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입삼촌이 되고 싶어요!

by 쪼교

일탈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오래 곪아온 피로와 매캐한 체념을 씻어낼 길이 그것뿐이라 믿었다. 거창한 이유도 없고 변명도 없었다. 오늘만은 내 삶의 궤도를 살짝 비켜나가 보고 싶었다.


소파에서 몸을 길게 말아 누웠다. 두 다리를 배로 끌어안고 최대한 작게 웅크렸다. 커튼 틈을 파고든 햇살이 팔의 솜털에 얇게 걸렸다. 벽에 늘어진 그림자는 시곗바늘처럼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가구의 모서리에는 먼지가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주말을 늘 기다렸지만 막상 닥치면 방향을 잃었다. 눈을 감으면 회전목마처럼 얼굴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회사의 동료와 오래된 친구 그리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 웃는 입술과 굳은 이마와 희미한 숨결의 온도까지 한꺼번에 밀려왔다. 눈을 뜨니 액정에 다섯 시가 박혀 있었다. 잠은 깼지만 생각은 흐렸다. 며칠째 이어진 둔한 통증이 머리 뒤를 눌렀다. 주말만 되면 눌러두었던 피로가 한꺼번에 치솟아 속을 뒤집었다. 현실이 싫었다. 벗어나야 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해가 서쪽 벽을 더듬으며 내려앉을 즈음 코트를 집어 들었다. 현관의 찬 공기가 귀를 스치며 정신을 들뜨게 했다. 정류장에 서니 차량이 만든 바람이 발목을 건드렸다. 도착 표지판의 숫자는 쉴 틈 없이 바뀌었다. 버스 전조등이 도로의 흠집과 떨어진 낙엽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카드리더기에 카드를 대고 뒷문 근처에 앉았다. 창에 비친 내 얼굴 너머로 도시가 흘렀다. 형광 조끼를 입은 배달원은 언덕을 올랐고 편의점 문은 ‘딩동’ 소리만 남기고 닫혔다. 포장마차의 스테인리스 뚜껑에서는 김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차 안에는 피로와 향수와 샴푸의 냄새가 얇은 막처럼 떠 있었다. 시곗바늘이 열한 시를 넘기자 도착 멘트가 낮은 톤으로 울렸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졸음을 털어냈다.


창밖에 주황빛 건물이 솟았다. 자정이 가까웠지만 그곳만은 낮처럼 환했다. 하늘이 이 건물 위에만 스포트라이트를 꽂아 둔 듯했다. 빛의 가장자리에서 숨을 고르며 오래된 유리문과 찢긴 전단지 자국을 훑었다. 불안이 발목에서 명치로 천천히 올라왔다. 건물 모서리에 등을 기대고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파도처럼 밀려들고 빠져나갔다. 각자 몸무게만 한 보따리를 어깨에 걸치고 손수레는 삐걱거리며 네 박자 소리를 냈다. 어떤 이는 식판을 머리 위에 여러 장 포개고 사람 사이를 뱀처럼 비집고 지나갔다. 얼굴에는 목적의 색이 묻어 있었다. 이마의 땀방울과 굳은살 박인 손가락 마디. 짧은 농담이 번개처럼 오가고 실소가 그 뒤를 따랐다. 나와 같은 눈코입을 가졌는데도 다른 시간의 리듬을 살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나는 외딴섬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낯선 언어의 공기가 폐 속을 서늘하게 훑었다.

그때 “빵” 하는 경적이 앞을 스쳤다. 오토바이가 거의 코앞을 지나갔다. 엔진의 열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손에서 미끄러진 핸드폰을 움켜쥐고 약속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디오트 광장 앞 11시.


사람 무리를 헤칠 자신이 없어 벽 타일에 어깨를 붙이고 광장으로 향했다. 바닥은 송장지와 스티커로 반짝였고 대봉이 층층이 포개졌다. 부산과 광주와 제주가 한자리에 놓여 있었다. 홍콩과 도쿄와 상하이도 보였다. 카드 단말기의 삑 소리와 테이프가 찢기는 소리. 짧은 욕설과 웃음이 얇은 실처럼 엮였다. 나는 가슴을 곧게 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먼지와 비닐과 땀의 냄새가 폐 깊숙이 내려앉았다. 낯섦이 신경을 깨웠다.

메모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조규호입니다.”


