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뮤지컬 연출가의 아내를 둔다는 것은

by 쪼교


아침 여섯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습관처럼 회사에 갈 준비를 하려다 문득 멈췄다. 오늘은 연차를 냈다. 회사에는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내의 공연을 돕기 위해서다. 거짓말이지만 묘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형광등 아래의 공기, 부장님의 낮은 기침 소리 대신, 오늘은 무대의 먼지 냄새 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설레었다.


부엌에서는 전자레인지가 햄버거를 돌리는 소리를 냈다. 치즈 냄새가 좁은 집 안을 채웠다. 햄버거를 베어 물며 커피를 마셨다. 오래된 머그잔에 김이 피어올랐다. 햇살이 커튼 틈으로 스며들며 식탁 위로 쏟아졌다. 그 빛 속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리허설이 길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오늘은 안 가도 되는 날이니까.”

그 말을 하며 이상하게 안도했다. 누군가의 출근부에서 내 이름이 빠진 날, 나는 오히려 세상에 조금 덜 속박된 기분이었다.


아내는 작은 뮤지컬 극단의 연출가다. 극단이라 부르기에는 늘 예산이 빠듯하고, 무대라 하기엔 공간이 협소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내의 세상이 있었다. 조명 하나, 대사 한 줄, 배우의 손끝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손을 거친다. 나는 그 세계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맴도는 사람이다. 음향을 맡고, 음악을 트는 일.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지만, 타이밍 하나가 생명을 좌우한다.

내 손끝이 한 박자 늦으면 장면이 무너지고, 생각이 앞서면 음악이 엉뚱하게 튀어나온다.


처음 그 일을 맡았을 때, 나는 지나치게 긴장했다. ‘사랑의 세레나데’ 장면에서 실수로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를 눌렀을 때, 객석이 얼어붙었다. 배우의 표정이 굳고, 아내의 얼굴이 찰나의 침묵으로 얼었다. 공연이 끝난 후,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며 차 안은 고요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할게.”


아내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괜찮아. 당신이 있어서 든든해.”


그 말이 이상하게 슬펐다. 미안함이 아니라, 그녀의 체념 속에 감춰진 따뜻함 때문이었다.

공연장은 늘 같은 냄새가 난다. 오래된 무대의 나무 냄새, 조명기에서 나는 먼지 타는 냄새, 분장대의 향수와 배우들의 긴장된 숨이 섞여 공기를 묘하게 무겁게 만든다. 그 냄새 속에서 나는 늘 아내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대학로에서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포스터 속에서 웃고 있던 그녀의 얼굴. 지금은 그 무대의 뒤편에서, 다른 사람들의 빛을 만들어주는 연출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종종 그게 그녀의 ‘자기 구원’처럼 느껴졌다. 연기를 그만두며 놓아버린 세계를, 다시 다른 방식으로 쥐려는 몸짓처럼.


리허설이 시작되면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목소리가 단단해지고, 손짓이 예리해진다. 배우들이 대사를 틀리면 즉시 멈춰 세운다. 그때마다 나는 그 옆에서 큐시트를 붙잡고 긴장한다. 하지만 간혹 나의 어설픔이 분위기를 깨뜨린다. 음향 타이밍을 놓치거나, 노래를 틀어야 할 때 망설이거나, 불필요한 음악을 눌러버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꾸짖지도, 다그치지도 않는다. 다만 살짝 한숨을 내쉰다. 그 한숨에는 피로와 이해가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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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무렵, 공연장 직원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스피커 배선 문제였다.

“여기 꽂으면 잡음 생겨요.”
“그래도 우리 규격대로 해야죠.”

말이 길어지자 아내가 다가왔다. “괜찮아요, 제가 조정할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웠다. 그 부드러움에 내 분노가 순식간에 꺼졌다.
아내는 늘 그런 식으로 세상을 설득했다. 강하게 밀지 않고, 천천히 스며들듯 바꾸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낡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들이 천천히 흩어지며 무대 위를 감쌌다. 먼지가 부유하고, 그 사이로 배우들이 연습 삼아 대사를 이어갔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대 위의 빛과 그림자가 엇갈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무대와 현실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연기구나.’

그리고 나는, 그 연기의 한 귀퉁이를 조용히 지켜보는 엑스트라였다.

저녁이 되자 객석의 불이 하나둘 꺼졌다. 공연이 시작될 시간이 다가왔다.
음향 부스에 앉아 헤드폰을 쓰니, 아내의 목소리가 무전기로 들렸다.

“조명 준비됐어요? 음악 큐는 세 번째 장면부터요.”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내 손끝이 떨렸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버튼을 눌렀다.
피아노 전주가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배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조명이 켜지고, 대사가 이어지고, 관객의 숨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나는 그 순간, 회사의 회의실보다 훨씬 인간적인 공간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짓 연차로 얻은 하루였지만, 이곳에서는 진짜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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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졌다. 배우들이 무대 중앙에 섰다.
아내는 조용히 걸어나와 무대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땀과 눈물이 뒤섞인 빛이었다.
나는 객석 뒤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살고 있었다. 비록 관객이 아니라, 연출가로서의 자리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나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도 수고했어.”


아내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오늘은 완벽했어.”


그 말에 마음 한켠이 묘하게 찡했다.

귀가하는 길, 도로 위로 붉은 신호등이 번졌다.
차 안은 고요했고, 라디오에서는 오래된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옆자리의 아내를 힐끔 바라보았다.
피곤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차창 불빛에 잠시 비쳤다.
그 모습이 무대 위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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