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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Oct 20. 2021

없어서 못 쓰는 것과 넉넉한데 아끼는 것 사이

그 사이에서 흔들린 날들의 기록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공평하지 못할까 원망하던 학창 시절을 지나고 인생을 돌아보니 누구나 앞일을 알 수 없다는 부분은 그나마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서야 내가 옛날에 참 힘들게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졌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누구에게나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아픔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스무 살, 친구들은 캠퍼스에서 새내기의 낭만을 누리고 있을 그때 나는 대학에 떨어져 돈을 벌어야 했다. 낮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실제 주경야독을 내가 하게 되다니. 보통은 사회에 나가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선물도 사드리고 그러던데,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많지 않은 액수지만 처음 받은 월급을 몽땅 옷을 사는 데 썼다. 옷 못 사서 한 맺힌 사람처럼. 브랜드 상표가 달린 멋지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니던 친구들이 아주 부러웠었다. 그렇다. 나는 한 맺힌 사람이 맞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었고 번듯한 월급쟁이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끼기보다는 같은 물건이라도 꼭 더 비싼 것을 샀다. 그러면 내 안에 없어서 사지 못했던 옛날의 서러움들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이제 돈 번다고! 이런 거 거뜬하게 살 수 있다고!

 



  혼자서 지낼 때야 내 돈 내가 쓰는 것이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결혼을 하면서 살림을 살다 보니 이런 소비 습관이 문제가 되었다. 아끼는 습관이 없다보니 저축할 돈을 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그때부터 내 안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더 불을 지핀 건 바로 어머님이었다. 물건값은 꼭 깎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마저 안 되면 덤이라도 얻어야 하는 분, 국물 내고 버리는 멸치도 아까워서 다 드시는 분, 달궈진 프라이팬 식는 것이 아까워 남은 열기에 뭐라도 더 요리하셔야 하는 분, 다른 사람이 버려다 놓은 쓰레기봉투를 열어 그사이에 우리 집 쓰레기를 욱여넣는 분, 아기 콧물 닦을 때 물티슈 한 장을 나눠서 두 번을 쓰는 분. 이런 철두철미한 절약 습관을 보면서도 배울 생각은 안 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아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자꾸만 어릴 적 가난이 생각나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 안의 상처를 극복하는 일이 먼저라는 것을.



  아끼는 것의 경제적 장점을 환경적 장점으로 생각을 옮기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사실로는 관점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를 줄이는 것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 순간 당장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절약 습관의 지경을 넓혀주신 어머님께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물건을 살 때 필요한 물건인지 생각해보고 있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중고로 구할 수 있는지 등을 꼭 생각해보는 편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없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있지만 지구를 위해 내가 아끼고 있다는 것. 생각의 전환이 쉽지 않았지만 모든 건 마음 먹기 달린 것이라는 걸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인생 선배들의 투철한 절약 정신을 가난에 찌든 구질구질함으로 여기지 않는 시선, 더 나아가 그 삶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우려는 마음, 환경 실천 이전에 꼭 내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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