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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Dec 01. 2023

과자 먹을 자격, 그것은 열심

2학기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은성이는 남아서 40분 더 공부를 한다. 3학년 오빠의 정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동복지센터에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업을 하기 위해 2학기 내용을 공부할 거라고 제출한 계획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직 한글을 온전히 터득하지 못한 까닭이다. 아직 모음 순서도 헛갈려하고 받침 있는 글자 읽기도 거의 안 된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이르다. 금방 잊어버리더라도 가르치고 또 가르친다. 잘못된 획순을 바로잡아 여러 번 써보고 받침 없는 글자부터 차근차근 다시 읽어본다.


기초 받아쓰기 교재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날은 단모음 ‘ㅐ’, ‘ㅔ’와 이중모음 ‘ㅘ’를 배우게 됐다. 여러 가지 낱말 중 해당 모음이 들어가는 음절에 ○, △, □와 같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표시도 해보고 여러 번 읽기 연습을 했다. 그러나 아직 받아쓰기 단계로는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읽기부터 복병이 찾아왔으니 바로 ‘과자’였다.


‘과자’ 읽기가 뭐가 그렇게 어렵지 했지만 은성이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라는 발음을 가르치고 ‘과자’를 천천히 한 음절씩 불러 주었더니 그걸 따라 한다는 것이 ‘과좌’ 하는 것 아닌가? 영어도 아니고 혀를 이렇게 굴리니 웃음이 나왔지만 아니라고 하고 다시 발음해 주었다. “과,자. 은성아, ‘과’에만 ‘ㅘ’를 붙이고 ‘자’는 ‘좌’가 아니고 ‘자’라고 발음해서 과, 자 라고 해야 돼.” 하지만 이번엔 입으로 여러 번 되뇌더니 ‘가자’라고 한다. 한쪽만 ‘ㅘ’를 붙이는 발음이 안 된다. 10번 정도 반복했는데도 안 된다. 과좌, 가자, 과좌, 가자... 열심히 연습하지만 안 되는 걸 보니 이게 뭐라고 싶어 한숨이 새어 나왔다.


10분이나 ‘과자’로 실랑이를 한 뒤 종이 쳐서 할 수 없이 수업을 마쳤다. 하교하기 위해 마무리 정리하라는 말에 우리 어린이는 씩씩하게 말한다.

“선생님, 오늘 과자 줘요?”

매시간 간식을 나누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분명 들었다. 은성이가 정확히 ‘과자’라고 발음한 것을!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당연히 주지. 그런데 은성아, 다시 ‘과자’ 해볼래?”     

포기할 수 없는 끈질긴 담임. 과자 준다는 말에 기분 좋은 우리 은성이가 씩씩하게 외친다.     

“과! 좌!”     

허탈한 웃음 허허 한 번 웃고 맛있는 고래밥 과자를 은성이 손에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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