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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빛보라 Oct 21. 2021

부모의 '편리'는 결국 자녀들의 '불리'라는 걸

벌써 엄마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실감이 안 날 때가 있다. 남들 다 하는 결혼, 출산, 육아일 텐데도 그게 나의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뭔가 믿기지 않으면서 비장함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엄마라니. 내가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니! 둘째를 낳고 가장 힘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이제 겨우 3주 된 아가가 배가 고프다며 울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19개월 된 첫째가 응가를 했다고 닦아달라며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정신이 쏙 빠지면서 내 마음도 같이 울었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아, 이게 둘 키우는 현실 육아구나! 그때부터 그냥 '닥치는 대로' 키우다 보니 어느새 48개월, 30개월만큼 아이들이 쑥 컸다.



학창 시절 별명이 '곰탱이 푸'였다.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였는데 교사가 되고 나서는 일 처리도 느렸다. 능력 부족으로 야근을 하는 것 같아 초과 근무한다고 말도 못 하고 매일 야근을 밥 먹듯 했다. 그런 생활을 하다 엄마가 되고 나니 제일 힘든 건 내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엄마가 된 이후의 시간은 호모 부커스이자 호모 스크리벤스 유전자를 가진 엄마의 처절한 사투의 시간이기도 했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더니, 욕심나는 육아 용품들이 정말 많았다. 첫째와 둘째를 낳은 그 사이에도 용품은 거듭 진화했다.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고 더 편리한 것들로 자꾸 눈길이 갔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엄청난 편리함을 입고 있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첫째가 8개월 되던 무렵에 비슷한 아가를 키우던 여동생을 설득해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복직하면 퇴직할 때까지 평생 봄날의 제주도를 볼 수 없을 것이니 조금은 무모한 용기를 낸 것이다. 친정엄마가 함께 했기에 가능했는데, 그때 새로운 '육아 템'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씻지 않아도 되는 온도 체크 기능을 장착한 비닐로 된 일회용 젖병이 있었다. 몇 숟가락 넣었는지 헷갈리지 않아도 되는 딱 정량이 담긴 스틱 분유가 있었다. 고온 살균해서 실온에서도 상하지 않는 실온 이유식이 있었다. 물티슈 외에도 손수건처럼 쓸 수 있는 건티슈가 있었다. 무궁무진한 육아 용품의 세계는 정말 놀라웠다. 편리함의 유혹은 그렇게 쉽게 지친 육아맘의 삶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실 자각 타임'이 찾아온 건 우연은 아니었다. 이렇게 마구 쓰고 버리는 엄마의 '편리'가 결국 아이들에게 '불리'로 작용한다는 모순을 깨달은 것이다. 나에게는 조금 둔감하게 느껴졌던 환경오염의 실체가 아이들을 향하니 너무나 조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조바심이 나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티슈 대신 손수건을 더 사용했다.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손수건 애벌빨래가 힘들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실천 중 하나다. 물티슈의 달콤한 유혹을 당해내기란 매번 힘들지만 매일 새롭게 결심한다.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된다고. 첫째가 아토피 진단을 받고 난 후부터 옷 세탁을 할 때 섬유유연제를 쓰지 않았다. 좋은 향기는 이미 세탁 세제로도 충분했고, 물도 덜 쓰고 비용도 아끼니 일석삼조였다. 병원 진료를 받고 약국에 가면 작은 플라스틱 약병을 주는데, 쓰지 않는 약병들이 쌓이는 것을 보고는 거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 맘 카페를 이용해 중고 옷들을 구해 입혔다. 되도록 건조기 사용은 자제하고 직접 건조대에 빨래를 말렸다.



시간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에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갈등한다. 하지만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또렷해지니 행동으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짧아졌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고 아직 갈 길이 아득하다. 또 무심코 행동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공유의 힘, 연대의 힘을 믿는다.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동기 부여가 되고 힘이 솟는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작은 정보라도 열심히 나누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도 아닌데 왜 우리가 이런 지구에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엄마는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가 내리는 오늘도 건조대에 빨래를 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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