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고니아] 리뷰
이 글은 영화 [부고니아]와 원작인 [지구를 지켜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천재들의 상상력에는 한계도 없는가 보다. 당장 내일 출근하는 것을 상상해도 진절머리가 나는데, 입에 담기조차 힘든 단어인 4차 대전에 대해 예언을 한 희대의 천재가 있었으니까. 그것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들고 싸워야 할 무기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면서.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만큼이나 절대 일어나서는 안될 이 전쟁에서, 인류는 막대기와 돌멩이를 들고 싸울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AI기술 발전의 가속화로 인해 진짜와 가짜를 판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지금, 대체 노벨상을 두 번이나(사실은 한 번이다) 받은 양반이 왜 이런 말을 했나 싶겠지만. 그의 말을 찬찬히 뜯어보면 일리가 있다 못해 그의 식견에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참고)
영화 [부고니아]는 과학자의 대명사인 그의 예언을 60초 후에 존재할 미래로 가져온 작품이다. 분명 몇십 년 전(?) 영화에서는 모든 장면이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였거늘, 2025년에 만난 작품에서는 등골이 서늘한 현실처럼 느껴진다. 감독은 원작에 대한 존중이자 리메이크작의 사활을 건 것처럼 여러 포인트를 이용해 이런 훌륭한 전환을 이뤄낸다.
가장 큰 과제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 환기였을 것이다. 그러려면 원작에 깔려있는 블랙 코미디를 차분히 걷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더 두터운 카펫이 필요했을 테고. 미셸(엠마 스톤)이 극 중에서 아무리 테디(제시 플레먼스)와 육탄전을 벌인다 해도 그 모든 잡음을 흡수하고도 남을 만큼 두터운. 그 촘촘하고 풍성한 털로 입단속을 하는 역할은 음악이 담당했다. 필요한 순간마다 장엄하고 웅장하게. 적재적소에 배치된 음악 덕에, 고대 비극에서나 느낄법한 암울함을 테디가 단지 자전거를 타고 달릴 뿐인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완벽한 공수 전환(야구 아님)이다.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병구(신하균)는 모든 관객들의 측은함과 동정심을 독점할 수 있었다.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칭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가 펼치는 모든 주장들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덕에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사실일 거라 믿고 싶었고. 어느 순간에 가서는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고 바라기까지 했다. 이 덜떨어진 총각의 캐릭터를 “진짜”로 완성시킨 것은 강사장(백윤식)의 역할도 컸다. 물론 장르적 특성에 의한 설정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는 시종일관 신뢰가 떨어지는 언사와 행동으로 임했고, 강도 높은 고문 속에서 뱉어내는 고통의 표현들 마저도 경박했다. 그로 인해 결말을 모르고 원작을 감상하던 시절에 조차도 강사장을 향한 애통함은 그다지 많은 표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 속의 그들은 다르다. 미셸은 고개 숙이지 않는다. 협상에 임하는 그 모든 순간에서도 비굴함까지 건너가지 않는다. 단 한순간도 자신의 품위와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 정확한 선을 그어놓는다. 일정선을 넘기 시작하는 테디와 마주할 때면 자신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혹은 어떻게 변할지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맞선다. 이런 미셸 앞에 선 테드는 병구보다 더 논리적인 주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하는 행동들 마저도 훨씬 더 차분하고 치밀한데도. 그가 뿜어내는 모든 기운부터 진실 함량이 미달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병구와 테드. 같은 역할(?) 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분이 들게 하는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가 가진 신념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느냐에서 온다. 비록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테드보다 조금은 더 불리할 것 같은 병구이지만 그의 믿음은 광기보다는 진실에 대한 순수한 열망에 가깝다. 그에 비해 테드는 그토록 유려한 말을 뱉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셸의 질문공세와 기세 앞에서는 한낱 조잡한 가설에 불과하게 되어 나뒹군다.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행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작품에서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어머니(알리시아 실버스톤)의 죽음 앞에 선 무너진 테디는 병구의 모습보다도 훨씬 더 나약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이런 완벽하게 무너진 대립관계를 가능하게 한 제시 플레먼스의 열연에 찬사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역할에 있어서는 비슷하지만 강사장의 성별이 여성으로 바뀐 것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집착과 회귀, 혹은 콤플렉스를 건드린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테디를 통해 잘 표현된다. 그는 이미 병상에 있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의 치료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녀의 생명 연장줄을 거머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어머니를 안드로메다인이 존재한다는 자신의 논리를 증명하기 위한 인질로 삼고 있기도 하다. 이로 인해 테디는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이율배반적임을 모선(Mother ship), 그리고 절대자이자 가이아로 치환해도 어색하지 않을, 미셸에 대한 집착으로 발현한다.
그는 미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고 그녀 앞에서만 철저히 준비한 절차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자신을 비롯한 인류의 파괴자인 그녀를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가까이서 그녀와 함께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치게 몰두한다. 이런 그가 끝까지 어리석었음을 인정이라도 하듯이. 그는 스스로가 만든 폭탄이자 결국 인류를 멸망하게 할 시한폭탄 앞에서 목숨을 잃는다. 결국 어머니라 일컬어질 그 모든 존재들과의 만남을 목전에 두고서.
가이아. 미셸은 지구로 보이는 행성을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없애야 할지 말지를 고민한다. 그녀는 영화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다. 클로즈업이면서도 살짝 아래에서 조명한 대자연 어머니의 얼굴은 그 어떤 때 보다도 괴로워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새끼에게 안녕을 고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셸은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틀렸는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톡. 하고 지구를 찌를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일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결국 자신들의 미래이자 여태껏 쌓아온 역사를 스스로 파괴하기를 결정하였으므로. 세계 제3차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자신의 수많은 아들들 중, 자신과 가장 가까웠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테디가 어머니의 앞에서 행하는 것을 목도했으므로.
마치면서
영화는 초반과 똑같이. 바쁜 꿀벌의 모습을 보여주는 수미쌍관 구조로 끝을 맺는다. 사실 이는 이토록 처절한 비극 속에 숨겨진 일말의 희망 부스러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록 밉더라도. 결국은 문명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는 또 나올 것이다. 미셸의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도. 그렇게 어리석은 실수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결국 이런 말썽 많은 별 지구의 종말이 하루씩은 더 미뤄지지 않을까 하는 말을 걸듯이.
참고
세계 3차 대전은 핵전쟁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될 것이기 때문에. 4차 대전이 일어난다면. 원시적인 무기밖에 쓸 수 없음을 빗대어 말함.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남긴 메모들]
엠마스톤도 저렇게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한낱 일벌인 것을. 왕국은 무너지지 않는다. /일벌들이 돌아오기 때문에. 가리고 감아도 들리고 여왕벌의 페로몬/이미 낀 색안경 그녀는 구라칠 때나 안경을 썼어/살인자의 망상. 코미디를 버리고 비극을 장착했다. /왜 지금이 더 어울리는지 알 거 같다./그땐 코미디고 지금은 현실이다. /수미쌍관. 다시 일어날 비극. 미워도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될 것./모선이라고 하는 게 엠마스톤이 여자, 가이아 같은 존재라서 더 와닿고 /결국 남자를 죽인 것이 자폭=세계 제3차 대전이라는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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