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학식 다음 날부터는 급식실에서 밥을 먹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 서는 연습도 해보고 밥 받는 자리에서 식탁까지 걸어가는 연습도 해보았다. 당연히 썩 매끄럽지 못한 흐름이지만 이따가 다른 반보다 조금 뒤에 서서 따라가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우리 1학년들, 급식 받고 자리까지 걷는데 한 발 한 발을 얼마나 조심히 내딛는지. 선생님들이 국물 흘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명심 또 명심을 시켰긴 하지만 그 말을 이렇게 잘 지킬 일인가? 덕분에 네 반씩 나눠 선 줄이 구만리다.
2.
밥을 받아놓고 영양 선생님과 이야기할 게 있어서 한참을 서 있었나 보다. 학년 부장님이 애타게 불러서 돌아보니 우리 반 꼬꼬마가 또 나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거였다.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 얼른 갔더니 꼬꼬마 하는 말, “선생님, 국에 밥 말아 먹어도 돼요?” 이게 물어볼 일인가 싶었지만 1학년은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면서 얼른 식판을 살펴봤는데, 이미 미역국에 밥이 한가득이다. “다음부터는 안 물어봐도 돼.”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물으려거든 밥 넣기 전에 해주라.’ 했다.
3.
분식이 나온 날이다. 반찬 칸에 담아야 할 것 같은 떡볶이를 조리사님들은 국그릇에 담아주고 계셨다. 아이들이 자꾸 받으러 오니 처음부터 많이 주시는 것 같았다. 혈당 오를 게 걱정인 담임은 반찬 칸에 담아주시길 요구하고서 자리로 가 앉았는데, 지난번 국에 말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던 꼬꼬마가 또 나를 부른다. 오늘은 말아 먹을 음식이 없는데 생각하며 자리로 갔더니 꼬꼬마 하는 말, “선생님, 떡볶이 국물에 밥 비벼 먹어도 돼요?” 이번에도 “안 물어보고 먹어도 돼.” 하면서 막상 다음엔 어떤 질문을 해올지 내심 기대가 되더라.
4.
예전에 아이 반찬 하나 더 먹이려다가 민원 들어온 일이 있어서 그 후로는 급식 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지 못했다. 특히나 편식이 심한 여덟 살 아이들 지도하는 게 조금 껄끄러웠다. 1학기엔 혹시나 싶은 마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특별히 더 많이 먹기를 요구하지는 않았는데, 2학기 상담 주간에 한 어머니께서 자녀가 너무 편식이 심하니 선생님께서 다 먹으라고 지도해 주셔도 괜찮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순간 빗장이 풀리고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이제 올 것이 왔구나. 그때부터 열혈 선생 모드가 되어 국이나 찬 중에 1개라도 안 받은 것이 있으면 받아온 것 중 한 가지는 다 먹도록 했다. 하나라도 다 먹은 것이 없다면 스스로 한 가지를 선택하여 다 먹게 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시키기 전에 자진납세 하는 어린이들 속출.
“선생님, 이거, 이거 다 먹고 이거는 조금만 먹고 후식 먹어도 돼요? 네?”
“선생님, 국 안 받았는데 반찬 두 개 다 먹어야 돼요?”
“선생님, 이거는 너무 매워서 못 먹겠는데 밥이랑 국은 다 먹을게요.”
덕분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뿌듯하다.
5.
사실 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 한다.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조금 어설픈 모양새이고 반찬을 잘 흘리기도 하는데,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남동생이 충고를 한 적이 있다. 학생들 앞에서 젓가락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다시 연습하라고 했다. 나는 젓가락질이 엄청 티 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아이들은 스스로 다 할 수 있으니 내가 가르칠 일이 없어서 괜찮다고 했었다. 그런데! 1학년을 맡고 보니 젓가락질을 갓 배운 어린이들이 많아 내가 가르쳐 줘야 할 판이다. 수업 시간에 젓가락질하는 법을 알려주며 속으로는 얼마나 뜨끔하던지. 선생님은 잘하는 것처럼 실컷 떠들고 나니 급식 자리를 아이들과 조금 떨어져 앉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옮기지 않고 몇 달이 지났지만 선생님 젓가락질로 질문하는 아이는 없다. 이제 겨울방학까지 한 달 남짓. 조금만 더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