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란도] 리뷰
이 글은 영화 [올란도]와 버지니아 울프의 원작 소설 [올랜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콘텐츠를 팟캐스트에 4월 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무려 32년 만에 재개봉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올란도]가 주는 시각적 아름다움은 단 한순간도 녹슬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움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당연히 올란도 역의 틸다 스윈튼. 그녀가 있음으로 인해 형언할 수 없는 모든 우아한 분위기가 작품 안에서 단단히 틀어 잡혀 있음은 물론 미처 다 옮겨오지 못한 원작의 문장들 마저 느껴질 듯 생생하다.
영화는 원작에서 미처 분명하게 나누지 못한 시대별 서술을 똑똑 끊어 나눈다. 또한 그때의 올란도가 처한 삶을 명징하게 짚은 뒤 발걸음을 옮긴다. 이는 올란도라는 한 인간의 변화를 생애의 구간별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또한 난해하고 함축적인 원작에서 오는 힘겨움을 조금 피할 수 있음은 물론. 400년간의 세월을 담아 점점 진화, 혹은 바뀌어가는 문장에서 오는 이질감에서도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그 덕에 성별과 시대를 오고 가는 삶을 사는 환상 소설 속의 인물은 각색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질서 정연하게 영화 속에서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장르적인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것은 명확하지만, 원작을 통해 한 인물의 삶을 예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틸다 스윈튼이 연기하는 올란도가 여전히 낯설고 쌀쌀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을 가득 메웠던 한 개체의 존재적 근원에 대한 혼란과, 수많은 시대를 거쳐오며 몇 번이고 자신을 가다듬어야 했던 올란도의 고단함이 사라진 것은. 분명 엄청난 메리트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올란도에게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더 강하게 심어줌과 동시에 수많은 흔들림이 주는 불안함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의 행동과 타인의 관계에서 오는 대화들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듦과 동시에 올란도의 마음 안에서만 이런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소통이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은 물론 주인공의 마음 안에 갇힌 채 영원히 전달되지 않는 메시지들이 그저 맥없이 흩날리기만 한다. 제아무리 제4의 벽을 뚫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올란도라 하더라도. 과감히 잘라내 버린 사건들과 생각들은 결국 이 낯선 분위기를 타개해 줄 중재자를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
그럼에도 시간을 몇 번이고 거슬러 우리 앞에 당도한 인물의 전기(傳記, Biography)를 안도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관객들 앞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올란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 남은 채 모든 것이 스쳐 지나가는 삶을 살아온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해탈함을 닮은 차분함 만이 남아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어떤 피로함도, 그 어떤 후회도 남아 있지 않다. 자신에게만 다가오는 이 괴상한 삶에 대한 억울함도 느낄 법하건만 올란도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을 빼곡히 담은 낡고 너덜거리는 원고 한 뭉치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택하면서.
고요한 얼굴로 증명하는 그녀의 성찰은 오히려 원작에서 느꼈던 허탈함이나 애매함보다 더 나은, 혹은 더 홀가분한 선택이 되고, 이 선택은 결국 낯선 이에게 악수를 건넬 용기를 불어넣는다. 하늘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만끽하는 것 같은 올란도의 마음에 비로소 관객과 같은 감정이 채워지는 순간은. 영화 내내 그녀가 마주한 수많은 부정당한 순간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이 글의 TMI]
날이 좋아 그런지 집 주변에 위치한 수많은 테라스 카페들에 빈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이번주말에는 반드시 내가 당신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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