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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교 Sep 19. 2023

마장호수 가는 길

사는 이야기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을 때 문득 깨달았다일요일이다나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멍하니 책을 보다가 창문을 열었다시원한 바람을 느끼려는 순간 보리가 먼저 올라와서 바람을 막고 선다보리의 털이 눈을 찌른다눈을 비비고 다시 창밖을 본다그때 그 무엇이 나에게 신호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창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집 앞 공원에 나가 무심한 척 걸었다공원은 인기척이 없고텅 비어 있었다작은 공원은 나에게 말을 거는 거 같았다뭐라고 말해줄까나는 길가의 돌 위에 앉아 생각했다비 온 뒤라 젖어있는 나무와 풀들이 반짝이며 미소 짓고 있다나는 말했다그래 '오늘 일요일이지나는 드라이브를 할 거야.'  나는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걸음은 차츰 빨라지다어느 순간부터는 뛰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탔다미리 세팅해 둔 에어컨이 시동과 동시에 켜졌다가을이다선선하다 못해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얼마 전 새로 산 방향제 향기가 기분 좋게 만든다.  집에서 출발해 고양동을 지나 양주계곡을 거쳐 마장호수까지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를 정했다

 이 코스의 장점은 지나는 길에 계곡을 볼 수 있다는 점과 강원도 비슷한 작은 산을 타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이미 철 지난 관광지라 통행하는 차량도 별로 없고 가게에 손님도 끊겼다그럼에도 그 가게들은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는 먹거리를 자랑하고 있다그러나 나는  코스를 달리는 동안 차를 세우고 내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눈으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내게 이동이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오프로드 차를 타면서도 한 번도 오프로드를 가본 적이 없고 최대한 잘 포장된 도로만을 달린다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왔다 감표시를 하듯 주차장에 잠시 머무르고 되돌아나가니 주차 요금조차도 안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차에서 내린다는 건 나에게 큰 결심이다  

   

 선선해진 날씨만큼 차 안도 상쾌하다얼마 전 4만 원을 주고 집 근처 손세차장에 차를 맡겼다형제가 운영하는 세차장이었다동생은 열심히 고객을 상대하며 영업을 하고 형은 우직하게 차를 닦는다형제는 대략 1시간 동안 차가 부서져라 세차를 한다세차를 맡긴 것이 괜히 미안할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닦던 형제는 2달에 한 번만 오셔도 된다고 했다. "너무 깨끗하게 잘해주셨어요"라는 고객의 한 마디에말없이 우직하게 차를 닦던 형제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웃는다차에서 나는 달콤한 체리향과 막 뽑은 새 차 같은  실내를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음악을 튼다아내는 시끄럽다고 하지만 난 퇴근길에 헤비메탈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어둡고 우울한 음악만 들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내가 실은 헤비메탈을 즐겨 듣는다는 걸 알면 사람들은 무척 놀란다그래도 어쩔 수 없다나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헤비메탈을 아주 좋아한다금속성의 기타 연주에서 일탈의 짜릿함이 느껴지고 가슴을 쿵쿵 내리치는 저음과고막을 찢을듯한 고음을 들으면 묵혀있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가끔씩 고개도 흔들어주기도 하는데 차가 멈출 때면 옆 차에서 볼까 봐 소심하게 앞만 본다     


 기름이 자동차 전체를 돌고 달릴 준비가 끝나면 차를 몰고 집밖으로 나간다오늘따라 화창한 날씨는 햇빛에 광을 낸 듯 번쩍이고 있다스쳐 지나가는 차들도 윤기가 흐르듯 번쩍이고거리의 건물들과 나무들도 반짝반짝 윤이 난다방향지시등 없이 급차선 변경으로 끼어든 차에게도 웃음이 나왔다그 사람도 기분이 좋아서 운전을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이 모든 건 맑고 화창한 날씨 때문이다좋은 날씨는 기분을 좋게 한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나는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여름의 끝자락을 수놓는 포근한 햇살은 기분이 좋은 따스함을 가지고 있다나는 운전대를 놓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일요일이다.” 

 

 거리는 한산한 편이다가게들은 텅 비어 있다길을 걷는 사람들을 이따금씩오늘의 날씨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젖히고 있다길가에 있는 교회만이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그 교회는 신도들을 맞이하기 위해 폭동 사건이 있었던 날 같은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1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다평온하던 식당가에는 이제 곧  군중이 밀어닥칠 것이다누구의 가족이거나 누구의 친구들인 그들은 이 고요한 거리를 침범할 것이다.  

 나는 분주한 고양대로를 지나 송추계곡 입구에 들어선다들어가는 차들로  줄지어 서있다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조용한 음악이 거리에 흘러 다닌다그것은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이다.

