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 좀 들어주시오

영화 [국보]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국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족, 핏줄;열망과 열등, 그리고 애증
1ed803902dfcb269e6b6b9ce95f1927d71878fad 사진출처:다음 영화

키쿠오는 여린 등(back) 가득 그의 출신을 문신으로 남긴다.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의 문신을 말렸던 야쿠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습격에 의해 목숨을 잃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복합적인 마음을 가진 표식이었을 것이다. 반감에 대한 표현이기도, 부모를 기억하기 위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키쿠오의 생애를 돌아보았을 때. 이때의 마음은 그저 치기 어림의 결과물로 보기는 힘들다. 자신이 서 있을 지지대를 빼앗겨버린 어린아이의 상실에 대한 표현이자,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열망을 담은 것이었으므로.


그의 뿌리, 혹은 핏줄을 향한 집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무대 밖에서 자신이 쉬어야 할 가족에 대한. 다른 하나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지켜줄 가족에 대한.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두 상황 모두에서 가족을 버리고, 또 버림받으며 그 어떤 것도 지키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93ca84efa8462703836a6582f3d39669e5834a85 사진 출처:다음 영화

무대 위의 온나가타가 되기 위해서 키쿠오는 반드시 문신의 일부를 가려야 했다. 그래야만 스승이자 새로운 아버지인 한지로(와타나베 켄)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또한 그의 아들이자 동료인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왕관을 쓰게 될, 명문 가부키 집안의 장남 슌스케가 부러웠을 것이다. 그의 피를 한 사발 마셔버리면. 자신을 지켜줄 또 하나의 문신이 될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허락된 것은. 고작해야 창백하게 화장한 얼굴 위에 그려 넣는 핏빛 눈꼬리 밖에는 없었다. 매번 그릴 수 있지만, 미련 없이 지워져 버릴 운명을 가진.


화려함을 얼굴에서 닦아 낸 후 마치 그 순간이 꿈처럼 느껴지는 허탈함 속에 키쿠오가 들어앉아 있을 때도. 후지코마(미카미 아이)는 키쿠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다. 그의 출신이나 인기에 상관없이. 그의 옆에 서 있을 수 있는 순간이 언제가 되더라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키쿠오는 자신이 이뤄낸 첫 번째 원가족인 후지코마와, 그의 딸 아야코를 지켜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대배우가 될 서막을 열어젖힌 축제에서. 아버지를 알아보고 자신이 탄 가마로 뛰어오는 어린 딸을 밀어냈다. 이미 키쿠오 스스로가 그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등에 남은 문신처럼 상처를 안고 평생 살게 될 또 다른 아이를 탄생시키고야 말았다. 자의적으로.


그는 일종의 선택을 마친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한지로의 말처럼 실력으로 핏줄도 집어삼킬 수 있게 되는 미래뿐이었다. 그러나 스승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에 아들인 슌스케를 찾는다. 그것도 키쿠오가 직업적인, 혹은 가부키 가문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방금 선포한 그 자리에서. 드디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붉은 핏줄 안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 생각했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또 한 번의 배척과, 또다시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의 원가족뿐이었다.




내 말 좀 들어주시오;시련, 속죄 그리고 되찾은 순수성.
470a350f6f9e69c137b8ce0453efb850072150ad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주인공에게는 숙적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있다는 것을. 주인공에게서 훗날 사랑, 연민 혹은 공감을 갖게 하는 서사를 만들기 위함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도. 그러나 시련은 키쿠오에게 유달리 가혹했다. 운명의 앙숙이자 절친은 지나간 자리마다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을뿐더러, 찾아오는 방법도, 시기도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시련, 혹은 운명이라는 것에 귀가 있다면. 부디 불운이라는 철퇴를 그만 날리라는 말을 퍼붓고 싶었다. 그러나 국보로 지정된 뒤 하나이 한지로의 무대를 보면서. 나는 내가 소리치지 못한 것이 아닌, 침묵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맞이했던 시궁창이 추악할수록, 이를 승화해 키쿠오가 뽑아내는 춤사위가 아름답다는 것을 학습한 뒤였으니까. 눈앞에서 목격한 그의 생애를 통해서.


이 비겁한 목격자는 깊은 좌절과, 고뇌, 외로움을 온몸에 묻힌 채 절규하는 키쿠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던 아이가 술이 아니면 기댈 곳이 없는 패배자가 되는 모든 과정을. 찢어진 그의 마음이 회복되고 흉터가 남는 시간이 온전히 그의 탓이자 몫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나는 그가 추락할수록 운명의 편에 서서 쾌재를 부른 셈이다.




ffec8b47753d844bb1e48612b1689fe06410db86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는 드디어 다시.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풍경을 또 한 번 맞이한다. 온나가타로 무대에 섰던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단 두 번만 만날 수 있었던, 빛이 조각이 되어 눈처럼 떨어지는 것 같던 풍경을. 그가 깨달았길 바란다. 순수함이라는 것을 가지고 간절한 무대를 펼쳤을 때만 찾아오는 그 희열의 풍경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수많은 관중 속에서 홀로 그 광경을 조우한 그의 표정이 부디 나와 같은 생각이기를.


참 아름답구나.라고 읊조리는 영화 속 그의 마지막 말이 울음처럼 들리기도. 환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의 조각조각난 생을 들여다본 나의 귀에는 그 말이 마치 내 말 좀 들어주시오... 내 말도 좀 들어주시오.라고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를 본 후 남긴 메모]

모든 것을 잃어야 하나가 다가온다/핏줄 때문에 안되는데 정통성을 갖고 싶지만/자신의 가족은 단 하나도 지키지 못함/순수성을 찾게 됨/순간순간 찾아오는 아주 약간의 클리셰는 있으나/뭐랄까 토지처럼 큰 역사 속에서 인물만 남김/뻔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반전하는 후반부/같은 고통을 겪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두 사람/놓을 수 있어야 채워진다. /나의 죄를 사하소서/ 내 이야기도 한 번 들어주시겠소./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을 못 외울 거 같은데 어디서 찾아봐야 하나.


#국보 #이상일 #요시자와료 #요코하마류세이 #타키하타미츠키 #테라지마시노부 #모리나나 #일영화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리뷰어 #영화칼럼 #영화해석 #결말해석 #영화감상평 #개봉영화 #영화보고글쓰기 #Munalogi #브런치작가 #네이버영화인플루언서 #Cinelab #Cinelab크리에이터 #내일은파란안경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영화꼰대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어린 왕자의 초라한 대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