그쪽에서 짧은 감탄이 튀었다. 곧바로 통화가 끊겼다. “여기요!” 하는 목소리가 광장 한가운데서 튕겼다.

입구에 남자가 서 있었다. 작고 마른 체격. 윤기 없는 얼굴빛. 반팔 위에 얇은 누빔조끼. 닳아 반짝이는 어깨끈. 군데군데 해진 바지에서 무릎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가 내민 손은 도자기처럼 창백했지만 악력은 놀라웠다. 손목까지 전류가 스쳤다.


“나이가 있으신데 할 수 있겠어요?”

목소리는 몸집과 달리 낮고 굵었다.


“괜찮습니다.”

“좋아요. 전 오 팀장이고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내 목적은 퇴사였다. 회사를 떠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삶으로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매달 들어오는 급여는 단단했지만 내겐 족쇄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됐지” 같은 말이 등을 눌렀다. 누군가 정한 기준에 숨을 맞추는 일이 왜 이토록 답답한지 누가 한 번쯤 물어봐 주길 바랐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스스로 벗어나 보려 했다.

며칠 전 방송에서 본 사입삼촌의 세계가 떠올랐다. 도매와 소매 사이를 잇는 사람들.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오가는 걸음. 손에 쥔 송장과 어깨의 대봉. 그 리듬 속으로 들어가면 내 삶의 박자도 바뀔지 모른다. 그 믿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따라오세요.” 오 팀장이 몸을 틀었다. 나는 바짝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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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을 미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골목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끝날 때마다 가지가 뻗듯 갈라졌다. 형광등은 밝은 체했고 철제 행거는 바닥 타일을 긁었다. 귀마개를 벗을 때처럼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가격을 외치는 목소리와 셀로판테이프의 찢김과 손수레 바퀴의 진동. 넓은 공간과 높은 천장이 소리를 사방으로 튕겼다. 박동이 낮은 울림에 맞춰 어긋났다.


사람과 어깨가 부딪칠 때마다 중심이 흔들렸다. 통로 양옆의 대봉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위태로웠다. 벌집처럼 촘촘한 매장마다 다른 조명과 음악과 향이 흘렀다. 어떤 이는 옷걸이를 고쳤고 어떤 이는 가격을 흥정했다. 또 다른 이는 컵라면을 후불며 서 있었다. 소리와 냄새와 먼지가 한꺼번에 덮쳐 얼굴의 모든 구멍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오 팀장이 발을 멈추었다.


“오다지요. 적힌 대로 받아오시면 됩니다.”


작은 메모장이 손에 쥐어졌다. 2C-6 WHO. 고객명 부대 나이스. 품목 꽃무늬 원피스. 눈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길을 찾았다.

계단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발뒤꿈치가 턱에 걸릴 때마다 낯선 피로가 올라왔다. 2층의 공기는 1층과 결이 달랐다. 섬유와 접착제의 냄새가 향수와 섞여 단맛을 냈다. 네온 간판은 각자 다른 색온도로 얼굴을 물들였다. 쇼윈도의 마네킹은 생기 없이 허리를 젖힌 자세로 굳어 있었다. WHO 간판 앞에서 멈추자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직원이 스치듯 물었다.


“삼촌 어디?”

“부대 나이스요.”

“여기. 대봉 가져가.”


커다란 봉지가 툭 던져졌다. 그는 이미 다른 손님에게 달려가 새 상품을 권했다.

대봉은 무거웠다. 얇은 비닐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 무게를 어깨로 옮겨 들쳐 멨다. 척추가 안쪽에서 마른 소리를 냈다. 오른쪽 어깨를 주먹으로 두어 번 두드려 느낌을 살렸다. 통로 너머로 나보다 작은 체구의 삼촌들이 양쪽 어깨를 바꾸어 가며 빠르게 지나갔다. 발뒤꿈치는 바닥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힘은 절약하고 속도만 살린 걸음이었다.




3층으로 향했다. 동선을 몰라 4층부터 내려와야 하는데 거꾸로 올라갔다. 턱마다 허벅지 안쪽 근육이 타는 듯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땀은 목덜미와 등줄기를 따라 허리춤으로 모였다. 다른 매장을 찾아 또 하나의 대봉을 올렸다. 반대쪽엔 중간 봉지를 얹고 오른손에는 소봉을 들었다. 무게가 좌우로 흔들릴 때마다 균형점이 발바닥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올랐다. 머리 안쪽이 북소리처럼 울렸다.

