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빛보라 Oct 20. 2021

초보 환경운동가의 제로 웨이스트 리얼 입문기

쓰레기를 제로로 만든다고? 그게 가능해?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을 접했을 때 저절로 든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유명한 실천가들도 있지만, 제로 웨이스트의 진짜 의미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재활용하자는, 그래서 불필요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제로로 만들 수는 없어도 줄이는 건 해볼 만하지! 그래서 하나씩 도전해 본 기록들이다.

 



1. 고체 샴푸바와 린스바


 제일 먼저 써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동아리 시절 샴푸 거품 때문에 물이 엄청나게 오염되고 있다는 걸 걱정했던 내가 아니던가. 이제껏 고체 샴푸가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한 게 어디냐며 지금이라도 시작한 나 자신에 대한 칭찬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직접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풍성한 거품에 놀랐다. 액체 샴푸 못지않았다. 다음은 린스바. 머릿결을 물미역으로 만들어준다는 후기를 읽고 나니 내심 더 기대되었다. 비누를 손으로 비벼 문질렀는데 거품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비누를 잡고 두피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따라가며 쭉 문지르기 시작했다. 건조되어 있던 비누가 물기를 머금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한데 잘 질이 든 비누는 정말 부드러운 느낌이었고 머리카락이 잘 정돈되게 해 주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비누가 건조되면서 갈라져 부서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비누를 면으로 된 망에 넣어서 사용했는데 크기가 클 때는 꺼내어 쓰고 다시 넣어놓고 했지만, 갈라져 나오는 비누 조각들을 끝까지 사용하기에도 망이 좋을 것 같다. 남은 조각까지도 알뜰하게 쓰는 것이 관건이다. 머릿결은 나름 만족이다. 이후에 또다시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에센스를 바르고 뿌리지만 플라스틱 샴푸와 린스를 줄이게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뿌듯함이 밀려온다.


작년 줌으로 했던 사회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인지 맞춰보라는 퀴즈를 냈다. 정답자에겐 비누 선물을!



2. 설거지 비누와 천연수세미


 일단 샴푸바와 린스바를 살 때 설거지 비누를 같이 샀다. 그런데 비누를 써보겠다고 있는 액체 세제를 버려둘 수는 없었다. 생필품을 채워 넣는 것에 왜 그렇게 부지런했던 것인지! 한 달 전에 리필 액체 세제를 몇 팩이나 샀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아들 내외 힘들다고 본인은 아끼면서도 알뜰살뜰 모아놓은 살림살이들을 기꺼이 내어주시는 어머님이 계신다. 뭔가가 비었다 하면 가지고 계신 것으로 바로바로 채워주셨다. 수세미도 마찬가지. 직접 산 건 하나도 없는데 선물 받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결론은? 아직도 그걸 쓰느라고 설거지 비누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면서 물을 쓰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건조한 계절이면 항상 손이 갈라지고 터져서 고생을 하는데, 비누는 화학 성분이 적기 때문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내용도 보았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비누는 이번 겨울이 오기 전에 꼭 사용하는 것이 목표다.



 

3. 실리콘 백


 평소에 지퍼백을 정말 많이 썼다. 아이 옷을 크기별로 계절별로 정리할 때 ‘여름 내복(80)’, ‘겨울 외출복(90)’ 등 5 단위의 모든 옷을 지퍼백에 다 따로 담았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는 기저귀 따로, 손수건 따로, 여벌 옷 따로 모두 다른 지퍼백에 담아 다녔다. 음식들을 냉동실에 소분하여 보관할 때도 지퍼백을 사용했고 일주일 치 이유식을 만들면 이틀 먹을 것을 제외하고 모두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했다. 요리하다가 재료가 조금 남으면 거침없이 비닐 팩 또는 지퍼백을 꺼내 들었다. 그나마 지퍼백을 사는 돈이 아까웠기에 덜 써보려고 더럽지 않은 지퍼백은 세척해서 몇 번을 더 사용하기는 했다. 지퍼백의 최후는 아이의 냄새나는 응가 기저귀를 넣어 버리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면 마치 엄청나게 알뜰한 살림꾼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가 제로 웨이스트 책을 통해 여러 번 재사용할 수 있다는 실리콘 백을 알게 되었다. 3,000번 이상 재사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열탕 소독도 가능하기에 잘만 쓰면 정말 10년 이상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비싼 것이 아쉽지만 그만큼 비닐을 덜 쓸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이득일 것 같아서 3가지 크기를 각 2개씩 샀다. 결론은? 반반이다. 확실히 비닐이나 지퍼백을 덜 쓰긴 한다. 그런데 실리콘 백은 세척과 건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입구 부분이 밀봉을 위해 조금 빳빳한 느낌이 있는데 그래서 속을 씻고 나면 건조할 때 입구가 계속 닫혀 제대로 건조가 되지 않았다. 다른 그릇에 걸치거나 컵 걸이 등을 사용해서 끼워놓아야만 제대로 건조를 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불편했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더 써서 3,000번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4. 면 생리대


