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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Oct 20. 2021

환경을 살리려면 살림의 주체가 변해야 한다

 환경 실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살림살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내 살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결혼 후에 매일 거치고 있는 살림살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일찍 혼자가 되신 어머니는 혼자서 우리 삼 남매를 키우셨기에 큰딸인 내가 빨리 취직을 해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길 원하셨지만 그런데도 나는 교사되기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면서 기나긴 수험 생활을 이어갔는데,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살림살이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내 할 일은 오로지 공부라는 생각에 설거지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나마 도움이 된 것이라면 해주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정도. 뒤늦은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 여동생이 오히려 일찍 취직하여 생활비를 보탰는데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집안일할 시간에 글자 하나라도 더 보고 외우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불효가 어디 있나 싶을 정도로 참 민망한 일인데도 그때는 정말 일분일초가 절실했다.


 겨우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집에서 엄마 밥을 먹으며 통학을 했었는데, 집을 멀리 떠나온 동기들 대개가 부러워하는 것이었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나는 집을 탈출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도움드릴 생각은 안 하고 또 떠날 생각부터 했었다니, 나란 사람...) 그런데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자취생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은 또다시 접어두어야 했고 첫 월급이 나오기도 전에 대출을 받아 차를 한 대 구입했다. 하지만 결혼 전 독립을 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근무 3년 차가 되던 해 생일날이었다. “엄마, 나 집 구해서 혼자 살아볼래. 다른 선물은 필요 없어!” 생일이라 엄마가 절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노렸다. 그렇게 나만의 살림살이가 시작되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다음 날 당장 학교 근처 빌라촌에 원룸을 하나 구했다. 뭐든지 다 있다는 그곳에서 갖가지 살림살이들을 장만했다. 소형 가전도 몇 가지 샀다. 수납장 하나와 책상도 샀다. 나 혼자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니! 올빼미족이었던 나는 밤마다 일찍 자라고 잔소리하는 엄마가 없으니 너무나 신이 났다.


 소개팅을 하면 당장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정도로 나는 혼자 사는 것이 좋았다. 동학년 선배들은 “너 그러다가 아예 결혼 생각 접는 거 아니야?” 하며 오히려 걱정할 정도로 혼자만의 생활에 푹 빠져있었다. 모든 게 다 만족스러웠던 자취 생활의 유일한 단점은 원룸에 있는 냉장고가 작아서 식자재가 빨리 상한다는 것이었는데,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으려니 자주 먹지 않는 식자재도 사게 되었고 그건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그래도 그때는 크게 죄책감 없이 참 많이 사고 버렸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이 일찍 찾아왔다. 언니보다 먼저 결혼하는 동생을 보면서 갑자기 엄마가 아파서 큰딸 결혼하는 걸 못 보게 될까 봐 덜컥 걱정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심하는 순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1년 6개월의 자취 살림을 청산한 뒤 신혼집 살림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취 살림보다 그 규모가 커진 신혼살림은 생각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둘이 먹는다는 핑계로 더 많이 사면서도 거리낌이 없었다. 바닷가 출신의 시어머니께서 주시는 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 것이 많아 결국 남게 되고 버려졌다. 살 빠지면 입겠다고 사놓고 한 번도 입지 못하는 옷들도 많았고, 당장 인테리어용으로 사서 출산 후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게 된 물건들도 생겨났다. 줄이려고 애쓰면 가능했던 일도 당장에는 사고 버릴 수 있는 핑계들이 차고 넘쳤다.




 경제적이든 환경적이든 당장의 어떤 목표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결심에 겨우 닿게 된 건 역시나 책이었다. 책의 저자들은 특별히 환경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내 몸이 어디가 아프기 시작해서, 또는 자녀가 아토피가 심해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나서부터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느꼈을 때라야 비로소 실천 의지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렇게 편한 살림만 살고자 한다면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더 살기 어려워지겠다고 느낀 것.


 그래서 그때부터 플라스틱으로 된 살림을 사지 않고 재사용이 가능한 살림 도구들을 사기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샴푸와 린스를 쓰지 않고 고체로 된 샴푸바와 린스바를 쓰기 시작했고 팬티라이너 용도의 면 생리대도 샀다. 해보고 싶어도 아직 엄두가 나지 않는 실천 리스트들이 많지만 중요한 건 작은 것부터 한 가지씩 바꾸어나가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결혼 6년 차, 엄마 5년 차밖에 안 되는 초보 살림꾼이지만 그것이 친환경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지구에 진 빚을 조금씩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끔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일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곳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인생 최대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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