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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글사글 May 15. 2020

회색도시의 사람들

혐오로 뒤덮인 사회

 이 도시는 지나치게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시에 지나치게 좁은 스케치북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이 많은 색깔을 도화지에 다 칠할 수가 없다.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여러 색을 사용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하지만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반면에, 우리가 선호하고 즐겨 찾는 색깔은 너무나 명확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도시를 비롯한 지구촌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도약하자’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는 모두 그렇지 않음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것보다 진하거나 연한 색을 가지고 있다면 눈에 띄기 마련이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중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하면 호기심을 갖기 마련이다. 흥미롭고 구미가 당기면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앞세우고 만약 이것이 별 볼일 없다면 이것은 사회의 뒤편으로 배척된다. 


 이 도시에서 눈 여겨봐야 할 건 당연히 뒤편으로 배척되는 사람들에 관해서이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기 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나’를 알고 있어야 나와 다른 ‘타인’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동 ⓒ뉴시스.여성신문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이 사회가 너무 빠르고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하며 이해하기에는 개개인에게 너무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것이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는 것이 개개인의 성향으로 간주하기엔 이 혐오의 범주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무자비한 경쟁과 속도의 시대에서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각을 보유하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내 옆 사람은 그저 앞질러 가야 할 경쟁자일 뿐이며 세상의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진다면 모자란 것으로 간주되고 이내 퇴보되어 쓸모없는 사람이라 배우며 자라왔기에 우리는 누구보다도 정상적인 한 명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들은 분명 사회의 비정상의 범주를 바라보며 그들을 향해서 자신들이 엇나가지 비정상이 아님을 확인받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에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이며 이 사회의 ‘오류’로 배우며 자라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을 교정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동일한 것을 중심으로 집단화하는 인간의 특성이기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고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어릴 적부터 혐오를 체화해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소수’는 당연히 약자라고 배우며, 이들을 배척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들을 ‘보호’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배척과 보호를 같은 사회 집단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이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이 사회가 애초에 소수라고 규정할 필요도 없는 이들을 ‘보호’라는 명목에서 ‘소수’라는 카테고리로 범주화하는 것은 사실 ‘혐오’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크고 작은 혐오로 뒤덮인 이 도시에서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아야 이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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