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보라 Oct 20. 2021

프롤로그

환경을 생각하는 삶의 시작

내 인생에서 지구에 빚진 마음으로 살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본다. 초등학생 시절 동네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울 때는 아니다. 중학생 때 환경오염에 관한 주제로 포스터 그리기 대회 숙제를 할 때도 아니다. 곰곰 떠올려보면 나 스스로 ‘환경’이라는 주제의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학 후 가입할 동아리를 고를 때였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는 특이하게도 환경 동아리가 있었다. 생수보다 정수기 물보다 더 깨끗할 것 같은 그 이름은 바로 ‘하얀샘’. 사실 정체도 제대로 모르고 단지 교회 언니들이 많이 가입한 동아리여서 학교 생활하기 편하겠다는 사심이 먼저 발동했다. 하지만 동아리 면접을 볼 때 받았던 질문이 아직 기억나는 걸 보면 나는 꽤 진심이었던 것 같다.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했는데 본인이 가장 환경오염을 많이 시킨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 말해 보라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머리를 감을 때 엄청난 거품들과 그것이 하수도로 사라지는 걸 볼 때라는 대답을 한 것 같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선배들을 보면서 동아리 합격을 예감할 수 있었다.



동아리에 가입하고 나니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교내 우유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팩을 씻어 말리는 일과 방학 중에 쓰레기 줍기 봉사 활동, 그리고 폐유로 재생 비누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유팩을 교과서에 나오는 직육면체 전개도 모양이 아닌 정확한 사각형 모양으로 뜯는 방법을 배웠다. 수많은 담배꽁초와 깡통들을 주우러 다녔으며, 휠체어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캔 뚜껑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리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이웃 남고생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축제였다. 우리는 함께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안내문을 제작하고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전시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멋진 시를 써서 낭독하고 시화를 제작하는 동아리,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자랑하던 연극 동아리, 멋진 화음을 선보이며 노래 부르던 합창 동아리에 비하면 우리는 고작 쓰레기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동아리일 뿐이었다. 1학년 때는 신문지를 구겨 붙여 곰돌이 푸 인형을 꽤 근사하게 만들었고, 2학년 때는 코카콜라 캔을 자르고 붙여 일렉트릭 기타 모형을 만들었다.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동기 중에 으뜸이라 칭찬받았지만 어차피 곧 또다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환경’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필요한 이야기인지,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당당히 말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환경에 대해 어필하지 못한 것보다 어쩌면 이웃 남고생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더 아쉬웠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 솔직한 대답일 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떨어져 수능을 다시 치고, 그렇게 입학한 학교에 다니다 또다시 그만두고 원하는 교대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당장 생활비 마련에 급급한 시간이 이어졌고 그만큼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서른에 첫 발령을 받고 몇 년 뒤 결혼을 했으며, 다음 해에 임지를 처음 옮겼고 그해 출산을 하고 학교를 잠시 떠나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살게 되었다. 둘째가 드디어 겨우 숟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됐을 즈음,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면 마음껏 휴직 생활을 즐기다 복직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던 대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는 육아에 지쳐있던 내 시간에 대한 보상을 앗아갔고,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이 불안하고 죄책감이 드는 일로 만들어버렸다. 불만이 폭발할 때 즈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내 인생의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뉴스와 동영상을 찾아보고 책도 찾아 읽게 되었다. 그때 만난 허유정 님의 책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는 내가 환경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 나이만큼을 더 살고서야 다시 그 문제로 되돌아온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플라스틱을 적게 쓰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도 충분히 살림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잠시,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되새기며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의 인지 부조화를 겪으며 매일 깨지기를 밥 먹듯 하다 보니, 나의 실천을 공언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뻗어 나갔다. 그 책을 읽은 2020년 2학기에 복직을 했고 교실이라는 공간이 다시 내 삶에 들어오면서 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후행동, 환경 실천 문제도 고민하고 실천하고 싶어졌다. 지성 공동체는 힘이 있고 글은 더 큰 힘이 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아이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아는 걸 말할 때는 왠지 '척'을 하는 것 같아 조금 꺼리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관한 내용은 알리고 또 알려야 한다. 그래서 조금 용기를 내 오지랖을 넓혀 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나는 나 스스로 환경을 위한 실천을 하기로, 조금은 더 불편한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