남는 베트남은 라오스에 비해 물자가 훨씬 풍부했고 환경도 좋았다. 입에 맞는 음식도 많아서 초반 여행은 즐거웠다. 


 중부 후에(Hue)에서 다낭(Da nang)으로 가던 길이었다. 오르막 길을 한참 동안 진땀을 빼며 정상에 올랐다. 곧 내리막 길을 엄청난 속도로 내려가던 중 예기지 못한 사고가 터졌다. 늦은 밤에 내달린 산길 정상의 반대편에선 소나기가 내렸던 모양이다. 내가 오르던 방향에서는 빗방울조차 없었는데 내리막 쪽에선 도로가 젖어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후에도 비는 없었기에 길이 젖은 상태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때는 밤이어서 확인이 어려웠다. 


 내리막의 도움으로 빠른 속도로 내려가면서 바퀴가 조금씩 튀며 물이 튀는 걸 알았고 곧 노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아챈 지 얼마 안 가 순식간에 미끄러지면서 바닥을 굴렀다. 아스팔트 길바닥 위에 손과 무릎이 체중과 속도에 실려 짓이겨진 채 갈려버렸다. 살점의 일부가 걸레짝처럼 찢어져 날아가고 피범벅이 되었다. 




박힌 돌을 빼고 난 부위는 유독 시커맸다


 도로공사를 어떻게 한 건지 아스팔트의 자갈 조밀도는 듬성듬성했다. 도로 위 자갈 몇개가 떨어져 내 손바닥과 무릎에 박혔고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낭떠러지 쪽으로 떨어지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길에서 만난 현지인이 시내 숙소까지 길 안내를 도와줬다. 병원에서 치료 후 쉬면 회복될 일이었으니, 이 역시 트래블 속 트러블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 참... 사고로 베트남 도로 공사 수준을 알게 되다니, 공사 참 부실하구먼. 허허허. 






 캄보디아로 넘어와 수도 프놈펜에 머무르며 상처가 완전히 아물길 기다렸다. 운 좋게도 현지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 덕택에 내 여행 이야기를 생방송 TV와 라디오에서 나눌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다. 그렇게 긍정 에너지를 한껏 받으며 한 달 여의 시간을 캄보디아에서 보냈고 이전의 상처를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영어+크메르어 통역 시간에는 뻘쭘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라디오 방송의 하루살이 한국 DJ


 좋은 일이 가득할 것만 같던 여행에 최악의 상황이 닥쳤다. 태국 방콕으로 이동 중 두 번째 뺑소니 사고를 당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사고였다. 특히 첫 번째 중국에서의 사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사고였다. 


 갓길에 잠시 서서 GPS 배터리를 갈고 막 출발할 무렵, 뒤에서 오던 음주 운전자가 나를 치고 도망가버렸다. 그 충돌로 인해 난 몇 미터를 날아 떨어졌지만, 다행인 것은 난 크게 다치지 않고 피부에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다는 사실이었다. 



일주일에 사고로 한 명씩 죽는다는 그 도로에서 나는 다행히도 살았다고 현지인이 알려줬다



뺑소니 사고 현장. 반대편에서 오는 화물트럭 차에 음주 운전자는 내가 소리 지르지 않았다면 치여 죽었을 것이다.


 그 안도감도 잠시,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너무나 낙담했다. 이동에 필수인 자전거는 프레임과 휠이 휘어져버려서 바퀴를 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이로 인해 당장 이동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노트북을 비롯한 주요 전자장비들 또한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 났다. 안 다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지만, 사고가 가져온 현실은 절망적이었다.


 상상하는 안 좋은 일은 자주 그렇듯 예상을 벗어나 더 안 좋다. 시간적으로 조금은 멀리 있을 거라 여겼던 돈 문제는 뺑소니 사고로 인해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 가진 돈으로 적당한 장비조차 마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남은 여행의 지속 여부가 불가능했다. 


 깊은 시름에 빠져있음에도 대책을 생각해야 했다. 인생에서 문 하나가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데 이 뺑소니 사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으로 날 이끌었다. 그 방향이 좋든 싫든 반드시 선택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이전 04화 이 여행이 나를 살릴지도 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