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카페에 혼자 왔습니다.
긴 연휴의 마지막 날, 도시는 어딘가 불 꺼진 영화 세트장 같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여행 가방을 풀고, 냉장고를 채우고, 내일의 출근복을 다려두었겠지요.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창문 밖으로 아주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멀리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 어딘가의 TV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나만이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카페 안은 절제된 조명 아래 고요했습니다.
낮은 전등빛이 머리 위로 포근히 내려앉았고, 테이블마다 그 빛이 살짝씩 번져 있었습니다.
커피머신의 윙윙거림이 일정한 리듬으로 울렸고, 그 위로 찻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얹혔습니다.
그 소리 하나하나가 시간의 호흡처럼 느리게 이어졌습니다.
이따금, 창문을 스치는 바람이 커튼 끝을 흔들었고, 그 틈으로 바깥의 가로등 불빛이 물결처럼 흔들리며 스며들었습니다.
사장님은 계산대 앞에서 잔을 행주로 닦으며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그의 손놀림은 익숙했고, 표정에는 지루함과 평온이 묘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혹시 몇 시에 문 닫으세요?”
사장님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습니다.
“아홉 시요.”
그 말 속에는 ‘이제 곧 마무리해야 할 하루’의 온도가 느껴졌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제야 바닥의 타일이 미세하게 차갑다는 걸,
의자 다리에 남은 긁힘 자국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묘하게 나를 안정시켰습니다.
익숙한 공간의 디테일이, 이상할 만큼 따뜻했습니다.
밖에서는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바람에 흩날린 낙엽이 유리창을 스치고, 그 바스락거림이 잔잔한 음악처럼 느껴졌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까지 스며들어, 커피잔의 표면 위로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할 만큼 느릿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도 잠시 멈춰 있을 수 있었습니다.
창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낮 동안의 열기를 조금은 식힌, 초가을의 서늘한 공기였습니다.
가로수 잎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빛을 반사했고,
그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천천히 늘어졌다가 사라졌습니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식사 후 집으로 향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노부부도 서로의 팔짱을 끼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들이 창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내 얼굴을 유리에 비춰 보았습니다.
창에 겹쳐진 내 얼굴은 바깥의 불빛과 섞여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반사인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젊은 커플이 문 앞에 섰습니다.
들어올 듯, 나가려는 듯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웃고 있었고, 여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리에 앉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살짝 달라졌습니다.
카페의 정적에 미세한 파문이 번지는 듯했죠.
그들이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볼 때,
나는 그들의 눈빛 사이에 놓인 ‘말하지 못한 시간’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들 역시, 무언가의 끝자락에 서 있었을 겁니다.
연휴의 끝처럼, 계절의 끝처럼,
사랑의 한 장면도 그렇게 서서히 식어가는 법이지요.
주문한 카페모카가 나왔습니다.
컵을 감싸 쥐자 손끝에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그 따뜻함은 유리잔을 통해 천천히 내 손바닥으로,
그리고 심장 가까이로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밖의 공기가 조금만 더 차가워졌다면
그 온기가 내게 닿기 전에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쓴맛과 단맛이 혀끝에서 맞부딪히며 미묘하게 섞였습니다.
그 향이 코끝을 타고 올라올 때,
나는 잠시 멍하니 눈을 감았습니다.
연휴가 끝난다는 사실이 커피의 쓴맛처럼 입안에 남았습니다.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돌아가야 할 반복의 궤도가,
커피 잔 아래 남은 진한 자국처럼 나를 눌렀습니다.
그때, 밖으로 나간 남자가 담배를 물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가 번쩍이고,
곧 하얀 연기가 일렁이며 공중으로 피어올랐습니다.
그 연기는 불안한 손짓처럼 떠돌다 이내 흩어졌습니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들어오자,
카페 안에는 미세한 담배 냄새가 섞였습니다.
그 냄새는 어느새 조용했던 공기를 자극했고,
잔잔하던 분위기 속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번졌습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남자는 컵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피했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미 조금씩 기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나도, 아직은 그 끝을 인정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습니다.
카페의 조명은 점점 더 노랗게 바뀌고 있었습니다.
마감이 가까워질수록 조명은 부드러워지고,
그 아래의 모든 사물은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사장님이 계산대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제 슬슬 마감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습니다.
그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오늘 하루의 모든 감정이 함께 삼켜지는 듯했습니다.
컵을 내려놓으며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끝인데도,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다.’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낮의 열기는 사라지고, 밤의 냉기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아스팔트 위로 고요히 떨어지고,
그 불빛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길게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다가왔습니다.
헤드라이트가 내 발끝을 밝히며 멈췄습니다.
버스가 다시 움직일 때,
먼지가 일어나며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쳤습니다.
나는 타지 않았습니다.
그저 버스가 사라지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내 마음 한켠이 고요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지나간 연휴가, 흩어진 담배 연기가,
식어가는 커피의 향기가 모두 이 정류장에 모여 잠시 머무는 듯했습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누군가와 나란히 걷지 않아도
아무 대화도 없어도
그저 스쳐가는 바람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호흡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연휴의 끝이란,
결국 다시 ‘나’로 돌아오는 순간이 아닐까요.
모두가 떠난 자리에 남은 나,
내가 지켜야 할 하루, 내일로 이어질 반복.
그 속에서도 여전히 작게 타오르는 무언가.
나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다시 가야지.”
그렇게, 나는 연휴의 끝에서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