 결혼 전까지만 해도 생리통이 심했다. 특히 첫날이 가장 심했는데 식은땀이 줄줄 나고 집에 오면 데굴데굴 구를 때도 있어서 타이레놀이 필수품이었다. 그런데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나니 정말 기적처럼 생리통이 사라졌다. 남은 평생의 생리통을 출산 때 몰아주셨던 것일까. 정말 감사했지만 통증이 없다고 해서 생리가 좋은 건 아니었다. 가장 힘든 건 바로 냄새. 뒤처리가 고통이지만 옷이 얇은 여름이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혼자서 느끼는 그 미묘한 냄새에 불쾌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 냄새가 원래 생리혈의 냄새가 아니라 생리혈이 생리대를 만나 응고되면서 일으키는 화학반응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생리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드디어 면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기존 생리대처럼 면 생리대도 대형부터 팬티라이너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나의 현재 생리 패턴은 첫날에만 폭포수 같이 쏟아지고 둘째 날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쪽같이 줄어드는 양상이고 잔혈이 조금씩 오래 나온다. 대형 면 생리대는 생리 양에 따라 보충재를 더 넣을 수도 있지만 그날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둘째 날부터는 팬티라이너로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쁜 체크무늬와 핑크색 팬티라이너 면 생리대 5개를 샀고 지금까지 1년 넘게 써오고 있다. 그런데 정말 면 생리대를 쓰니 그 지독하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그리고 가려움도 없어졌다. 놀람의 연속이었다.



 세탁은 찬물에 넣어 생리혈을 빼낸 뒤에 과탄산소다를 넣어 따뜻한 물로 하면 된다. 빨기가 귀찮아서 하루 이틀 뒀다가 세탁하면 아무래도 자국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아서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쓸 때는 다시 집으로 들고 와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장점이 훨씬 더 크기에 대형 생리대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보통은 생리통이 심해서 입문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어떤 경우에든지 시도해보는 용기가 꼭 필요할 것 같다.



 

5.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들


 아직 면 행주가 아닌 일회용 행주를 쓰고 있는데 소창 행주를 써보고 싶어 미리 사두었다. 일회용도 다회용으로 쓰고 있다고 위안 삼으며, 앞으로 삶아 말린 면 행주로 그릇의 뽀득뽀득 물기를 닦는 상상을 하면 즐거워진다. 그리고 있는 클렌징 폼을 다 쓰고 나면 세안 비누를 쓸 것이다. 비누칠이 서툰 아이들이 있어서 아직은 펌핑 용기의 핸드워시를 쓰고 있는데 이것도 고체 비누로 바꾸고 싶다. 그리고 대나무 칫솔과 고체 치약도 도전하고 싶다. 대나무 칫솔은 건조를 제대로 못하면 썩어버리는 단점이 있기에 막상 시작을 못 하고 있는데, 인류가 사용한 제일 처음 칫솔도 아직 썩지 못하고 있다는 비극을 생각한다면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다음은 화장솜을 면 패드로 바꾸는 것과 스테인리스로 된 커피 필터와 캡슐 사용이다. 정말 찾아보면 무궁무진한데 그동안 정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하게 된다. 이런 게 있더라 하고 말만 전하는 것이 아닌, 써보니까 이렇게 좋더라 하는 실천 후기를 들려주고 싶어 앞으로도 도전은 계속될 예정이다.




(8월 18일 추가하자면, 일주일 전에 제로 웨이스트 샵을 방문했고 스테인리스 빨대와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샴푸바를 샀다. 그중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을 이용해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고, 쓰던 클렌징 폼은 아직 남았지만 남편이 쓰면 되기에 얼른 고체 세안 비누를 꺼내서 쓰기 시작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스테인리스 커피 캡슐을 곧 구매할 예정이며 부수적인 장비들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전 04화 부모의 '편리'는 결국 자녀들의 '불리'라는 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