 



 창밖을 보니나무 잎사귀와 들풀이 햇빛에 감응하듯 반짝이고 있었다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와 풀들이 소용 들이치듯 흔들린다백미러로 보면 잘 가라 하고또 오라 하며 손을 흔드는 거 같다.

평소에는 숨죽이며 조용히 있던 것들이 인기척이 날 때마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생동감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자동차가 이끄는 데로 시선을 옮겨 눈으로 모든 것을 담았다. 천천히 담아내기 위해 속도를 줄였다.      


 꾸불꾸불한 고갯길이 끝나갈 때쯤 마장호수 입구에 도착했다는 안내 문구가 보였다. 차들이 부쩍 많아진 것이 아마 그 때문인 듯했다길가에 우거진 나무들이  손을 들어 하트를 만들 듯햇빛으로부터 밀려든 차들을 막아주고 있다이윽고 저 멀리 마장호수가 보였다나는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접근했고인적이 드문 그곳에 주차했다드디어 차에서 내려 출렁다리가 보이는 방향을 향해 좁은 산책로에 들어섰다


 그 산책로에 들어서자 갑자기 귀를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다파도처럼 쏴 밀려드는 그 소리는 일요일의 위대한 음향이었다강에 가까워지자 그 음향은 더 커진다나는 알고 있다그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이다앞에 가는 아이들은 신이 난 듯 한 발을 들고 콩콩 뛰었고 연인들은 팔짱 낀 손에 힘을 주어 서로의 몸을 더욱 밀착시킨다     

 산책로를 따라 들어가니 차창 밖의 풍경으로만 보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그 길에 들어섬과 동시에 나는 곧 풍경의 일부가 된다거대한 풍경화 속에 작은 붓 터치로 그려진 인물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을 보면 산 중턱 정자에서 글을 읽는 선비 한 명이 보인다정자 아래에는 강을 넘어왔을 듯한 작은 배가 놓여있다나는 늘 내가 그런 그림 속의 고요한 풍경의 일부분이었으면 했다  

  

 걷다가 지루해질 때쯤 강가에 놓여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았다어린 시절 셀로판지를 갖고 놀던  때처럼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눈앞에 대고 그 너머의 강을 본다커피를 투과한 강은 갈색으로 보인다더없이 평온한 갈색이다.

 문득 내가 불안해한다고 달라질 것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불안을 견디는 건 견디겠는데왜 내가 이렇게 불안해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접어둘 수가 없다내 삶에 일어난 일들이야 어쩔 수 없는 건데내가 바꿀 수도 없는 건데 나는 왜 그것들을 내 삶의 불안으로 가져다 놓으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갈수록 음량은 더욱 커진다그러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폭발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거대한 출렁다리가 사람들을 제 몸 위에 올려두고 거침없이 흔들어대고 있었다사람들은 즐거운 것인지공포에 질린 것인지 모를 비명을 지르고 있다이제 나도 그곳에 다 왔다오늘의 목적지인 '마장호수의 출렁다리'이다.

 내가 다리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뒤에서 사람들이 나를 미친 듯이 밀어대고 있다공포를 느낄 사이도 없이 사람들에게 밀려 출렁다리 한 중점까지 왔다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의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머릿속을 흔들던 어지러움이 다리의 흔들거림과 어울려 균형을 잡고 있었다내 머리가 왼쪽으로 쏠리면 다리가 나를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고다시 내 머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다리는 나를 왼쪽으로 팽개쳤다기가 막힌 균형감으로 출렁다리는 나를 외나무다리 위에 선 사람처럼 꼿꼿이 서 있도록 만들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무엇이든 어떠냐고이미 태어난 인생죽을 수 없이 살아야 한다면 조금은 맘 편히 살고 싶다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나뭇잎이 붉어지면 나무를 떠나듯이나도 내 인생의 한 시절을 뒤로 넘겼으니 이제는 쉬어야겠다그리고 신도 볼 수 없는 깊은 골짜기에 꼭꼭 숨겨둔 내 이야기를 꺼내 놓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욕망을 품고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온다나는 그들을 잘 알아본다끼리끼리 논다고 악은 악을선은 선을 알아본다그리고 서로 어울려 논다어떤 악은 오랫동안 알아온 것처럼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그들의 절뚝거림은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어색하지 않게 잘 걸어온다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나는 그들과 어울렸다그들 속의 나는 즐거웠다우울하고 슬픈데 그들 속의 나는 행복했다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타인에 대는 잣대는 정확하지만나에게 대는 잣대는 한없이 너그러웠다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로써 나는 여름과 작별할 것이다

 아직은 여름이지만 균형 잡힌 내 마음은 여름을 끝마치고 가을을 기대할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반드시 온다는 확실한 희망을 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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