1층으로 내려가는 길. 계단 모서리에 굳은 테이프 조각이 들떠 있었다. 발끝이 그 조각을 살짝 건드렸다. 작은 어긋남이 무게 전체를 끌어당겼다. 몸이 앞으로 던져졌다. 금속 난간이 가슴을 스치고 바닥의 딱딱한 감촉이 팔꿈치를 강타했다. 대봉이 터졌다. 꽃무늬 원피스가 공중에서 체온을 잃은 새처럼 흩어졌다. 시야가 번쩍한 뒤 어둠이 밀려왔다.


정신을 추스르니 발목들이 눈앞을 지나갔다. 사람들은 짧게 흘겨보며 제 속도로 움직였다. 어떤 이는 혀를 찼고 어떤 이는 더 빨리 걸었다. 오 팀장이 어디선가 나타났다. 창백하던 얼굴에 분노와 당혹이 번졌다.


“형님 돌대가리세요? 그걸 왜 한 번에 내려와요.”


말은 거칠었지만 손이 먼저 움직였다. 우리는 옷을 한 벌 한 벌 다시 담았다. 폴리 혼방의 얇은 감촉이 손끝에서 바스락거렸다.


“오늘 할당 끝나면 광장으로 오세요.”


짧은 말만 남기고 그는 다시 사람의 흐름에 섞였다.

남은 오다지를 마쳤을 때 심장은 내 것 같지 않았다. 광장으로 나가니 공기가 바뀌어 있었다. 시계는 여덟 시를 가리켰다. 조명은 꺼지고 햇빛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소음은 잦아들고 자리에 종이 부스러기와 테이프 자국만 남았다. 어떤 이들의 하루는 이제 시작이고 이곳의 하루는 이제 끝이었다. 두 세계가 얇은 막 하나 사이로 맞닿았다.


오 팀장이 다가왔다. 눈 밑 그늘이 더 깊었다. 입술은 마른 종이처럼 갈라져 있었다.


봉투 하나가 손에 쥐어졌다. 얇은 종이의 감촉과 현금의 모서리가 전해졌다. 칠만 원.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가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류장에 서니 반대편에는 샤워를 마친 머리카락이 햇빛을 받아 윤이 났다. 갓 구운 빵의 향과 첫 커피의 쌉싸래한 냄새가 바람에 섞였다. 그 사이에 내 몸에서 난 땀과 먼지와 기름의 냄새가 잔향으로 남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창밖의 사람들은 내 하루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어떤 얼굴은 낮으로 열렸고 내 얼굴은 밤의 끝에 매달려 있었다.

골목은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반가웠다. 현관문을 여니 따뜻한 공기가 볼을 감쌌다.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웃음이 꽃잎처럼 얇게 떨렸다. 보리는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장난감처럼 다리에 몸을 비볐다. 꼬리가 깃발처럼 흔들릴 때마다 털이 발목을 간질였다. 손등에 닿은 체온이 놀라울 만큼 선명했다. 누가 보아도 행복의 표본 같은 장면. 나는 그 장면을 마음속에 저장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들었다. 일상.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사전의 문장은 언제나 단정하다. 그 정의를 읽는 동안 새벽의 광장과 층층의 계단과 터지는 비닐의 소리와 오 팀장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래도 내일부터 다시 그 반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그 반복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다른 리듬을 잠깐 통과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문을 열자 낮의 바람이 커튼을 밀어 넣었다. 빵집의 달큰한 향과 이웃집 세제 냄새가 희미하게 섞였다. 멀리서 초등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실려왔다. 커튼의 결이 손등에 스쳤다. 두통은 잔불처럼 남았지만 그 위로 아주 가는 숨결이 지났다. 밤새 일어난 일들은 꿈처럼 가물했고 근육의 통증처럼 확실했다. 나는 무엇을 한 걸까. 꿈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일탈이었을까.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부엌에서 물이 끓었다. 컵에 찻물을 따르는 소리와 보리가 식탁 의자에 앞발을 올리는 소리가 겹쳤다. 그 얇은 화음을 한동안 들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손에 잡히는 물건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찾아야 할 일상이란 이런 소리의 조합일지 모른다. 사소하고 익숙해서 늘 지나치던 것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의 몸을 조용히 내려놓고 내일의 몸을 천천히 들어 올리면 된다. 반복의 내부에도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가 삶을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기울게 한다. 오늘 밤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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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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