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삐~~~~~~~~~~~~"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벽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늘있는 어떤 예비 증상이라던지 자명한 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당장에 죽을병 걸린 것처럼 닥쳐왔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음흉하게 자리 잡고 말았다. 나 자신이 괴이하고 어색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다가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찾아왔을 때 어떤 신호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면의 작은 외침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생각했다.
"삐~~~~~~~~~~~~"
어느 날 그 악마가 본색을 드러냈을 때 나는 이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비명 지르는 어떤 외침 같았다.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주파소리가 끊임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귀를 막아도 소리는 들렸다. 음악 볼륨을 키워도 소리는 드렸고, 꿈속에서도 소리는 들렸다. 그것은 내 머릿속 어디에서 나오고 있었다. 떨어져 나가라고 귀를 잡아당겼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귀는 벌겋게 달아올라 고통으로 그것을 짓누르려 했다.
잠을 못 잔 것이 며칠이었다. 이제는 거리의 소음도, 세상의 모든 잡음도, 괴상한 소리로 변화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귓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것은 완전히 나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 그것은 아무 곳에 근거를 두지 않은 추상적 변화였다. 내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일까? 내 머릿속이,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면 자연이 변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시작이고 이제 곧 모든 것들도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인가 가려내야 했다. 소리는 더욱더 집요하게 내 머릿속을 파고들고 있다.
"삐~~~~~~~~~~~~"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았다. 사방이 막힌 유리방에 들어가 헤드폰을 썼다. 간호사는 밖에서 알 수 없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어떤 외부의 신호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난 치료될 수 없는 난치병이라 했다. 병명은 '소음성 난청' 즉 ' 이명'이라 한다. 평생 끊이지 않는 고주파음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리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예민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멍해지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려 한다.
결국 변화하는 주체는 나인 거 같다. 그것이 가장 편한 결정이다. 그것은 가장 불행한 해결이기도 했다. 내가 갑작스러운 변화에 지배되었다는 것을 시인해야 했다.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생각할 일도 없었다.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동안, 내 내부에서 축척되어, 어느 날 나에게 혁명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생활에 일관성 없이 돌변한 그런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소리가 떠나간 후에도 그것만은 남았을 것이다.
"삐~~~~~~~~~~~~"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말을 내가 못 들었을 때 사람들은 또 다시 말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눈을 마주치고 멍하니 쳐다볼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고 실소하며 떠날 것이다. 나의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내 변덕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고 할 것이다. 나는 변화 때문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내 머릿속에서 유난히 더 크게 고주파를 날리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차창 밖에서는 그것을 뚫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타이어가 땅에 마찰되는 소리를 밀어 넣었다. 뒷좌석에 탄 사람도 끊임없이 말소리를 밀어 넣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잡아먹었고 그것의 외침만 들을 수 있었다. 말은 내 머릿속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붙잡아두려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 나의 사고는 말에 연결되지 못하고 안갯속에 머물러 있다.
뒷좌석 사람은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차를 세우라 했다. 기분 나쁘면 차에서 내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마비된 듯, 단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도 난 내 변화를 말하지 못했다. 내가 변화 중이라고 그래서 그것이 모든 것을 막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미지근한 우유 혹은 얼음이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천사 같은 인내심으로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 뒤에는 약간의 노기가 있었다.
"소리 때문에 소리가 잘 안 들려서 그랬습니다. 소리가 진정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뒷좌석 사람은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소리가 뭐.. 소리를요?"
"삐~~~~~~~~~~~~"
뒷좌석 사람은 진한 체리향의 향수냄새가 났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그러다가 난 정신을 차렸다. 그것이 청각 외에 다른 것은 열어주었다.
1년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막아놓고 나를 변화시키고 있었던 기간이다. 청각 외에 모든 감각이 극도로 민감해졌었다. 나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 복면은 눈, 코, 입은 뚫려있었고 귀만 막혀있었다. 듣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 괴상한 복면을 쓰고 있는 것인가? 나의 정열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나를 뒤덮어 수년동안 휘몰아왔던 것이다. 나 자신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잔혹한 것은 내 앞에 거대한 무의미가 맥 빠진 듯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인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나를 너무 심하게 변형시켜 왔기 때문에 차마 밀어내지 못했다. 극도록 예민해진 시각, 후각, 미각은 서로 따가운 빛과 역겨운 냄새로 구역질 나는 맛으로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훌쩍 나타나서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사라진다.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 없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혼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고독 속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고독은 한심스러워 보일 뿐이다. 고독한 사람은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홀로 서있는 가로등에서만 웃을 수 있다. 가로등과 하늘만 있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바람이 일고 하늘은 더욱더 어두워져도 따스했다.
그것이 던져준 고독은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나를 너무 먼 고독의 길로 보내버렸다.
1년이 지난 후 그것은 나의 변형을 끝마쳤다. 소리는 점점 작게 수그러들었고, 고주파음은 간헐적으로 그것의 변덕에 따라 들어왔다. 나는 그것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 고맙습니다. 나는 충분히 고통의 여행을 했습니다. 이제야말로 변태로 자리 잡아 살아가겠습니다. 이제야말로 성숙한 나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갔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적응된 변태가 된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새로운 파괴의 전조라면, 정말 나는 두렵다. 이것은 그것에서 해방된, 풍족하고 행복한 삶이 아닐 수도 있다. 또 다른 그것이 찾아오고 나를 사로잡으려 한다는 거.... 그것이 두렵다.
그것에게 잠시나마 해방되었지만 그것이 변화시켜진 나는 또 다른 그것에게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인가? 또 다른 변형으로 또다시 가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게 또 수년이 지났을 때, 지쳐 자빠져있는 내 모습은 페허속에서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내 내부 속에서 무엇이 생겨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
최근들어 소리는 또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다시 그것이 왔다. 그것이 정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들 사이로 도망갈 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에게로 와 손을 살며시 포개고 말했다.
"이보세요. 그 사람이 어쨌다는 거죠?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죠. 그냥 피와 살로 이루어진 한낱 인간인데요. 당신과 보세요.. 똑같죠? 눈도 두 개고 입도 하나고, 코도 하나고.."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무언가와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듣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나만 들을 수 있는 그것이 보내는 소리를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